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과 출애굽
Notes
Transcript
오늘 본문 말씀은 열 번째 재앙와 출애굽의 시작을 담고 있습니다. 열 번째 재앙에 대한 내용은 단 두 절로 설명이 끝납니다. 먼저 29절 말씀 보세요.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사람부터 시작해서 가축까지. 장자로 취급되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죽게 됩니다. 바로의 장자부터 감옥에 갇힌 사람까지 모두 죽게 되죠. 열 번째 재앙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전 아홉 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닌 우연히 일어난 자연현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었지만,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에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택적으로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을 피할 수 있고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나머지 아홉가지의 재앙과 다릅니다.
우선 첫 번째 재앙부터 세 번째 재앙까지는 이스라엘 사람이나 애굽 사람 구분하지 않고 모두 재앙을 겪었습니다. 아마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살았거나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감하고 그분의 위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재앙부터는 고센 땅이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재앙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죠. 그렇게 네 번째부터 아홉 번째 재앙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가만히 있어도 재앙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달랐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재앙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었던 것이죠. 자신들이 직접 어린 양을 선택해서 유월절 양으로 잡아 죽여야 했습니다. 죽인 양의 피를 그릇에 담아야 했고 우슬초 묶음으로 피에 적셔서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상상해보십시오. 집 문마다 피칠이 되어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모든 이스라엘 집 문마다 피칠이 되어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외관상으로 볼 때 굉장히 기괴한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함도 아니고 단지 피를 뿌리기 위함이라니. 그것도 집 문에다가 피를 바르는 것이니 얼마나 기괴합니까. 출애굽한 인원이 대략 2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200만명이 머물렀던 모든 집 문마다 피칠이 되어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굉장히 기괴하고 끔찍한 광경처럼 보입니다만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홉 번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어린 양을 잡아서 피를 문에 바르라는 명령은 그리 허무맹랑한 명령이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피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니, 겉으로 볼 때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겠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월절 의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절 말씀 보십시오.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아멘. 그냥 한 번 재앙이 지나가는데, 이렇게 하면 피할 수 있어. 꼭 그렇게 해줘. 이정도가 아닌 겁니다. 이 의식은 규례로 삼는 의식이 되었고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과 이후 태어나는 모든 자손들이 영원히 지켜야 하는 의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유월절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가정이 유월절을 지키면서 영적인 유익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26절 말씀 보십시오.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이어서 2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유월절 제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을 의미합니다. 한쪽 편에는 죽음이라는 재앙을, 다른 한쪽 편에는 구원을 내리신 사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하신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죠. 만약 하나님께서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통해 애굽을 박살내지 않으셨다면, 어쩌면 이스라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집트의 노예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엄청난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요? 가정에서요. 너희의 자녀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명령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러한 유월절의 기원은 가정에서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 유대인 가정은 유월절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월절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이토록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고 율법에 나와있는 대로 절기를 지키고 교육하려는 노력이 오늘날 크리스챤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믿음에 대해, 신앙생활에 대해, 아버지가 만난 하나님, 어머니가 만난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는지,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와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출애굽 사건을 유월절 절기를 통해 기억합니다. 유월절 식사를 통해 과거의 고난과 슬픔을 기억하고 현재 누리고 있는 축복을 감사하며 미래의 소망을 기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배를 통해, 기도회를 통해, 여러 성경공부와 구역모임 등을 통해 매주, 매일 영적인 삶을 영위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신앙교육에 대해서는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좌우지간, 이런 엄청난 재앙,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 애굽 나라 전체는 상실의 슬픔과 고통에 빠지고, 이스라엘은 쫓겨나듯이 애굽을 탈출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11장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애굽 사람들에게 값비싼 은금 패물들을 받아 떠나게 됩니다. 기약이 없던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체험한 영적인 출애굽을 떠올리게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영원히 죄에 속박된 채로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경험한 출애굽은 공간적인 변화와 실생활의 변화, 모든 것의 변화를 야기하는 사건이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는 영적인 출애굽, 영적인 죄에서의 해방은 피부로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된 그 순간만 드라마틱하고 이제는 무덤덤해졌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분명히 기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과거에 죄에 속박되어있었던 그 비참한 상태, 그리고 영적으로 자유함을 누리며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현재의 상태를 돌아보며,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열 가지의 재앙과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다른 나라 민족의 재미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체험한 구원이라는 엄청난 영적인 사건에 적용시킬 수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이 내용을 깊이 있게 묵상하시면서 나 자신과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로 인도하실 미래를 향해 소망을 품으시며 나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그 크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허물과 죄로 이미 죽어있던 우리를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고 매일매일 동행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사랑하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주님,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받은 이 은혜를 우리만 누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과 손주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나누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세상 가운데 주님의 말씀만이 참 소망임을 밝히 드러내며 살아가는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