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싸움에서 진 사울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9 views
Notes
Transcript
사무엘상 13장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울왕에 대한 기록 중에 가장 유명한 내용이어서 단순하게 기억하기 쉽습니다. 사울 왕이 전쟁하기 전에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제사 드려서 하나님께 책망 받았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본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울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게 느낄만한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 내용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사울이 저지른 잘못과 유사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3장 1절 말씀 보세요.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사무엘서 저자는 사울이 40세에 왕이 되었고 그가 왕이 된 지 2년 만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전쟁의 명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이미 확실한 명분이 주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9장 1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의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셨고, 사무엘로 하여금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기도 전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전쟁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영토 확장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국수주의 또는 민족주의에 따른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고통 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 민족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니,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기도 전에, 아니 사울 머리에 기름을 붓기도 전에, 블레셋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계셨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블레셋 네 이놈들, 내가 지금까지 벼르고 별렀다.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명분과는 별개로 이스라엘과 블레셋 민족 사이의 전력차이가 너무나도 심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5절 말씀 보시면, 블레셋 군대의 전력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거가 삼만이고, 마병이 육천이며,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병력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 규모인지 감이 잘 오지 않으실텐데요. 사사기 4장 말씀을 보시면, 사사시대에 하솔 왕 야빈이 철병거 900대로 무려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학대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인 사무엘상 13장 5절에서 블레셋의 병거가 몇 대라고 나와 있습니까? 삼만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이죠. 반대로 이스라엘의 병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사무엘상 13장 2절 말씀 보시면,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라고 기록되어 있죠. 병력은 3천명이 전부입니다. 또 사무엘상 13장 22절 말씀 보세요.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전쟁을 하는데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칼이나 창이 없다는 겁니다. 칼이나 창과 같은 제대로 된 무기는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다는 것이죠.
자, 이렇게 병력도 한참 열세이고 무기의 질도 한참 뒤떨어지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사무엘상 13장 6절 말씀 보세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전쟁하기 바로 직전의 상황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심기일전해야하는 상황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위급함을 보고 절박해서 온갖 곳에 다 숨어 들어갔다는 겁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상황이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전쟁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누가 봐도 피박살이 날 것이 분명한 전력 차이인데, 죽자고 달려들 바보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탈영병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자, 이렇게 객관적인 전력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고, 탈영병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는 사울은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8절 말씀 보세요.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매일 같이 탈영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군대 사기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황에서 사울 왕은 사무엘이 정한 대로 잠자코 기다렸습니다. 사무엘이 말한 대로 7일 동안 기다린 겁니다. 그렇게 목 놓아 기다리다 기다리다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어쩔 수 없이 본인이 하나님께 번제를 바칩니다. 그런데 하필 이때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죠. 11절과 12절 말씀 보세요.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우리말로 읽으면 뉘앙스가 잘 느껴지지 않지만, 히브리어로 읽으면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굉장히 공손한 어조로 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사울이 번제를 바친 행위를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까요?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라고 했습니까? 3만대의 병거와 육천명의 마병, 그리고 철기 무기로 무장한 해변의 모래 같이 많은 블레셋 군인들이 진 치고 있습니다. 반대로 철기 무기는 무슨, 무기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삼천 명의 오합지졸 이스라엘 군인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자, 이러한 상황에 구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는데, 사무엘 선지자는 언제 올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약조했던 7일이 벌써 흘렀습니다. 백성들은 계속해서 이탈하고 흔들립니다. 군대의 사기가 끝도 없이 떨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못한 사울 왕을 질책할 수 있을까요? 만약 사울 왕이 잘못했다는 판단이 즉각적으로 서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온전치 못한 신앙생활을 합리화하거나 세상과 타협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무엘상 13장 13절과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 선지자가 무엇이라 말합니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망령되이 행하였다는 말은 어리석게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울이 어리석게 행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면 사울은 나름대로 최선의 행동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네. 이렇게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은, 사울의 행동을 망령된 행동,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진단합니다.
사무엘상 13장 14절에서 무엇이라 말합니까.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음에 맞는 사람.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냥 문자적으로만 보면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13절과 14절 문맥에 따르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란, 망령되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과연 우리 자신은 상황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에 맞게 합리적인 판단을 우선시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영적인 관점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의 상황은 사무엘상 13장의 맥락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않은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과연 나는, 사무엘상 13장 문맥에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깊이 고민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새롭게 결단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무엘상 13장 말씀을 통해 가장 먼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신앙과 삶을 구분하며 살아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시하며,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울과 같이 상황에 맞게 합리적인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주님, 우리의 심령을 붙잡아 주시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뜻을 밝히 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