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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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인 다니엘서 9장 2절 말씀을 보시면, 다니엘이 책을 통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깨달음이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알려주신 포로기의 연수인데요. 이 내용은 예레미야 25장 9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제가 9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을 읽고 예루살렘이 멸망 당한 경위와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동안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렇고 다니엘도 그렇고, 몇몇 의로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남유다의 멸망이 억울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거나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할 때, 마지막 구호를 붙이지 않고 팔벌려 뛰기 10회. 이런 걸 시키면, 누군가는 꼭 우렁차게 마지막 숫자를 외칩니다. 정말 정말 희한하죠. 저는 태어나서 그런 실수를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벌받는 건 똑같습니다. 마지막 번호를 말한 사람이나, 말하지 않는 사람이나 차별 없이 똑같이 벌을 받죠. 이럴 때 너무 너무 억울합니다. 나는 잘했는데, 나는 벌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저 녀석 때문에 나도 같이 고생하는구나. 이런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다니엘과 예레미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는 다니엘이 죄를 지었는지 짓지 않았는지 그런 자세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지만, 포로생활 가운데 바벨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왕에게 칭찬받는 다니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아마도 남유다 사람들이 멸망당할 때 지었던 죄와 동일한 정도의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떠나 이방 민족의 땅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떻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사람이었습니다. 죄의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의 엄중함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남유다 사람들과 동일한 정도의 죄를 짓지는 않았겠죠. 이런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떤 결과를 맞이합니까? 자신의 죄와 상관없이 남유다가 멸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7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백성들이 바벨론 왕을 섬겨야 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러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예언된 말씀을 통해서 70년의 포로기 기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과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심지어 환상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다니엘이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하는 것이 마땅할까요. 다니엘서 9장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이 기도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합니까?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씁니다. 이러한 행위는 굉장히 깊은 슬픔을 표현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자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아까 설명하면서 말씀드린 이야기. 팔벌려 뛰기 10회 하는데, 마지막 구호를 붙인 사람 때문에 같이 벌 받는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니엘은 마지막 구호를 단 한번도 외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살고 있는 이 상황은, 자기 조상들이 마지막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같이 살아가고 있을 때 발생한 일도 아니고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죄의 책임을 다음 세대들이 지고 있는 겁니다. 연대책임도 이런 연대책임이 없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 세대만 벌 받고 끝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그 세대가 지은 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손들은 무슨 죄입니까?
만약 다니엘이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금식할 필요도 없고, 베옷을 입을 필요도 없고, 재를 덮어쓸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긴 하되, 하나님께 역정을 내면서 자신이 당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해달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인간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영적으로 이 상황을 해석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단순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슬픔을 표현하면서, 간절히 구합니다. 어떤 내용으로 구합니까?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아멘.
다니엘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면서 사람이 두려워해야 하는 분이십니다. 요즘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이런 식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크시고 두려워해야 하는 분으로 고백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이 경외해야 마땅한 분이십니다.
둘째로, 다니엘에 따르면 하나님은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율법주의적으로 말씀을 지키는 사람, 자기 의를 내세우기 위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영성을 과시하기 위해 말씀을 지키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악된 본성을 지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말씀을 지키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말씀을 지키는 사람. 이런 사람은 딱히 하나님께 어떤 보상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께 사랑받는 인생, 말씀을 지키면서 죄악된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 하나님께 기도 응답받는 인생. 이러한 인생을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는데요. 이렇게 하나님을 잘 아는 다니엘이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올려드렸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서 9장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아까 팔벌려 뛰기 예화를 한번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마지막 구호를 외치지 않았고, 다른 바보같은 친구가 마지막 구호를 외쳐서 열 번하면 끝낼 것을 스무번 서른번 마흔번, 이렇게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당연히 마지막 구호를 외친 친구를 원망하겠죠. 그런데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고백을 합니까?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여기서 범죄했다는 동사의 주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주어가 무엇입니까? 우리입니다. 다시 말해 누가 범죄했습니까? 우리가 범죄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반역했습니까? 우리가 반역했습니다. 누가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습니까? 바보 멍청이 같은 조상들만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지은 죄악에 대해서 고백하면서 공동체적인 회개의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이러한 기도는 입발린 소리로 한마디만 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6절 말씀 보세요.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가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도 우리가 듣지 않은 겁니다. 8절 말씀 보세요.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여기서도 우리가 범죄했기 때문에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라 고백합니다. 이어서 9절, 10절, 11절, 12절, 13절, 14절, 15절, 16절까지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고백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심판하신 것은 공의로운 심판이면서 동시에 남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은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답도 없는 상황에 놓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니엘은 이에 대한 정답을 기도로 고백합니다. 18절 중간 부분부터 보세요.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다니엘은 전적으로 무능력한 이스라엘과 자신의 상태를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서 기적을 베풀어주시지 않는 이상,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없다는 자세로,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기도하며 간구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제가 보기에 우리 성도님들은 사회에서 어떤 범죄를 저지르거나, 아니면 영적으로 타락하신 분은 거의 계시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도에 힘쓰는 분들이신줄로 압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한 다니엘의 기도와 동일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분별력 없이 죄를 짓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굳어지면, 공동체를 위한 회개의 기도를 제3자의 입장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쟤네는 죄지었어요. 쟤네 불쌍히 여겨주세요. 이런 식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다니엘서는 무엇을 말합니까? 그만한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이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는 특별히 죄를 지은 것이 없지만, 분별력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기며,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통회하는 심정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우리도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위한 참회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 믿지 않는 분이 계시면, 가정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에 죄악을 발견하시면, 공동체 전체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에 대한 참회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가 주께 패역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의 크신 긍휼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공동체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가 지은 죄와 무관한 죄를 바라보며, 우리가 범죄했다고 하나님께 자복하며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공의를 자랑하기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온전히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죄인들을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며 회개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