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 야엘이 끝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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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기도회 말씀을 통해 우리는 드보라 시대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왕 야빈에게 압제 당한 사실과 이스라엘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옷니엘과 에훗 시대에는 다른 땅에 살고 있는 메소포타미아나 모압과 같은 나라에게 압제 당했지만 드보라 시대에는 여호수아 시대 때 이미 정복했던 가나안 사람들에게 압제당하는 치욕을 당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이 가나안 왕 야빈은 철병거 900대를 운용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아마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이스라엘은 철기로 된 무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청동으로 된 칼로 싸우는 것과 철로 된 칼로 싸우는 것, 무엇이 승리하기 쉽겠습니까? 당연히 철기겠죠. 게다가 병거 900대까지 운용을 한다면 어떨까요? 숫자가 두배 이상 된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점치기 어렵습니다. 군마가 이끄는 강력한 병거와, 병거에 탄 병사들이 휘두르는 철로 된 칼이 이스라엘을 지푸라기 베듯 쓰러뜨릴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칼을 맞대봐야 아는 전쟁이 아닌, 애초에 매치업이 성사될 수 없는, 체급 자체가 격이 다른 그런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어제 나눈 말씀인 사사기 4장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전쟁의 신처럼 느껴지는 군대 장관 시스라를 넘겨주실 것이다? 철병거 900대와 철로 된 칼을 휘두르는 가나안 군사들을 넘길 것이다? 그런데 싸우는 장소가 기손 강이다? 어느 것 하나 말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기손강은 길이가 37km나 되는 굉장히 긴 강입니다. 이 기손강은 건기일 때 강이 아닌 냇물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기손강과 연결되어 있는 에스드랄론 평지는 굉장히 넓어서 철병거 900승이 위엄을 뽐내며 도열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병거를 이끄는 군마가 한 마리라고 가정할 때, 에스드랄론 평지에 900마리의 군마가 도열해 있고 그 군마가 이끄는 900대의 육중한 병거와 날이 선 철로 된 칼이 태양빛을 반사하며 빛을 발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제대로 된 칼 한자루도 없는 이스라엘이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상황에 드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바락에게 시르라를 넘겨주신 날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넘겨 주신 날이라는 말에서 넘겨주다라는 동사의 시제는 완료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확정되었다는 뜻이죠. 칼을 맞대 보지 않았지만, 한 합도 겨뤄보지 않았지만 이미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스포일러, 전쟁의 결말을 드보라가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전쟁의 서사를 디테일하게 기록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철병거 900대와 이스라엘이 싸우는 모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드보라가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승리합니다만, 이 전쟁의 승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 세 가지를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더라도 그 역사가 일어나기 까지 말씀에 순종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한순간에 온 인류의 목숨을 앗아가실 수 있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며 더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성장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보라는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시르라를 손에 넘겨주셨다고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락은 어떠했습니까? 결국 승리로 이끈 사사로 기억되긴 합니다만, 처음에 바락은 드보라가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는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넘겨주신다는 약속은 여인에게 넘겨주신다는 약속으로 변경되고 말았지요.
이러한 성경의 기사를 통해서 우리는 드보라처럼 약속을 굳게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부분만 고려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한 채로, 다른 사람을 의지하려는 사람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락의 이름 뜻은 번개입니다. 번개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동일하다고 하는데요. 숫자로 표현하자면 1초에 30만km를 이동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속도입니다. 그런 속도를 가진 번개가 바락의 이름이죠. 그런데 바락은 어떠했습니까? 주저하는 번개였습니다. 과연 진짠지 아닌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하지 못해서 드보라가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느린 번개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런 느린 번개조차도 결국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바락이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했으니까요. 하지만 시스라를 죽이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번개가 아닌 이방 여인 야엘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두 번째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사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자 한다면, 이방 여인을 통해서라도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대패한 시스라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야엘에게 찾아가 몸을 숨깁니다. 그리고 야엘이 준 우유를 마시고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야엘에 의해 죽임당하지요. 철병거 900대를 지휘하던 막강한 가나안의 군대 장관이 여인에 의해 죽임당한 것입니다. 철무기를 다루던 사람이 여자에 의해, 그것도 나무 말뚝에 의해 죽임당하는 사실은 너무나도 큰 모순을 안겨줍니다.
전쟁으로 흥한 자, 전쟁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지만, 시스라가 죽은 것은 전쟁에서 일어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도 말 못할 비참하고 부끄러운 죽음이지요. 시스라가 이미 죽어있을 때 바락은 시스라를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번개가 한 발 늦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변경,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다. 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굳이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사람을 전쟁의 승리의 주역으로 만들어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이방 여인을 통해서라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실은,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구원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지만 디테일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4장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고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실패가 섞여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약속 내용의 디테일에 변경이 생깁니다. 바락이 아닌 여인이 시스라를 죽이게 된다는 것이었죠.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승리는 승리입니다. 어마어마한 대승을 거두게 되었죠. 하지만 바락의 입장에서는 석연찮은 승리입니다. 사사로서 앞장서서 적군을 물리쳤지만, 적장의 목은 베지 못했습니다. 적장의 목숨은 이방 여인이 이미 취한 상태였습니다. 번개라는 이름 뜻을 가진 바락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시스라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하나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믿는 자에게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불신하고 주저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승리를 맛보지만 쓰디쓴 뒷맛이 남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오늘날 우리는 여인의 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대히 나아가는 드보라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불신하고 주저하는 느린 번개 바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실 것이 분명하지만 부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역사의 주역으로서 말씀을 온전히 믿고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반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사 시대처럼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지 않지만, 매일 매일 마주하게 되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오니 주님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믿음이 흔들리는 우리 지체들을 붙잡아 주시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만 누리고자 하는 나태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즉각적인 행동으로 옮기며 순종하는 모든 화평의 지체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작은 행동 하나 하나 믿음으로 실천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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