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쓸모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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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자비, 은혜, 섭리, 언약. 이러한 단어들은 특별히 외우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의미가 마음에 와닿고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부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심판이나 징계, 죄와 회개, 율법 이러한 단어들은 뭔가 꺼림직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율법이라는 단어는 무섭다기보다 딱딱하고 엄격한 느낌을 많이 줍니다. 또한 신앙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지 말아야한다거나 무언가를 꼭 지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거리를 두게 되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다 보면 율법이라는 단어는 딱딱하거나 엄격하다기보다 오히려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는 중요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율법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바울 서신에서 율법은 굉장히 중요한 단어로 등장합니다. 신학적으로도 여전히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율법에 대한 관점은 이 시간 다 알아볼 수 없으니, 답을 정해놓고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로마서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우리는 오늘 말씀 가운데 나타난 율법의 특징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갈라디아서 3장 19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율법의 특징 첫째는, “더해졌다”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율법이란 인간의 범죄 때문에 더해진 것입니다. 세상이 창조되면서 동시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중간에 더해진 것이라는 겁니다. 왜 중간에 율법이 주어진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의 범죄 때문입니다.
율법은 범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며 범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선언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율법은 범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범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다시 19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언제까지입니까?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입니다. 여기서 자손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 생각할 때, 단수와 복수 구분이 어렵습니다만, 원어로 살펴보면 단수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수많은 자손들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자손을 의미하는 것이죠. 따라서 이 아브라함의 자손 중 한 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수여는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된 것이고 예수님의 초림 이후로는 율법의 수여가 마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갈라디아서 3장에 나타나는 율법의 특징 두 번째는, 율법의 수여 방식입니다. 다시 19절 말씀 중간 부분을 보세요.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라고 합니다. 율법은 중보자의 손으로 천사들을 통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에는 율법이 어떻게 수여되었는가, 어떻게 주어졌는가에 대한 두 가지의 방식이 나타납니다.
우선 율법은 중보자의 손으로 주어졌습니다. 이는 십중팔구 모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보자인 모세의 손을 통해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이죠. 이는 율법의 인간적인 측면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율법이 사람을 도구로 해서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세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셨다면, 모세의 손을 통해 율법을 수여하지 않으시고, 다른 방식으로 율법을 주셨을 것입니다. 율법의 내용 역시 중요하지만, 최초의 율법이 모세의 손을 통해 주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율법은 천사들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이는 율법의 영적인 측면을 알려줍니다. 만약 율법의 수여 과정에 있어서 사람만 관여했다면, 율법은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율법이 천사들을 통해 주어졌음을 밝힙니다.
이렇게 우리는 율법의 두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은 인간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중간에 더해진 것이며, 율법은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죄인인 인간의 손과 천사들을 통해 주어짐으로써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시는지, 또 율법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측면들, 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의 이러한 부분들을 생각해 보면, 율법은 완벽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율법은 그 자체로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율법을 통해서 의에 이르거나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아멘.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살게 하는 율법이라는 말은, 직역하자면 살려낼 수 있는 율법. 이렇게 바꾸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율법으로 살려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이죠. 왜 그럴 수 없습니까? 그 이유는 율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연약성 때문에 제한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에서는 의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의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아멘.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구약성경은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죄와의 관계에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물론 폐쇄적인 성격이라고 말한다면,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 말은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냅니다. 구약성경의 폐쇄성은 신약성경에서 나타날 개방성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22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인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그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단지 에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만 약속이 뒤따라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사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약속의 출처도 믿음이며, 약속의 대상도 믿음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지요.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약속은 철저하게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는 것이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새벽부터 딱딱한 율법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서 22절 말씀은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율법이란 무엇인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율법에서 믿음으로 어떻게 연결되어야만 하는지,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면,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은 이미 탈락했을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행위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는 너무나도 어렵고 복잡하고 힘들고 번거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부족함과 불완전성을 잘 아시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얻는 깨달음으로 우리 심령에 믿음을 얻게 하시고, 주님의 자녀로 부르시며, 우리를 날마다 말씀으로 세워주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삶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율법의 특징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지를 깊이 깨달으시고 오늘도 주님 안에서 영적인 복된 삶을 온전히 살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허물과 죄로 이미 죽어있는 우리를 주님의 말씀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며, 의롭다고 칭해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해야할 일들이 참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악과 율법, 율법과 의로움, 의로움과 믿음의 관계를 묵상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으로 은혜 누리며 가슴 벅찬 확신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원하오니 주님 우리 모두와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