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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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5장 말씀에 따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치게 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사무엘하 15장과 16장은 압살롬이 대략 30세 정도 되었고 다윗은 60세 정도 된 나이였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다윗이 서른 살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고, 40년 동안 통치했으니, 40년 통치 기간 중에 대략 30년 정도 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 시점에 바로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킵니다. 다윗이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한 사무엘상 16장부터 사무엘하 16장까지, 다윗은 전쟁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적군에게 등을 돌리고 달아난 적이 없죠. 그런데 사무엘하 15장에서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예루살렘을 버리고 피신하게 됩니다. 만약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버틴다면, 예루살렘이 황폐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내전으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다윗은 자신의 최측근들을 대동해서 요단 강을 향해 동쪽으로 피신합니다. 자신의 장인이었던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 다닐 때부터 함께했던 부하들과 이동한 것이죠. 이렇게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피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하실 때, 시므이 라는 인물이 다윗을 저주하는데, 그 저주의 내용이 무엇이며, 이 저주에 대해서 부하들과 다윗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무엘하 16장 5절 말씀 보세요.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다윗이 바후림에 도착했는데, 이 바후림이라는 지역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마을입니다. 여기서 사울의 친족 시므이 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시므이는 사울의 친척입니다. 사울의 친척이라는 점에서 다윗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시므이가 품고 있는 악감정은 적정 수준을 지나친 정도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얼마나 싫어했는가 하면, 6절 말씀 보세요.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는 다윗을 마음속으로만 싫어한 것이 아니라 대놓고 증오심을 표출합니다. 그것도 돌을 던지면서 저주하는 방식으로 증오심을 표출하죠. 여기서 돌을 던지는 행위와 저주하는 행위, 두 행위 모두 용납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우선 돌을 던지는 행위는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율법을 어긴 자를 사형시킬 때 돌로 쳐서 죽이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율법에 있는 사형 방식을 시므이가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율법을 사랑한 다윗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행위였겠죠.
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시므이가 말하는 저주의 내용입니다. 사무엘하 16장 7절과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울 집안이 다윗으로 인해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다독하신 분들의 경우에는 시므이가 저주하는 내용을 보실 때 혼동하실 수 있습니다. 예컨대, 피를 흘린 자여. 라는 말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십니까? 역대상 22장 8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다는 이 말씀과 시므이의 저주가 같은 말씀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그렇지 않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덕분에 이스라엘이 평안해지고, 또 다윗이 성전 건축 자재를 모두 준비해 주었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시므이의 저주, 피를 흘린 자여라는 저주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시므이는 다윗에 대해서 굉장히 심각하게 오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의 입장에서 사울 집안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다윗은 가해자입니까 피해자입니까? 누가 봐도 다윗이 피해자죠. 다윗은 사울에게 맹목적으로 미움받았고, 시도 때도 없이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피할 곳이 없어 적국인 블레셋 땅에 가서 목숨을 보전해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사울 한 사람 때문에 말로 다 표현 못할 고생을 한 다윗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심지어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에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시므이가 저주하는 내용,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이 내용은 완전히 잘못된 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만약 시므이가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들먹이지 않고, 다윗과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과 우리아 모의살해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저주했다면, 만약 그랬다면,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겠습니다만, 다른 이유로 저주하는 것은 내용도 틀렸고, 방법도 잘못되었습니다.
자 그래서,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또 감히 왕에게 돌을 던지는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시므이에 대해서 다윗의 부하들과 다윗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9절 말씀 보세요.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아비새는 다윗의 핵심적인 최측근이면서, 굉장히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하 21장에 따르면, 아비새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거인 이스비브놉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죠. 이렇게 거인도 때려잡는 사람인데, 일반인은 어떻겠습니까?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죠. 물론 사람 목숨을 무슨 파리 목숨처럼 쉽게 여기는 부분은 그렇게 건전해 보이진 않습니다만, 시므이가 저주한 내용도 그렇고, 돌을 던지는 행위도 그렇고, 만약 시므이가 죽임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다윗이 시므이를 허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내 몸에서 난 아들, 압살롬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는데, 베냐민 사람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겠냐.둘째. 여호와께서 시므이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둬라.
이 두 가지의 이유로 시므이를 내버려 둡니다. 여기서 다윗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괘씸하니까 그에 따른 벌을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죽이진 말고 다시는 그런 행동 못하게 혼 좀 내서 보내. 이렇게 명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손을 대진 않더라도, 다윗의 휘하에 있는 용맹한 장수들이 있으니, 보내서 겁좀 주면 근처에도 얼씬대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말로 설명이라도 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울 집안과의 악연에 대해서, 당신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이런 부분들을 풀어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시므이에게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습니다. 고개 한 번 끄덕이거나, 손짓 한번만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대는 이 시므이를 저세상으로 보내버릴 만한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대지 않습니다.
그럼 다윗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실 것이라는 믿음,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실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바로 다윗의 믿음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은 시편 3편에 잘 나타나있는데요. 시편 3편의 표제를 보시면,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나와 있습니다. 정확하게 오늘 본문의 상황과 일치하죠. 시편 3편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자기 아들이 자기 목숨을 해치려는 것을 알고 자기 집을 떠나 도피하는 상황에서, 다윗이 기록한 시편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상황에서 다윗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아들을 죽여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다윗은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하지만 다윗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감히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 어떠한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자신의 믿음을 놓지 않으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과 연결지어서 생각해보면, 다윗은 미래가 없어보이는 사람입니다.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압살롬에게 빼앗겼습니다. 이 상황을 뒤집는다고 하더라도 아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버지인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도 저도 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며 돌을 집어 던집니다. 다윗은 시므이를 책망하거나 벌주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아멘.
오늘 말씀을 묵상하실 때, 다윗이 품은 이 마음, 그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하나님이 나의 방패되시며 나의 영광이 되시며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시고, 또 우리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며 불쌍히 여겨주시는 우리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시며 주님과 동행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며, 또 충신들이 압살롬에 편에 서고, 하나님께서 주신 왕국을 상실하고,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모독과 저주를 당하며 쫓겨나는 다윗의 비참한 모습을 통해서 다윗의 성숙한 믿음을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작은 아픔과 사소한 어려움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나님께 투정부리며 역정을 내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방패가 되시며, 우리의 영광이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감찰하시며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부디 오늘 하루도 다윗의 성숙한 믿음을 본받아,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빛과 소금된 역할을 감당해 내는 모든 우리 성도님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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