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옷자락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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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는 영적인 암흑기라 불리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사사시대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에 따라 사사들의 영적인 지도력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하되어갔죠.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사사들이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했다가 다시 회개했다가 또다시 범죄했다가 회개하는, 악순환의 고리 끝없이 반복합니다. 지도자도 영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고, 지도자를 따르는 백성들도 온전하지 않은 그런 영적인 암흑기가 바로 사사시대입니다. 룻기는 이러한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사기와 룻기는 서로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사사시대가 영적인 암흑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룻기 말씀을 통해 시대가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중요한 순간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룻기 3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룻을 위해서 결혼을 주선하겠다고 말합니다. 룻기에서 나오미는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고, 며느리만 데리고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룻이 결혼하면 나오미 본인에게는 크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룻이 주워오는 곡식 알맹이들을 모아서 검소하게 먹고 살고자 하면, 굶어죽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나오미의 입장에서는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결심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따라왔기 때문에, 룻이 나가서 곡식을 주워오는 것으로 먹고 살아도 될 일이었습니다. 요즘 시대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만, 구약시대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며느리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것이 당연히 더 편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나오미는 자신의 편안함과 행복보다는 나오미의 행복을 원했습니다. 나오미가 룻의 재혼을 추진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일 좀 시킨다고 그것이 죄입니까? 죄는 아니겠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오미는 룻이 평생토록 시어머니만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모압 땅에서 끝까지 자신을 따라온 룻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오미는 룻기 3장 1절에서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 그래서 나오미가 룻의 재혼을 추진하는데, 나오미의 마음속에는 점 찍어 놓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룻의 기업 무를 자, 룻의 가까운 친척인 보아스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기업으로 받은 땅을 팔거나, 여성의 경우에 남편을 사별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척이 값을 지불하고 그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을 기업을 무른다고 표현합니다. 레위기에 기록되어있는 율법 중 하나인데요. 오늘 말씀에서는 기업 무르는 자의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 말씀 가운데 나타난 보아스와 룻의 삶의 정황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룻기 2장에서 룻과 보아스는 이미 서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오미가 추진하는 중매는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는 중매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고, 또 서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추진되는 재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나오미는 룻의 재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희한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목욕하고 향을 바른 다음에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가서 머물라고 지시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보아스가 수확한 곡물을 키질하려면 타작마당으로 곡물들을 옮겨야 하고, 또 옮겨놓은 곡물들을 도둑질당하지 않으려면, 보아스가 타작마당에서 곡물들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오미의 생각에 보아스는 100% 확률로 타작마당에서 잠을 청할 것이기 때문에 룻을 타작마당에 보내서 결혼을 성사시켜야겠다. 이런 계획을 세우고 룻을 단장시켜서 보낸 것입니다.
자, 그래서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아스와 룻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영적인 성숙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룻기는 사사시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사시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돈과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일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복 받으려고 레위인을 돈 주고 개인 사제로 고용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입다처럼 잘못된 서원으로 인해 자신의 딸을 인신 제사로 바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율법이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또 하나님의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그 안에 담긴 율법의 정신은 무엇인지, 이러한 내용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한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행위로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였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혼탁한 사사시대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대에 남녀가 타작마당에 누워있습니다. 밤새도록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작마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만약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육체적인 욕구대로 움직일 것이 분명합니다. 타작마당에 누워있는 보아스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입니다. 핏줄로 따지자면 룻의 기업 무를 자입니다. 물론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기업 무를 친척이 한 사람 있기는 합니다만, 돈과 권력이면 다 되는 세상에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나 할 것 없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사는데,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게 뭡니까? 그냥 돈으로 힘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면서 살아도 되는 시대였습니다.
또 룻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룻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모압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는 더러운 이방 민족이라고 볼 수 있겠죠. 게다가 룻은 이방 민족인 것도 모자라서 돈도 없습니다. 남편도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모시고 있는 시어머니가 전부입니다. 그러니 룻은 곡식을 줍지 않고서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베풀어준 호의 덕분에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나오미가 보아스의 타작마당으로 룻을 보냅니다. 자, 그렇다면 이때 룻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아스와 육적인 관계를 맺어서 빼도 박도 못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보아스와 룻이 믿음 없는 사람들이었다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자유롭게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결혼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영적으로 타락하고 죄악이 범람하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육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득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아스가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룻기 3장 12절과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본인이 돈이 많든 적든, 지역사회에서 힘이 강하든 적든 관계없이, 율법에 따라 기업 무를 자로서 룻과 가장 가까운 친인척관계에 있는 사람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만약 그 사람이 룻의 기업을 무르겠다고 결정하면 룻과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전까지 보아스와 룻이 어떤 관계에 있었든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업 무르는 자가 룻을 취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율법에 따라 그리고 순서에 따라 기다리겠다는 보아스의 결정은 참으로 성숙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원래 13절까지이고 내일 본문 말씀이 14절부터 시작되는데, 내용상 14절 말씀까지만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는 룻이 밤새도록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룻을 내보냅니다. 이것 역시 보아스의 성숙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룻의 기업 무를 자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상한 소문이 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젯밤에 룻이 보아스 타작마당에서 나오는걸 누가 봤대. 그래? 둘이 결혼한대? 둘이 어떤 사이래? 이런 소문들이 삽시간에 퍼지지 않겠습니까? 만약 보아스가 룻에게 관심이 있고 좀 더 확실한 방법으로 룻과 결혼하려면 사람을 써서 소문을 퍼뜨리든, 아니면 누군가와 확실하게 마주칠 수 있게끔 날이 밝고 나서 룻을 보내든, 뭐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보아스가 율법을 어기고 룻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어서 결혼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룻은 보아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여성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듣고도 기업을 무르겠다, 내가 대신 책임지고 결혼하겠다 이렇게 나서겠습니까?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아스도 잘 알고 있었겠습니다만, 너무나도 성숙한 자세로 룻을 배려합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룻을 조심스럽게 보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아스의 행위는 룻과 자신이 결혼하지 못할 가능성을 스스로 높이는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신실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무슨 자신감입니까? 보아스가 돈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죠. 보아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아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뒤에서 은밀하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더러운 편법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물질과 권력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하거나, 음모 술수를 통해서 원하는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방식들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적인 암흑기인 사사시대에, 율법이란 무엇이며, 하나님의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무엇을 목숨처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런 어두운 시대에 보아스라는 인물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세상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고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율법에 따라서 순서를 잠잠히 기다리고, 주님의 일하심을 의지하는 보아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랑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사시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더욱 더 악해져만 갑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기 쉽습니다. 이렇게까지 지킬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까지 손해를 감수할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까지 인내할 필요가 있는가. 여러 가지 다양한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타작마당에 누워있는 보아스의 모습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룻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노라 말하고, 또 룻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과 기업 무를 자의 바른 선택을 위해서 지혜로운 방식으로 룻을 보내주는 보아스의 성숙한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나눈 룻기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아슬아슬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간신히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 뼛속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구별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적인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크신 계획 가운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시면서 복된 하루를 살아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룻기 3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목숨처럼 지키는 것이 마땅하나, 오늘날 우리 신앙과 삶의 가치관은 세상과 타협하는데 너무나 무뎌져 있음을 고백합니다. 보아스가 타작마당에서 룻에게 지혜롭게 행동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세상적인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말씀대로 행하며, 그 가운데 역사하실 주님의 손길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뎌진 우리의 심령 가운데 새로운 영을 부어주시고 다시 새롭게 결단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도자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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