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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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56장 9절에서 12절 말씀은 어제 말씀인 56장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과 정반대의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어떻게 보면 모순되는 말씀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사야서 56장 5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분의 영원하신 이름을 주셔서 끊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을 모으시고 그 백성들 외에도 더 모으셔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도록 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따르면 회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56장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 하나님께서는 숲과 들에 있는 모든 짐승들을 이스라엘로 불러 모으십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약탈하도록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초대하시는 겁니다. 예레미야 12장 9절 하반절에 보시면, “너희는 가서 들짐승들을 모아다가 그것을 삼키게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 역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들짐승들을 사용하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엇 때문에 심판받는 것일까요. 56장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을 책망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맹인이며 무지하며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들이며, 누워있는 자들이며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는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수꾼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다가오는 적들을 미리 파악하고 위험을 알리는 사람이 파수꾼 아닙니까?
그런데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입니다. 만약 성벽을 지키는 자들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면 어떻게 적들의 위협을 인지할 수 있을까요. 만약 파수꾼이 무지하다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피아식별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또한 파수꾼이 소리를 내지 못하는 벙어리 개들과 같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위험을 알릴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파수꾼이 누워있기를 좋아한다면 어떻게 성벽을 지킬 수 있을까요. 밤이고 낮이고 경계근무를 견고하게 서야 하는 파수꾼이 잠이 많고 잠자기를 좋아한다면 새벽에 성벽을 누가 지킬 수 있을까요. 당연히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사야서 56장 10절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이 직무유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파수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어서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0절에서 등장한 파수꾼들은 11절에서 개들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탐욕이 그칠 줄 모르며, 자신들이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1절의 개들은 목자들이라고도 불립니다.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일반적으로 양 떼를 돌보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도자를 의미하죠.
자, 그러니까 지금 이사야서 56장 후반부에서는 단순하게 파수꾼이나 목자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직업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타락한 행태와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때나, 포로로 잡혀갔던 때나, 귀환했던 때에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엄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한두 가지 잘못으로 이렇게 책망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서 뿐만 아니라 에스겔서에서도 이스라엘의 목자들, 지도자들은 엄격하게 책망받습니다. 에스겔 34장 5절 말씀을 들으십시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양떼를 지켜야 하는 목자가, 목자 노릇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양떼를 버렸기 때문에 들짐승들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에스겔 34장 8절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자신의 양떼를 먹이지 않는 목자들, 자기의 배만 불리는 탐욕스러운 목자들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서 56정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포도주와 독주에 만취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려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독한 술을 마시면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무릅니다. 하루 이틀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마시고 내일도 마시고 모레도 마시고. 계속해서 술에 의지하며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는 그런 사람들인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파수꾼들과 목자들을 어떻게 다루셔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분의 양떼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품으셔야만 할까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기다리고 무한한 사랑으로 덮어주셔야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의로 지은 죄를 용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돌아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깨끗하게 용서하고 품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신분으로나 성품으로나 죄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죄인임을 알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임을 알고 작은 죄를 짓고 가슴 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가슴을 찢고 돌아가려는 사람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죄를 짓는 행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마음가는 대로 정욕대로 사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조건없는 은혜와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정당화하는 일은 없어야만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자녀이며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삶의 위치는 다르지만, 많든 적든 누군가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마찬가지이죠. 어디서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직무를 유기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게을리 지내는 일은 없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아무런 조건 없이 대가 없이, 없던 일로 덮어주신다는 것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면 알수록,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면 닮아갈수록,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보였던 탐욕과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멀어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욕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숲과 들에 있는 짐승들을 모두 초청하셔서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벌하셨듯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우리 영혼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지하고 주님 앞에 가슴을 찢으며 돌아가고, 새롭게 살아가기를 결단하며 소망을 품는다면,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탐욕의 극단에서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고, 그러한 악한 욕망에서 완전히 돌아서기로 결단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재물과 주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우리 삶은 어떠한지 상고하게 하시고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참 주인이심을 고백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나 자신의 만족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온전한 기쁨을 느끼게 하시고, 탐욕과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허락하신 하루하루를 값지게 살아가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