전신 갑주를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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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권면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1장부터 6장까지 기록한 모든 내용이 영적인 전투와 관련된 말씀이며 성도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마귀의 간계를 대적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우리의 인생이 마치 영적인 전쟁과도 같다는 이 말씀을 과연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함께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에베소서 6장 1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6장 10절 말씀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권면 말씀 전체를 요약 정리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자면, 마지막으로 너희는 주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라, 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 안에서 “강해져라. 견고해져라”라는 말이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시겠지만, 우리가 강해지고 견고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스스로 정신 무장을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고 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죠. 사도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강해지는 방법은 단 하나, 주님 안에 머무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에베소서 6장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사도 바울은 6장 10절에서 강해지고 견고해지라는 명령에 이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하는데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귀의 간계 때문이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이 단어 역시 번역이 좀 애매한데요. 우선 간계라는 단어는 영적인 시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헬라어로 말하자면 굉장히 희귀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군사적인 문맥에서는 병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병법이 무엇입니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전략을 짜서, 그 전략에 힘입어서 승리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이 병법 아니겠습니까? 마귀의 간계가 병법과 유사한 뉘앙스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살이 가운데, 우리에게 종종 찾아오는 사탄의 영적인 시험은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그런 우리의 거룩한 영적인 상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도를 무너뜨리는 데 최적화된 병법을 사용하는 사탄의 존재 때문입니다. 사탄은 성도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가 무엇에 약한지, 우리 자신이 무엇에 약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립니다. 무너지고 쓰러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우리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그 순간에도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는 말 그대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승리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사탄의 간계에서 승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승리하라고 명령했다면, 정말 마음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넉넉하게 감당하고 승리하라고 말하지 않고 저항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저항은 우리의 힘과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힘만으로 마귀의 간계에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가 마귀의 간계에 저항하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만 저항할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함과 동시에, 우리가 상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 줍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아멘. 우리말 성경에는 “씨름”이라고 나와있습니다만, 원어로 보면 씨름이 아니라 레슬링 경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레슬링이라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11절에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했다가 12절에서는 갑자기 레슬링 경기를 떠올리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뭔가 이상하죠. 전쟁과 레슬링 시합은 엄연히 다르지 않습니까? 자,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만, 이상하게 느끼는 겁니다. 과거 1세기 헬라 문화권 안에서 생활한 사람들은 전쟁과 관련된 용어와 레슬링 용어가 혼용되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1세기에 가장 철저하게 무장된 병사들이 레슬링 선수들과 같다고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과 레슬링 경기를 말하는 것은 서로 결이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맥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4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올림픽 종목 중에 레슬링 경기가 있지 않습니까?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독특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레슬링 선수들 또는 유도 선수들의 귀를 보면 귀가 뭔가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요즘은 그런 귀를 만두귀라고 부르는데요. 귀가 바닥과 계속해서 마찰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상대방과 계속해서 대련하면서 몸싸움하는 과정 가운데 귀가 쓸리거나 눌리면서 귀의 피부와 연골 사이에 출혈이 생기고 응고되면서 귀의 모양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자 그래서, 제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가 하면, 12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비유되고 있습니까? 레슬링 선수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영적으로 계속해서 싸우는 과정에서 양쪽 귀가 다 만두귀가 돼서 온몸이 상대방을 제압하는 인간병기로 훈련된, 뭐 그런 느낌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냥 무슨 영적으로 평화주의자고, 기도 한방이면 무슨 마귀가 나가떨어지고, 찬양하면 모든 상황이 해결돼서 행복해지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어떻게 하면 무너뜨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간계를 사용하는, 온갖 병법을 사용하는 마귀의 시험 가운데, 레슬링 선수처럼 상대방의 손과 몸을 제압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기하는, 그런 선수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느낌으로 다시 12절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시면, 우리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야하는데 그 대상이 누구라고 합니까?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하죠. 그런데 바울이 열거한 이 내용은 뭔가 헷갈립니다. 예를 들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라고 하면, 뭔가 사람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12절 말씀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적은 누구입니까? 12절 제일 뒤에 보시면,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바로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우리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막무가내로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 저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전신갑주가 무엇인지 여섯 가지로 나눠져 있지만, 사실상 읽어도 이게 실제로 정말 그런 기능을 할까 라는 의문이 들 수 있고,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사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명령과 더불어서 18절의 말씀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더불어 기억해야 할 내용은 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영적 전투의 핵심은 기도입니다. 전신갑주만큼이나 중요한 개념이 기도라는 말입니다. 만약 전신갑주가 가장 중요했다면, 전신갑주 안에 기도가 포함되었을 텐데, 기도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전신갑주만큼 중요한 성도의 기초적인 활동이며, 계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성도의 필수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할텐데, 우리의 신앙생활은 고귀하고 고결한 것이지만, 에베소서 6장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전쟁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자신이 교회에서 어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거나, 담임목사님이나 교역자에게 사랑 받기만을 원하시는 분은 영적인 전쟁터에 나갈만한 준비가 되지 않은 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에베소서 6장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만 합니다. 우리의 씨름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레슬링 경기입니다. 신사적인 경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중심을 무너뜨려서 상대방의 몸을 뒤집는데 온 힘을 다하는 그런 레슬링 선수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레슬링 경기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늘의 악한 영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깨어있어야만 하고,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고 여러 성도를 위해 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부디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나날이 강건해지시고 견고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만 강해질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여러 성도를 위해, 교역자를 위해, 교회를 위해, 온 마음 다해 기도하며, 전투하는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에베소서 6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불가피하게 우리의 신앙생활의 범위가 축소되고, 교회를 향한 우리의 마음도 위축되었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하는 사람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신앙생활에 젖어 영적 전투의 사명을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심령이 깨어 있어 성령님 안에서 매일 같이 기도하며 살아가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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