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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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 율법사의 질문은 세금을 누구에게 바쳐야 하는지와 같은 정치적인 질문을 한 바리새인의 질문과는 다릅니다. 또한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의 신학적인 질문과는 다릅니다.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이 율법사의 질문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랍비들은 어떤 계명이 더 중요하고, 또 어떤 계명이 덜 중요한지 끊임없이 논의했습니다. 제의적인 율법, 윤리적인 율법, 의식적인 율법. 이런 것들 중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 상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율법은 무엇이냐. 이런 주제를 두고 논의했던 것이죠. 또 랍비들은 구약성경에 있는 핵심 구절들로 율법의 중심 사상을 요약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사람이 감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율법사는 자신이 던진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계명이 가장 크냐는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실 때,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그 대답에 대해서 공격할 거리가 생기겠죠. 어? 그럼 다른 계명은 덜 중요합니까? 이런 식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시든지 상관없이, 대답을 하시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계명을 낮추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라기보다, 시험적인 요소로 가득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분석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 애초에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이 율법사의 의도를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5절과 36절 말씀 보세요.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37절부터 40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장 5절, 쉐마라고 불리는 말씀과 레위기 19장 18절 말씀. 이 두 가지의 말씀을 결합해서 대답하십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을 나눠서 생각해 볼텐데요. 먼저 신명기 6장 5절 말씀을 인용한 마태복음 22장 37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말씀을 원어의 어순대로 직역해서 읽어보면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너는 사랑하라. 너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너의 모든 마음으로 그리고 너의 모든 목숨으로. 그리고 너의 모든 뜻으로.”
이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줍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땅히 해야 합니까? 너는 사랑하라. 이 말씀을 받는 너 자신. 다시 말해 이 말씀을 받는 우리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죠. 예컨대, 같이 신앙생활하는 집사님이나 권사님이나 장로님이 솔선수범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거나, 다른 성도님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거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직분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신앙 경력이 어떻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주어와 동사가 결합해서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너에요. 너는 사랑하라. 누구를요? 너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해드렸듯이 이 말씀은 원어의 어순대로 읽으면 조금 더 이해가 잘 됩니다. 너의 모든 마음으로, 그리고 너의 모든 목숨으로, 그리고 너의 모든 뜻으로. 원어 성경에서는 읽기 불편하게 시리, 묶어서 하나로 표현하지 않고 각각의 단어를 계속해서 수식합니다. 너의 모든 마음으로. 너의 모든 목숨으로. 너의 모든 뜻으로.
마음이 되었든, 목숨이 되었든, 뜻이 되었든.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신앙생활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능력 중에서 어떤 능력은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다른 어떤 능력은 사용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적당한 수준에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레위기 19정 18절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하십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말씀을 이해할 때, “둘째도 그와 같으니”에서 둘째라는 단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와 같으니. 라는 표현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그와 같으니 라는 표현은, “동일하게 중요하다. 이것만큼 중요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라는 표현이 사용되긴 했지만, 둘째의 중요성은 첫째와 똑같다는 것이죠.
자 그래서 이 내용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데, 이 계명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계명이, 너의 이웃을 너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레위기 19장의 문맥은, 동족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거류민들까지 사랑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 말씀 들어보세요. “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아멘.
방금 제가 읽어드린 말씀은 레위기 19장 33절과 34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 말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웃은 누구일까요. 레위기 문맥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이웃이라는 카테고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섞여 사는 거류민들 전체를 포괄한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 누구는 내 이웃이고, 누구는 내 이웃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겁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율법사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구약 성경에 있는 말씀 중에서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를 질문한 것이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말씀을 엮어서 말씀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이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해석학적 원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죠. 성경적인 사랑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고서는 율법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가슴 깊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죄악된 존재이기 때문에, 내 본성이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장의 문맥에 따라 내 이웃에는 거류민이나 이방인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이 말씀을 내 삶에 적용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가장 먼저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마음으로, 우리의 모든 목숨으로, 우리의 모든 뜻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의 마음을 주장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고. 누구에게는 한도 끝도 없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누구에게는 일년동안 말한마디 건내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우리의 신앙생활의 현실을 돌아보며, 우리의 죄악된 본성에 대해서 하나님께 고하고,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동안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이웃을 어떤 방식으로 사랑할 것인지 결단하며, 결단한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해주시길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명령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번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노력하는 모든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받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모든 화평의 지체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화평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직 하나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지체가 있다면, 여전히 하나님께 받기만을 원하는 지체가 있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어, 그 지체가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고, 몸부림치게 하여 주시고, 성경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진심으로 깨닫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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