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뜬 사람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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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예수님께 고침 받은 맹인과 영적인 맹인인 바리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맹인이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육적으로 눈을 뜨게 되고, 영적으로도 눈을 뜨게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과, 예수님을 거부하고 영적인 맹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바리새인들의 두 가지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등장합니다. 오늘 이 시간 두 가지 이야기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는 어제 살펴보았던 말씀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맹인을 고치신 일 때문에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이었죠. 한쪽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한쪽은 죄인이 어떻게 이런 표적을 보일 수 있겠냐며 서로 대립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침 받은 맹인을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나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먼저 그의 부모를 불러서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했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출교 당할 수 있다는 리스크 때문에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그의 아들과 직접 대화하라고 하면서 상황을 모면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요. 24절 말씀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바리새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 예수님께 치유 받아서 시력을 회복하게 된 사람을 불러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 예수라는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24절 말씀을 읽을 때 뭔가 어색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과, 예수가 죄인인 줄 안다는 말. 두 문장이 연결되는 것이 이상하죠.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너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높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인정하고 자백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진실을 인정하고 자백하라는 말입니까? 예수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백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고침 받은 사람은 바리새인들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25절 말씀 보십시오.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고침 받은 맹인은 예수님께서 죄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고백합니다. 동시에 그는 종교지도자들과 타협할 수 없는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는데 지금은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기적과도 같은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이 고침 받은 맹인의 입에서 예수가 죄인이다. 라는 일곱 글자만 들으면 되는데, 이 고침 받은 맹인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댑니다. 그러니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을 때까지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추궁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이 고침 받은 맹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27절 제일 뒷부분을 보십시오.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이러한 질문은 바리새인들을 폭발하게 만듭니다. 감히 어느 면전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안식일을 범하는 악한 죄인의 제자가 되고 싶어하는 종교지도자가 어디있겠습니까? 이는 도저히 좋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질문이죠.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모세의 제자임을 천명합니다.
모세.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이름이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고, 모세에게 직접 율법을 전해 주셨죠. 이런 점에서 모세는 구약성경에서 대체 불가능한 대표적인 선지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스승으로 여기고 따르는 이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종교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 율법에 대해 이스라엘에서 누구보다 박식하고 구약성경을 수도 없이 많이 읽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모세를 스승으로 떠받들면서 정작 예수님은 구원자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지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분명한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의 영적인 상태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대로 고침 받은 맹인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으니 자기 눈으로 말씀을 직접 읽어본 적도 없었을 것이고, 죄로 인해 맹인이 되었다는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어느 회당이든지 이 맹인을 환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고침 받은 맹인이 가지고 있는 율법적인 지식은 그렇게 깊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바리새인들의 지식과 고침 받은 맹인의 지식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에 대한 지식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몰라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고침 받은 맹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맹인이었다가 예수님 덕분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됩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죠. 32절과 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아멘.
고침받은 맹인의 말에 따라 선천적인 맹인의 치유는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런 배경에서 단번에 맹인의 눈을 뜨게 만든 사람이 있다? 그럼 그 사람은 어디서부터 온 것이겠습니까? 그런 엄청난 기적을 행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맹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쫓아냅니다. 비록 눈을 뜨게 되었지만 앞으로 이 유대 사회에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침받은 맹인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치유받은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데요. 눈을 뜨게 된 이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 부분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끝까지 지지하는 것처럼 행동하더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죠. 하지만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이 고침 받은 맹인이 처음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고침받은 맹인은 예수님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태에서 눈을 뜬 이후로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침 받은 맹인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이 질문은 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느냐는 의미가 아니라 네 자신을 인자에게 온전히 맡기고 인자를 의지하며 살아가겠냐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 네가 믿느냐. 라는 물음에 믿음으로 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이라는 역사적인 존재를 지식적으로 아느냐. 믿느냐 하는 것이 아닌, 내 인생을 예수님이라는 존재에 온전히 맡길 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에 믿음으로 답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냥 말로만 네. 믿습니다. 네. 맡기겠습니다. 이것이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겠노라. 다짐하며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해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서 영적인 시력까지 회복하게 됩니다. 38절 말씀 보십시오.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아멘.
사랑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고침 받은 맹인은 예수님 덕분에 육체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극복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사회적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으면 삶이 고달프기 때문이죠.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머지않아 이 사람은 유대교에서 출교까지 당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유대교에서 출교당하게 되면 유대교에 속한 사람들과는 정상적으로 교류하기 어려워집니다. 일종의 더러운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서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자기가 겪게 될 사회적인 어려움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냥 시력을 회복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인 리스크를 떠안고 끝까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 고침 받은 맹인의 부모 조차 출교당할까 두려워서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죄인취급하지도 않았으며, 쫓겨난 이후에, 예수님을 만나서 믿음을 고백하기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과연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리스크 앞에서 작아지는 나약한 믿음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믿음 때문에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어질까 두려워서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척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교회를 욕할 때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같이 교회를 욕하며 하나님을 손가락질하는 그런 가벼운 믿음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생각과 판단에만 사로잡혀 영적인 맹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타협하며 때에 따라 불신자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이 순결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 한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또 인간관계를 맺다보면, 우리의 믿음이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티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게 예수 믿는 믿음을 숨기는 것이 때로는 내 삶에 유익하다고 느낄 때가 있음을 회개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한 고침 받은 맹인이, 사회적으로 어떤 손해를 당하든 관계없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겠다고 고백하며 엎드려 절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과연 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때에 따라 선택적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아닌,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없는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회에서, 또 특정 인간관계에서 믿음 때문에 어떤 손해를 당하더라도 손실로 여기지 않고, 믿음의 고난을 달게 받으며, 주님의 자녀된 삶을 온전히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모든 주의 자녀들을 기억하여주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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