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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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에 등장하는 마지막 사사인 삼손은 다른 사사들과 구별되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특징,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말씀에 따르면 나실인 규례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된다는 규례, 머리를 깎지 말라는 규례, 시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되고 부정한 것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규례. 이 세 가지 규례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나실인입니다.
이러한 나실인 규례는 나실인을 속박하고 그들의 삶을 규제하고 특정 행위만을 금지시키기 위한 규례가 아닙니다. 나실인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나실인 규례를 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나실인의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손이 다른 사사들과 구별되는 두 번째 특징, 삼손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진 장사였다는 것입니다. 맨손으로 사자를 찢고 나귀의 턱뼈로 천 명을 죽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삼손의 구별되는 특징은, 삼손이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할만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영적으로 삼손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여호와의 사자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았고,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삼손은 굉장히 특별한 존재라는 인상을 줍니다. 또한 삼손은 육체적으로 어떠했습니까?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삼손은 실패한 삶을 살았습니다. 삼손이 가지고 있는 삼손만의 두 가지의 특징은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났지만 나실인 규례를 모두 어겼으며 삼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힘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삼손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다면, 사사기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사보다 손쉽게 블레셋을 쫓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블레셋을 쫓아내는 일보다 여자를 쫓아다니는 일에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들릴라와의 관계를 보면 어떻습니까. 누가 봐도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블레셋에게 사주 받아서 삼손이 가지고 있는 힘의 비밀을 알아낸 뒤에 그를 죽이게 만드는 것이 들릴라의 목적 아니었습니까? 심지어 들릴라가 하려는 행위가 무엇이었는지는 이미 세 번이나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들릴라의 의도와 목적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들릴라를 짝사랑하다가 결국 힘의 비밀을 실토하고 맙니다.
사사기 16장 16절 말씀 보십시오.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날마다 날마다 말로 재촉하면서 졸랐다고 합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삼손을 죽일 정도로 괴롭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비슷한 구절을 한 가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 39장 10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날마다 자신과 동침할 것을 요구했으나 요셉은 이를 매번 거절하고 보디발의 아내와 같은 자리에 있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물론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고,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거부하기 힘든 요구를 매일 매일 받았다고 해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삼손은 특별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았습니까? 삼손이 활동하던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방 민족에게 지배를 받던 치욕스러운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받은 삼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자신이 받은 사명을 망각하고 들릴라를 쳐내지 못해서 결국 힘의 비밀을 실토하고 맙니다. 그 결과 삼손은 눈이 뽑히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됩니다. 적국인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다른 사사도 아닌 무려 삼손이 이런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이러한 삼손의 삶을 바라보면서 두 가지 교훈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사람의 출생 신분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개인적인 능력치는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이런 말들 많이 하지 않습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계급과도 같은 표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우리는 삼손의 삶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태어날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 나실인으로 구별된다? 엄청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태어나지만, 나실인은 뭔가 더 특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특별한 삼손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은 완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실인이면 뭐합니까.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발기는 힘이 있으면 뭐합니까. 본인이 자각하고 본인이 깨닫고 본인이 하나님 앞에 엎드릴 줄 모르면, 그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성인 부모님 아래에서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 공부 잘해서 남들이 우러러보는 스펙을 갖추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돈을 억수로 많이 벌면 행복할까요. 성경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부러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교훈, 삼손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인 지식을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을 감히 예측할 수도 없고 그 내용을 다 알아낼 방법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그분의 계획과 섭리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삼손의 삶을 보십시오. 들릴라에게 힘의 비밀을 누설하고 눈이 뽑히고 재롱꾼으로 전락한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십시오. 또한 이런 삼손의 모습을 보면서 다곤신을 찬양하는 블레셋의 모습을 보십시오. 삼손의 실패와 패배가 하나님의 실패와 패배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특별하게 구별한 삼손이 비참한 모습으로 실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삼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삼손을 어떻게 사용하십니까? 눈이 뽑히고 힘을 잃은 삼손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그에게 힘을 주셔서 다곤 신전의 두 기둥을 뽑아서 건물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삼손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이십니다. 평소에 우리의 삶이 챗바퀴 도는 삶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배경과 상황과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뜻하신다면, 우리를 통해 그 어떠한 일도 해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기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에 비추어 스스로를 돌아보며 죄악된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몸부림치며 고군분투하는 참된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또 우리가 스스로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이러한 부분들을 명확하게 분별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사기 시대와 다를 바 없이 악하고 타락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깨달음을 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어떠한 능력이 있어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씀으로 분별하지 않는다면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삶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달아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결코 패배하지 않으시는 주님, 주님을 바라보며 참된 소망을 품게 하시고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의롭고 참된 길을 온전히 따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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