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이 경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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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이사야서 1장부터 66장까지의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결론 부분에 해당됩니다. 이사야서 7장에서 39장까지는 심판에 관한 내용이, 40장에서 66장까지는 소망에 관한 내용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심판에 관한 내용 중에는 소망에 대한 내용이 간혹 등장하기도 하고, 소망에 관한 내용 중에는 심판에 대한 내용이 간혹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면, 이사야서는 묵상하기 참 어려운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마지막 장이자 이사야서 전체를 마무리하는 결론 부분인 오늘 말씀에서는 소망과 심판이 교차해서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사야서에 있어서 심판과 소망, 소망과 심판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종말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날에 악인이 심판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은 딱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의인의 부활과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사망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소망과 심판, 심판과 소망이 서로 교차해서 등장하는 내용은 극과 극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마땅히 믿어야 할 바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사야서 66장 15절에서 17절까지는 심판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정의와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지만, 하나님의 공의에는 그분의 엄중한 진노가 담겨있습니다. 15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는 불로 표현됩니다.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이신 상태로 강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또한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과정에서 타고 오실 수레 또는 병거의 회오리바람은 얼마나 맹렬하게 달려오시는지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요즘 시대에는 이런 광경을 보기 어렵지만, 시대극과 같은 영화를 보다보면, 수많은 기병대가 도열해서 진격할 때 땅이 울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땅울림과 기병대가 일으키는 거대한 흙먼지가 15절에서 등장하는 수레의 회오리바람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또한 맹렬한 화염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노여움과 심판은 생각만해도 두렵지만, 심판의 하나님에 관한 이미지는 우리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거룩해진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공포를 일으키는 두려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복음을 거부했던 사람들에게는 반역의 대가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불과 칼로 심판하시는데, 이 심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혈육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 반역을 저지른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불과 칼에 삼켜집니다. 이렇게 심판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세상의 죄악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심판받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여기에 추가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의식적으로만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거룩함은 진정한 거룩함이 아니죠. 하지만 의식적인 거룩함 자체로 만족했던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받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사야 선지자에 따르면 우상숭배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의식적인 거룩함만으로 거룩하다 생각하고, 구원받았다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과 쥐를 잡아먹는 사람들과 똑같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방인이 아브라함의 자손보다 더 나은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본능적으로 거부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과 논쟁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사두개인들도 다 거부했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사야서에서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심판에서 소망으로 주제가 전환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온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만 택하셨고 이스라엘만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은 아브라함의 자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인 역시 주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주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구원을 얻는 길은 혈통에 따른 것이 아니며, 제의적인 수순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방인이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레위지파 출신이어야만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정해주신 율법입니다. 어느 누구도 토라의 가르침을 위반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 사람들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이방인이 어떻게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제의적인 구분이 없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이런 일이 구체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가. 감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이사야서에 따르면, 마지막 날에는 어린양과 이리가 함께 살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함께 뛰놀 것이라 말합니다. 말도 안되는 일이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마지막 날인데, 그날에 아브라함의 자손과 이방인의 구분이 허물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고 레위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할만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마지막 날인데, 이러한 날이 찾아오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주님과 교제하는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마지막 날에 대한 묘사들 중에서 이 말씀은 단회적인 행위가 아닌 영구적인 행위를 묘사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서 택함 받고 구원 얻은 주님의 백성들은 영원히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그런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23절에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이보다 더욱 큰 기쁨이 어디에 있을까요.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영원히 기쁨의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니, 이보다 더욱 큰 위로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러한 말씀은 이사야서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어려움과 수고로움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받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물질적인 행복을 추구하지도 못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마지막 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영원히 주님과 교제하며 영생을 누림으로 충만한 위로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복된 삶을 살아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증해주시고, 그날까지 변함없이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그날이 다가옴을 인식하고, 주어진 나날들에 최선을 다하며 우리의 삶으로 주님께 영광 올려드릴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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