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선하신 만남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6 views
Notes
Transcript
사무엘상 9장 말씀은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서 기름 부음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사울의 시점과 사무엘의 시점을 비교해서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사울의 시점에서 기름 부음 받게 된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9장 3절 말씀을 보시면,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려서 사울과 사환을 보내어 암나귀들을 찾아오도록 지시합니다. 암나귀들이 길을 잃어버려서 어딘가 계속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암나귀들을 쉽게 찾지 못해서 시간이 지연될 경우에 여비가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사울은 별 대책 없이 사환과 함께 출발합니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사울의 두 가지 단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먼저 첫 번째로, 사울은 영적인 대안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9장 5절 말씀 보세요.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사울은 사환에게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환은 다른 의견을 제시합니다. 어떤 의견인가 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말하는 대로 다 되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자는 것이죠. 그러자 사울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선지자에게 드릴 예물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단점, 준비성이 부족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나름 부잣집 도련님인 사울이, 암나귀를 언제 찾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빈손으로 나와서 찾다가 돌아가자고 먼저 이야기하고, 또 선지자를 찾으러 가자니까 예물이 없어서 못 간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누가 주인집 도련님이고 누가 사환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자 그래서 사울은 사환 덕분에 결국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됩니다. 18절 말씀 보세요.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사울과 사무엘이 처음으로 만나는데, 사울이 사무엘의 얼굴을 알아봅니까 알아보지 못합니까?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식으로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선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 민족으로부터 구원하는 사명을 받은 사사였으며, 엘리 제사장의 뒤를 잇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역할 또한 감당했습니다. 그러니 사무엘이란 존재가 이스라엘에서 유명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 무슨 티비나 뉴스와 같은 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사무엘을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이름은 알아도 얼굴은 모를 수도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무엘상 7장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또 사무엘상 3장 20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렸습니까? 벧엘 길갈 미스바 지역을 순회하면서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 입은 줄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사무엘은 은둔형 지도자가 아니었음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도 했고, 사사로서 재판하는 역할과 백성들을 다스리는 역할도 감당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지간해서는 사무엘의 얼굴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사무엘의 얼굴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의 행방을 물어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죠. 이렇게 사울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모르고 사무엘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상징하는 선지자의 기름 부음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사울의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얻어걸려서 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의 입장에서 사울에게 기름을 붓기까지의 정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의 전환을 진행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버림받은 느낌을 받았죠. 또 사무엘은 왕정 시대가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왕의 제도에 대해 가르치는 역할도 감당했습니다. 그러니 사무엘의 입장에서는 왕정 제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왕으로서 누가 다스릴지 걱정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미리 알려주십니다. 사무엘상 9장 15절과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하나님께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보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점찍어두신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9장 16절 중간 부분부터 보세요.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왕을 세우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우상숭배하면서 하나님께 반복적으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범죄해서 하나님을 진노케 만들고, 이방 민족들에게 압제당하면서 징계받고, 부르짖어서 사사를 통해 구원받고.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불순종하는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시면서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나의 백성이 나를 버리고 또다시 죄를 지을 것을 알면서도 이방 민족들로부터 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시는 겁니다.
자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울이 자신을 찾아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무엘과 사울이 만나는데, 사울이 사무엘의 얼굴을 못 알아봅니다. 못 알아보는 것도 참 희한한데, 이뿐만 아니라 사울이 겉보기에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배포는 얼굴과 키값을 못합니다. 사무엘상 9장 21절 말씀 보세요.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사울의 표현은 겸손해 보일 수 있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인 발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어떤 발언을 했습니까? 자기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가장 작은 지파인 베냐민 지파이고, 자기 가족은 베냐민 지파에서 가장 미약한 가족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마음대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계획을 품고 사울을 사무엘에게로 인도해 주셨는데, 정작 사울 본인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울, 특별한 계획이 없는, 비전이 없는 사울을 부르셔서 기름 부음 받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가혹한 운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서 쓰시고 영광스러운 임무를 부여하시며, 그에게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사울은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때에, 왕이 될 사람이 사사이자 선지자이자 제사장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의 영적인 통치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사무엘의 얼굴을 모를 수 없을텐데, 사울은 사무엘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기스의 집 사환의 도움이 없었으면 사무엘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울을 들어서 쓰십니다. 이방 민족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시키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이러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이 얼마나 놀랍고 예측 불가능한 것인지 돌아보시면서,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울조차 들어서 쓰신 하나님께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며 애쓰는 주님의 자녀들을 외면하실 리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시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주님의 손길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오감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이끌어가시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함부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제한하는 우를 범치 않도록 우리의 심령을 붙잡아 주시옵고, 놀라우신 주님의 뜻과 계획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으로 주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오니,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모두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