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 나라들도 시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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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7편 말씀은 깊이 있게 살펴보면 신학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난문들이 있지만, 표면적으로 읽어보면 시편 87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중심 내용을 어느 정도 간략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시편 87편 기자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크게 두 가지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요. 먼저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87편 1절과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아멘. 1절에서 그의 터전이라는 말은, 그의 기초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초로 삼으신 곳, 하나님의 터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바로 어디라는 것입니까? 성산. 다시 말해 거룩한 산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은 한라산이나 설악산과 같은 산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다독하신 성도님들께서는 시온의 문이라는 말씀을 보시고 예루살렘 성전을 떠올리실 수 있으실텐데요. 해당 본문에서 시온이라는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지리적인 장소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1절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기서 그의 터전이라는 말은 원어로 바꿔서 읽으면 그의 기초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초를 거룩한 산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지리적인 위치가 무슨 배산임수와 같이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좋아 보이는 최고의 위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서 시온을 하나님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초를 두신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2절 말씀을 고백합니다.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아멘. 앞서 살펴보았듯이 1절 말씀을 전제로 삼지 않으면, 2절 말씀, 하나님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각 지파에 따라 기업을 분배해주셨고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정착하게 하신 은혜를 떠올려 보면,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주셔서 정착하게 하신 땅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어느 땅이든 동등하게 사랑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뭔가 편애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것은 편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선택하셨고, 시온에 거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시온산이 어떤 장소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번제 사건을 통해서 시온산의 이전 명칭인 모리아산을 여호와의 산으로 칭하셨습니다. 또한 시온산은 다윗이 인구를 계수한 사건으로 인해 회개하면서 번제를 바친 곳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온을 하나님의 전이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인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기 위한 계획은 다윗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하시는 거룩한 산이자 거룩한 처소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시온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창조하신 세상을 보존하고 통치하시지만, 시온을 가장 사랑하신다는 점에 대해서 우리는 감히 반문할 수 없는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87편 기자 역시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편 기자의 마음은 3절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요.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아멘.
하나님의 성이 무엇입니까? 시온산, 시온성, 또는 시온이죠. 이렇게 시온을 영광스럽다고 표현하는 내용은 성경 여러 군데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이렇게 시온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스러우신지를 고백하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이자,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곳으로만 기억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87편 기자는 두 번째 내용에서 시온의 또 다른 측면을 부각시킵니다.
둘째로 시온은 열방을 구원하는 장소로 사용됩니다.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여기서 라합이라는 말은 애굽을 뜻하는데요. 이렇게 4절 말씀에서 시편 기자는 고대 근동을 주름잡았던 강대국인 애굽과 바벨론을 말하면서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를 포함시킵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을 열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우선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둘째치고, 4절과 5절 말씀만 놓고 보면, 모든 민족들이 어디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까?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역사적으로 볼 때 맞는 말입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팩트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 모든 민족들이 출원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하죠. 민족 계열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볼 때 시온은 모든 민족들을 탄생시킨 발원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뜻하심이 없이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구원이나 심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죠.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지 않으시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어서 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6절 말씀은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명부에 이가 거기서 났다고 기록하실 것이다.”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사본마다 차이가 있고 학자들마다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는 구절이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백성들의 명부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자, 그래서 6절 말씀에 백성들의 명부가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생명책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만 참여할 수 있죠.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6절 말씀을 통해 시편 87편이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시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시편 87편은 민족적으로 굉장히 개방적인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4절 말씀에 등장하는 이방 민족들, 애굽, 바벨론, 블레셋, 두로, 구스와 같은 민족들은 이스라엘과 전쟁했던 민족들입니다. 특히 애굽은 과거에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았고, 바벨론은 남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이러한 민족들은 주적입니다. 좋게 볼래야 볼 수 없습니다. 타도해야 할 대상이며 역사적인 수치를 느끼게 한 민족들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애굽, 바벨론, 블레셋, 두로, 구스. 이 나라들이 어디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까? 시온에서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들 중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으며, 그 백성들의 이름이 명부에 기록되어있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4절 말씀에 등장하는 민족들은 멸망 당해 마땅한 더러운 민족들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민족들을 친히 태어나게 하셨으며, 생명책과 같은 명부에 기록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지만, 호세아 말씀을 보면 시편 87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 11장 1절부터 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어떻습니까. 애굽, 바벨론, 블레셋, 두로, 구스. 이렇게 할례받지 않은 민족들만 더럽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죠. 할례받고 구약의 제사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자들이 바알에게도 제사한다면, 할례받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민족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온 세상의 민족들을 볼 때, 태생적으로 우월하거나 영적으로 거룩한 민족은 없습니다. 똑같이 연약한 피조물이며 죄인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태생적으로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며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만 출생하셨고 그들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민족이든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시편 87편 기자는 이러한 내용을 기록하면서 결과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아멘.
7절 말씀은 우리의 근원, 세상 모든 사람들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 말씀은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아멘.
우리의 근원이 시온에 있다는 표현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어느 민족이냐, 어떤 핏줄이냐,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시편 87편 6절,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즉, 나의 모든 근원이 시온에 있다는 찬양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편 87편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하시는 거룩한 산인 시온을 사랑하십니다. 이는 오늘날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전으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코로나로 인해 교회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는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코로나 사태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처소인 교회를 더욱더 깊이 사랑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 속히 오도록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둘째로, 모든 민족이 영적으로는 시온에서 발원했으며, 어느 민족이든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구원 받을 자들을 명부에 기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과 같이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영혼들을 부르시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포로된 자들, 육적인 안목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가족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지인들이나 이웃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로 초대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거처로 삼으시고 임재하시는 이 교회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적인 그 어떠한 복보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참된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거하시고 임재하시는 이 교회 안에서 우리가 지체 의식을 가지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를 원하오니, 주여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