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깨달음과 충만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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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슬픔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부르심 받아서 예수님과 함께 활동하고 있던 이 제자들의 입장에서, 아직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슬픔과 기쁨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6절 말씀 보세요.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예수님과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24시간을 함께하는 제자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갑자기 어딘가로 떠나신다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해하지 못했습니까?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존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주시는 메시야가 아닌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켜줄 메시야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메시야께서 어딜 가신다거나 또 돌아오신다는 말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다른 말씀으로 알려 주십니다.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다른 말씀으로 설명해 주셨는데, 이 말씀 역시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해를 뛰어넘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떤 메시야로 생각했다고 했습니까? 로마의 압제로부터 독립시켜줄 메시야로 생각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제자들은 예수님과 계속해서 활동하다 보면 언젠가 이스라엘이 회복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곡하고 애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니, 이게 맞습니까?
제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해방이죠. 해방이 오기 전에 곡하고 애통할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1세기 이스라엘의 시대적인 배경에서 생각해보면 로마의 압제보다 더 슬픈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내려놔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편견과 선입견, 자기들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는 메시야에 대한 전제들.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어떤 길을 가시는 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 길이 어떤 길입니까?
제자들이 곡하고 애통하게 되는 길입니다. 여기서 곡하고 애통한다는 말씀은 보통 죽음과 연결해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그냥 슬픈 드라마나 영화, 책 보다가 눈물 흘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펑펑 눈물 쏟고 통곡하는 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곧 있으면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맞이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죽임당하실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곡하고 애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기 때문에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게 되죠. 슬픔을 먼저 느끼고 그 이후에 기쁨을 느낍니다.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할 때 어떻게 기념합니까? 교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우리 교회의 경우에는 일주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부활주일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지 않습니까? 6일 동안 슬픔을 느낀 뒤에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합니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는 다 아는 상태에서 기념하고 있지만, 복음서에 등장하는 열두 제자의 입장에서는 피부로 그 순간들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엄청난 좌절감과 크나큰 슬픔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는 기적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되죠.
이어서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아멘. 슬픔 이후에 기쁨을 맛보게 되는데, 이 기쁨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주의해서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16장 16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 때문에 예수님을 잠시 동안 보지 못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40일 정도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만난 예수님과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결과적으로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과의 이별은 예정되어있는 수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별은 종류가 다른 이별입니다. 완전한 실패라고 느껴지는 이별과, 더 큰 행복을 위한 이별은 엄연히 종류가 다른 것이죠.
16장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 어떻게 시작합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고백하면서 기도를 시작하죠. 그리고 기도를 마칠 때 어떻게 마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요한복음 16장 24절 말씀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4절에 보면, 제자들이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떻게 하라는 명령을 받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렇게 구하면 어떻게 됩니까? 2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지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이,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무지함을 아시고 친히 그 의미를 알려 주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이고, 다시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의미를 알려 주신 것이죠.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애통하게 될 것이지만, 그 슬픔은 기쁨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과의 재회로 인해 충만한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요한복음 16장 말씀을 받은 순간 이후부터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유익을 오늘날 우리들이 고스란히 받아서 누리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사건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또 다가올 고난주간을 준비하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헤어짐을 준비하시며 주신 말씀들을 묵상함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알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시면서,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시고 하나님께 기도 응답 받으시며 교통하시는 귀한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하시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무지한 제자들을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시며, 우리에게도 그 말씀을 친히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매년 묵상하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이 당연한 일로 다가오지 않게 하여 주시고, 매일 주시는 말씀 가운데, 주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망각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마땅히 구해야 할 바를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