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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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살펴본 사무엘상 20장 말씀을 끝으로 21장부터는 다윗의 도피 생활이 시작됩니다. 보통 다윗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대부분이 골리앗과 싸워 승리한 다윗의 모습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굉장히 임팩트있는 사건이었겠습니다만 다윗과 골리앗에 관한 사건은 사무엘상 17장 41절부터 54절까지, 단 열 네절 분량밖에 되지 않습니다. 만약 사무엘서 저자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다른 사건들에 비해 훨씬 더 강조하고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 내용을 굉장히 길고 장황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굉장히 간략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의 어떤 모습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을까요? 그 내용은 바로 다윗의 도피 생활입니다. 다윗의 도피 생활은 사무엘상 21장부터 31장까지, 즉 사울왕이 죽을 때까지 도피 생활을 이어갑니다. 한때는 백성들과 궁정 관리들에게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다윗이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의 반역자 신분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반역자에게는 현상금이 걸리죠. 돈이 되었든 벼슬이 되었든, 뭐든간에 반역자 목에 걸린 상금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표적을 쫓게 만듭니다. 그러니 사무엘상 21장 내용부터의 다윗의 모습은 어딜 가더라도 마음 편히 누울 수 없고, 또 불안에 떨면서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그런 반역자의 처지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기나긴 도피 여정 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첫 번째 여정이 바로 사무엘상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그런데 이 사무엘상 21장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다윗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학자는 다윗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반대로 다윗의 행동이 영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합니다. 평소에 설교 말씀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본문인 만큼, 오늘 이 시간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을 묵상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사무엘상 21장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다윗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자들의 근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다윗이 계속해서 거짓말하기 때문에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윗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다윗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하지 않았는지 본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무엘상 21장 1절 말씀 보세요.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다윗이 놉에 갔다고 하는데, 놉이라는 곳은 스코푸스산 정상에 있는 성읍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사울왕 시대에 중앙 성소의 역할을 감당했던 장소였습니다. 아히멜렉이 사울왕과 다윗의 관계를 정확하게 아는지 모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이 혼자 방문한 것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러자 다윗이 이렇게 반응하죠. 2절 말씀 보세요.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여기서 다윗이 거짓말했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2절 말씀 다시 보세요.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2절에서 왕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는 다윗이 이스라엘에 속해 있으니, 당연히 이스라엘 왕인 사울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울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다윗이 거짓말한 것이겠죠. 사무엘상 20장 내용을 보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니, 다윗에게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은밀하게 명령하거나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윗이 말한 왕이 사울이라면, 다윗이 거짓말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다윗이 성경에서 왕이라고 지칭할 때,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편 5편 2절 말씀에,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편 24편 10절 말씀에,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시편 29편 10절 하반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왕이라고 여러 차례 표현했습니다. 그러니 사무엘상 21장 2절에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말한 왕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의 가능성을 놓고 생각해보면, 다윗이 거짓말한 것인지 아닌지 확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문맥을 보고 사무엘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무엘서의 저자는 다윗이 거짓말했는지 거짓말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만약 다윗이 거짓말한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정말 악한 행동이었고,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 행동이었다면 분명히 지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맥상으로 보면, 다윗이 어떤 잘못을 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지 않죠.
자, 그리고 다윗이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번째 행동은 사무엘상 21장 10절 이하의 문맥에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10절 말씀 보세요.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숙적인 블레셋 땅으로 도망갑니다. 자, 이 부분에서 다윗의 행동을 못마땅해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방 민족의 땅으로 도망갈 수 있냐. 실망스럽다. 믿음이 없는 것 아니냐. 하나님을 신뢰하면 이렇게 도망가선 안 되는 것 아니냐. 도망가더라도 블레셋 땅으로 도망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한 나라의 왕이 정예군을 투입해 가면서까지 한 사람을 추적한다면, 그 나라에 숨을 수 있는 곳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겠죠.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해외로 도피하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자 그래서,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도망갔는데, 안타깝게도 블레셋에는 다윗의 무용담이 다윗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1장 11절 말씀 보세요.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무공을 올리고 돌아온 다윗을 향해 여인들이 불렀던 노래를, 아기스의 신하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이 블레셋 땅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없겠죠. 하지만 다윗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 급하게 사울의 손으로부터 피해 다니다 보니, 블레셋에 자신의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확인할 시간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착해보니 블레셋의 영웅을 죽이고 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어마무시한 적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그냥 사자굴에 맨몸으로 들어간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 것이죠. 이렇게 위기에 처한 다윗은 어쩔 수 없이 미친 사람인 척합니다.
13절 말씀 보세요.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다윗의 작전은 기가 막히게 통했습니다. 목숨이 걸려있는 일인만큼 연기를 잘할 수밖에 없었겠죠. 다행히 블레셋 땅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고 내보냅니다.
자,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윗은 사울왕 때문에 한순간에 군대 장관에서 반역자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칭송하고 우러러보는 위치에서 현상금이 걸린 반역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죠. 따라서 다윗은 결국 이방 땅인 블레셋 땅으로 도피하게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 땅이 사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땅이니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마터면 블레셋 땅에서 비명횡사할 뻔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다윗이 한 말이 거짓말이냐 거짓말이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토록 어려운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도피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무슨 크나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렇지 않죠. 물론 나중에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은 다윗이 정말 큰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다만, 오늘 본문에서의 다윗의 입장은 매우 매우 억울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인지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도망 다녀야 하는지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다윗이 처한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격적으로나 영적으로 연단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도피 생활로 인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가난해 봐야 물질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고, 또 배고픔을 느껴봐야 일용할 양식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감하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간절히 구하는 상황에 내몰려 봐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국가의 반역자 신분으로 도피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붙들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우리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도피생활만큼의 고생은 바라지 않지만, 우리 신앙의 연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운 상황을 허락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어려움들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굳게 신뢰하시면서, 오늘을 살아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온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을 고난의 길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감하게 하시고, 전심으로 주님을 붙드는 방법을 배우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인생에 주어진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지만, 이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문제든 관계없이 가장 먼저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고자 노력하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인생 가운데 성숙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