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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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살펴본 말씀에서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단순하게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고, 새 사람다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본질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새사람을 입는다는 말은 상당히 피상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새사람을 입는다는 말만 가지고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한 삶인지, 여섯 가지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권면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는 삶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여기서 거짓이라는 말은 모든 종류의 거짓을 포괄합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사기 쳐서 금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히는 것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단순한 명령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25절 제일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거짓말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보면, 거짓과 관련된 다양한 성경 구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십계명에서 아홉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 십계명에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시편 5편 6절과 7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편 5편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거짓을 버려야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진실하신 분이시며,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고,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구약성경은 거짓을 강하게 금지하고 있는데요. 에베소서 4장 25절 역시 거짓을 금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조금 다릅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이 말을 원어로 직역하자면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의 몸이기 때문이다. 한 몸이기 때문에 거짓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서로 참된 것, 다시 말해 서로 서로 진리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첫 번째로 주어지는 새 사람에 대한 권면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권면은 분노에 관한 것입니다. 26절과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노에 관한 말씀은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야 하는데요. 먼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다행인 점은 화내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인 느낄 수 있는 분노라는 감정을 어느 정도 허용합니다. 하지만 분노에는 허용 범위가 정해져 있죠. 사람이 살다보면 화가 날 수 있고, 화를 낼 수는 있지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쁜말을 한다거나,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거나,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것이죠. 정황상 누가 화를 나게 만들었고 누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로 인해 화가 나면, 객관적으로 그 문제에 이성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화가 나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 애초에 그냥 스스로 화를 다스리는 편이 우리에게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 역시 정황이 어떻든, 누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러서 화가 났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분노를 가슴에 품고, 어떤 일을 계속해서 곱씹으면서 분노를 품고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분노에 대한 말씀이 새 사람을 입은 성도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이런 말씀이 주어진 것일까요? 그 이유는 27절 말씀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이 말씀은 우리가 주의해서 기억해야만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상생활 중에 다른 사람 때문에 화가 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한 것은 전혀 없고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나와 어떤 사람,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화를 내다가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마귀가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칼빈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바울이 우리에게 마치 적에게 점령된 요새처럼 사탄이 우리 마음을 손아귀에 넣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게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는 데 한 점 의심도 없다.”
이러한 점에서 지속되는 분노는 우리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상대방에게 속이 시원할 정도로 화를 내면 화가 풀릴 것 같고, 또 내가 옳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면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갈 것만 같은데, 말씀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화를 내야 시원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쳐 오르는 불구덩이 같은 분노로 인해서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이지 않도록 해가 지기 전에 분노를 조절하는 사람이 바로 새 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새 사람은 마귀에게 영적인 시험에 들지 않도록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가정에서든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든, 어떤 일이든 관계없이 우리는 사단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분노라는 감정을 지혜롭게 조절해야만 합니다.
이어서 세 번째 권면은 도둑질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수고해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권면은 언어생활에 관한 것인데요. 에베소서 4장 2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서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으로 권면합니다. 바울은 사람의 말이 타인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하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네 번째 권면에 따르면,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더러운 말을 해선 안 됩니다. 여기서 더러운 이라고 번역된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썩은, 부패해서 악취가 나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썩은 나무, 비린내가 진동하는 생선, 썩은 과일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동기가 어떻든, 원인이 어떻든 관계없이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꺼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더러운 말은 하지 말고, 선한 말을 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끼친다는 말씀을 보면서 거부감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에이 뭐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끼쳐. 은혜 끼치는 건 목사님들이 알아서 하실 일이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부담이 되실 수도 있지만, 사도 바울의 권면을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취하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좋든 싫든, 잘하든 못하든, 일단 새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내용들에 관해서는 있는 그대로 다 받아야만 합니다. 자, 그래서 은혜를 끼친다는 것은, 성도님들이 무슨 주기적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거나 무슨 설교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체과 교제하는 과정에서 서로 서로 덕을 세우고, 선한 말을 함으로써 은혜를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선한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일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은혜를 서로 나누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어서 다섯 번째 권면은 모든 악한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26절에서 시작한 분노에 대한 주제가 다시 등장하는데, 31절에 등장하는 분노에 대한 내용은 26절의 내용을 단순하게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31절에서는 26절에 없는 내용, 악독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추가되었죠. 그래서 종합적으로 31절 말씀을 보면, 악독과 분냄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은 외부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과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 뭔가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두 가지 과정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들입니다. 악독과 분냄이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행위로 연결되기 때문이죠. 물론 우리말 성경에서 떠드는 것이라는 말은 번역이 애매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고함치는 것, 비명을 지르는 것,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이 단어는 사람이 언쟁하면서 목소리가 커질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물론 어떤 일로 인해 화가 날 수 있고 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소리지르는 것과 비방하는 것은 사도 바울에 따르면 악한 것이라고 표현됩니다. 정당하게 화냈다고 다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화를 내는 행위 자체는 악한 것이며, 새 사람이 버려야 할 행동임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권면은 부드러운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아멘.
사도 바울은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새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친절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사람,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에게 상처 입히는 말을 하고, 속으로 악독하고 노하는 마음을 품는 대신에 친절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상대방을 용서해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하여 여섯 가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있던 우리를 주님의 은혜로 건져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복된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데, 실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게 전심전력하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통해 새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인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망각하고 있던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고, 다시금 결단하여 주님의 자녀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