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하고 신실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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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사무엘하 7장에 등장하는 다윗 언약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다윗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맺으셨던 언약들에 비해 훨씬 더 특별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 상반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전지전능한 창조주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이 부자지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믿음이 없는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이러한 관계는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이신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특권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말씀에 근거한 개념이기 때문에 맞는 말입니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는 믿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만 주신다는 믿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영적인 모순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라는 존재는 자식을 양육할 때 말로 다 표현 못 할 지극한 사랑으로 양육합니다. 그 사랑의 표현은 다양하게 드러나죠. 예컨대,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갈 때에는 바른길로 인도합니다. 그 어떤 부모도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갈 때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든, 이성적으로 설득하든, 그래도 안 되면 체벌을 가하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가정에서나 학교, 학원에서 체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학교나 학원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가정에서도 체벌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육아 전문가들이 자녀를 체벌하지 않고 건강하게 훈육할 수 있는 다양한 지혜로운 방법들을 제시하다 보니, 체벌을 구시대적인 유물로 취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를 양육하실 때 경우에 따라 체벌은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89편 30절부터 32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 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시고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법과 규례와 율례와 계명을 지키지 않을 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회초리를 드십니다. 하나님의 회초리는 가벼운 회초리가 아닙니다. 보여주기식으로 겁주기 위한 회초리가 아닙니다. 32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체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금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교훈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대표적인 예로는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한 이후에 자식을 낳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갓난아기를 데려가셨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 일이 너무나도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총각 시절에는 이러한 내용이 깊게 와닿지 않았는데, 아들을 낳고 보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얼마나 아프게 때리셨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가 태어나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쁩니까.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쁩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 기쁨을 얼마 누리지도 못하고 아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한 대가이며, 죄인이 져야할 책임입니다. 이러한 뼈아픈 과정을 겪어야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으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인생의 채찍만을 강조하면, 하나님이 정말 매정하시고 무정하시고 엄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시는 자녀가 죄를 지을 때, 엄밀히 말하면, 그 자녀의 모든 죄값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다 치르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죄악에 대해서 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인생의 채찍을 들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정말 정말 엄하게 우리를 다스리신다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보다 말씀에 근거한 공의를 더욱 앞세우신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떨까요? 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마다, 또는 행동으로 죄를 짓거나 악한 생각을 할 때마다, 인생의 채찍을 맞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정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은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번, 이백 번, 아니 심지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양의 죄를 저지릅니다. 우리가 알게 되는 죄가 단 한 가지뿐이라면, 우리가 모르는 죄는 백 가지일 것입니다.”
이렇게 칼빈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는 하루에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를 수도 없이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 하나 일일이 계산하시면서 인생의 채찍으로 벌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에게 인생의 채찍을 드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가 어느 때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체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징계는 은혜이자 축복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과 밧세바가 간음하여 낳은 아이가 죽은 사건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명백하게 지은 죄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너무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회개하고 주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를 버리지 않으시고 붙드시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 내용을 살펴보고 마칠텐데요. 오늘 본문 33절과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인생의 채찍은 일반 회초리로 매를 맞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채찍이 될 수 있습니다만, 체벌은 체벌일 뿐,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예컨대,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죽음이라는 벌까지 받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윗의 인생은 밧세바와의 간음을 기점으로 해서 어려운 일들을 여러 차례 직면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생에 계속해서 그분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윗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죄악된 역사를 반복했습니다. 여러 선지자들의 경고 메시지를 듣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욕심에 따라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간과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분열되었고, 분열된 두 왕국은 이방 민족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33장 15절 16절 말씀을 보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 당했을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15절과 1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아멘.
예레미야 말씀에 따르면, 비록 이스라엘이 멸망 당했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89편 36절 말씀, 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거짓이 아닌 진실된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윗 언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 다시 말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자식의 입장에서 항상 기분 좋은 일만 일어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갈 때, 부모가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회초리를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채찍으로 죄악을 벌하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다윗은 인생의 채찍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도 국가의 멸망과 포로 시대를 경험하면서 인생의 채찍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인생의 채찍을 맞더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헤세드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하심은 다윗의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항상 좋은 것만 주시는 하나님, 언제나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 이런 식으로 우리 입장에서 긍정적인 하나님의 모습만 생각해선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억누르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애쓰고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하지만 택함 받은 자녀의 영적인 삶을 망각하고 분별력 없이 육신의 안목에 휘둘려 죄악된 삶을 즐기면서, 긍정적인 하나님의 모습만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말씀에 근거한 균형 잡힌 건강한 신앙이란 무엇인지 고민하시고, 인생의 채찍을 맞고 후회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아닌, 우리의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불러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주님,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죄악된 본성으로 인해 푯대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육적인 안목에 휘둘릴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때로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인생의 채찍을 직면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며, 다시금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고, 참된 믿음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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