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야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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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랄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무언가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게 됩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든지, 질병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이라든지, 불의의 사고라든지,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죠. 이런 일들을 만날 때 극히 드문 확률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상식적인 영역을 벗어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극단적인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적을 베풀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탓해선 안 됩니다. 기적에 의존하는 믿음은 건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러한 점에서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이전 문맥인 요한복음 11장 상반부에서는 예수님과 나사로가 어떤 관계였는지 잘 나타납니다. 11장 3절 말씀을 보시면,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병들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활동하시던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사람, 아끼는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겁니다. 나사로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도대체 어쩌다가 죽을병에 걸렸는지, 기존에 앓고 있던 지병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친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죽을병에 걸릴 수 있고 병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백점 짜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항상 행복하고 항상 건강하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더도 때로는 아플 수 있고 때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나사로의 병은 죽음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나사로의 죽음은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드러내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37절 말씀 보십시오.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은 전례 없는 어마어마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따르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셨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셨는데, 정작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나사로의 죽음은 어째서 막지 못하신 것일까요? 유대인들은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지적하는 것은 단순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님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구심이나 의심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충분히 생겨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기 전부터 함께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사로가 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얼마든지 단번에 치유해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죠. 그 결과 나사로는 질병으로 인해 사망합니다.
생면부지의 맹인은 치유해주셨으나,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나사로는 치유해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마음은 어려워집니다. 그냥 쉽게 쉽게 가시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사로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정하신 예수님. 왜 지켜만 보셨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두 가지의 사실을 통해 떨쳐낼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나사로가 걸린 병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걸리게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나사로가 어떤 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나사로를 병 걸려 죽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악한 의도이든 선한 의도이든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악의 조성자가 되실 수가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는 이유로 나사로가 걸린 병을 치유해 주셨다면, 모든 질병으로 고통받는 주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고쳐주시는 것이라면, 애초에 이 세상에 모든 질병을 사라지게 만드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어야만 합니다. 추위도 없고 더위도 없고 질병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가난도 없는 그런 완전한 세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희로애락에 관하여, 모든 질병들과 불의의 사고들, 고통들에 관하여 초연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사로의 육체적인 질병이 죽음으로 연결되어서 장례까지 치르게 되었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게 되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11장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아멘. 애초에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든 일의 특수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특수성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권능과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목적으로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로가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극적인 상황,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여겨질 때까지, 곧 나사로가 무덤에 매장되기까지 기다리셨다가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사실의 근거해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에 걸리자마자 즉시 치유해주지 않으신 것이고, 나사로의 시신이 부패되어 냄새가 나는 상황에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예수님께서 어떤 마음을 품으셨는지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어차피 살릴 수 있으니까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기적을 베푸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죽음? 까짓거 뭐. 내 말 한마디면 죽은 나사로가 일어날텐데,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굳이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충격적인 반전이나 어떤 결말을 미리 알고 보면, 감동이나 충격이 덜하지 않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그냥 무미건조하게 적당한 쇼맨십을 가미해서 나사로를 살려주시고 끝내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차가운 마음으로 이 모든 일들을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로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병으로 죽음에 이른 나사로와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시고 또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3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울지마라, 곧 살아난다. 그만 울어라. 내가 옆에 있는데 뭐 이 정도로 슬퍼하냐.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슬픔에 잠겨있는 모든 이들을 바라보시며 마음으로 비통히 여기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공감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자신의 능력으로 나사로를 곧 살리실 것이 분명하지만 모든 이들이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시고 슬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한낱 피조물인 인간의 마음을 공감하시고 그들의 일을 남일처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하찮은 일로 여기지 않으시고 가슴 아파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내용을 기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첫 번째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신앙생활하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 병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나사로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병에 걸리고 병으로 고통받을 수 있고 심할 경우에는 죽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외면하시거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거나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에 따라 일하시기에 얼마든지 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르는 일들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잠자는 모든 자들이 일어나 영원토록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그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의 고통이나 죽음을 공감하시고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깊은 사랑을 기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비통히 여기셨고, 불쌍히 여기셨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은 나사로만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마음이 오늘날의 우리들, 나 자신을 향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구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나사로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모든 어려운 상황들을 예수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아주시고 공감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예수님으로 인해 풍성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위로하시는 따스한 사랑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고 그 사랑에 힘입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우리 주님의 위로와 사랑에 온전히 의지하시면서 오늘도 기쁨과 소망이 가득한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눈동자 같이 지켜주시는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그 죽음을 슬퍼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따스한 사랑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 그 사랑이 오늘날 우리를 향해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 사랑과 위로에 힘입어 오늘도 빛과 소금된 역할, 주님의 제자된 인생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님의 몸 된 교회, 온 세상의 복음 전파를 위해 언제나 부단히 힘쓰고 애쓰며 주님께 영광 돌려 드리는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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