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재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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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애굽에 임한 열 가지 재앙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 재앙이 시작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의 완악함, 완강함, 오만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로의 악한 마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거부하게 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열 가지의 재앙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어떤 것인지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새벽에 이러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열 재앙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열 재앙을 진행하는 사람은 모세와 아론처럼 보입니다. 바로 앞에서 권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모세와 아론이죠. 하나님께서 바로와 애굽의 고관들 눈앞에 나타나셔서 거대한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 자리에서 기적을 보이시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80세의 모세와 83세의 아론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현장에 있었다면 착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어떻게 지팡이를 던져서 뱀을 만들고, 어떻게 지팡이로 나일강을 쳐서 나일강물 전체를 피로 만들 수 있을까. 정말 엄청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7장에 기록된 내용을 자세히 보면, 모세와 아론의 분량은 굉장히 미미합니다. 7장에 모세와 아론이 직접 말하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4절 앞부분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죠. 모세에게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내용은 18절까지 나오고 19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내용이 계속되는 거죠. 이어서 20절 앞부분 보세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으로 모세와 아론의 분량은 끝납니다. 모세와 아론이 행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모세와 아론이 특별히 어떻게 행동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그 순간 매개체로 일한 사람은 모세와 아론입니다. 하지만 25절 말씀 보시면 나일강을 피로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25절 말씀 보세요.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 아멘. 누가 나일강을 쳤습니까? 여호와께서 나일강을 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땐 모세와 아론이 기적을 행한 것처럼 볼 수 있지만, 성경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처럼 애굽을 심판하시고 재앙으로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잔혹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아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데, 바로가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애굽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착한 애굽인들이 불쌍하지 않냐. 애꿎은 사람들도 피해를 입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애굽은 요셉이 생존했던 족장시대 이전부터 이미 목축업을 가증히 여겼고 농경사회를 구축했기 때문에, 애굽에는 자연스레 이스라엘을 무시하는, 일종의 인종차별 섞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감독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쉬지않고 일하도록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애굽은 하나님을 모르는 죄도 있지만 노예들의 인권을 유린한 죄도 있습니다. 그러니 열 가지 재앙에 대해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 한 가지 더 들어있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든 보내지 않든, 표면적인 행동이 어떻든 간에 상관없이 바로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어도 바로의 마음이 완악했고 그의 마음이 완강해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그의 완악함도 있지만 완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도 영향을 줍니다.
바로의 완악함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발생시키는지 1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7절, 18절 말씀 보십시오.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나일강은 애굽의 생명유지시설입니다. 나일강이 주는 혜택 덕분에 애굽은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신선한 물을 가까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이점입니다. 이에 따라 애굽은 나일강을 나일신으로 떠받들었습니다. 은혜를 베푸는 신, 복과 번영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처럼 숭배받는 나일강이 만약 핏물로 변한다면, 애굽의 진정한 주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밖에 다른 모든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하나님께서는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는 말씀은 열 재앙 사건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데요. 빠르게 읽어드릴테니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6장 7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7장 5절,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8장 10절,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8장 22절,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9장 14절,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
9장 29절,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14장 4절,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14장 18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외에도 세 구절이나 더 있지만 생략했습니다. 방금 들으신 바와 같이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는 것이 열 재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줄 모르는 것,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 깨닫지 못하는 것, 우리 하나님 여호와 같은 분이 세상에 없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마음이 완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재앙을 통해 진정으로 의도하시는 바는 이스라엘과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열 가지 재앙은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소문으로 듣고 짐작으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관찰과 대면을 통해 얻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책으로 읽어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여호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께 온전히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이 듣는다면 큰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복종한다는 말만 놓고 보면, 누구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 같고 무슨 노예가 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리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것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그런 그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머리 위에 군림하시고 무언가를 착취하고 요구십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막 무슨 인간들이 떠받들고 뭔가 가장 소중한걸 끊임없이 바쳐야만 만족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완벽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딱히 좋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만 유익한 일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 되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 소망이 없던 죄악된 존재들에게 삶의 새로운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만하고 완악한 바로와 애굽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 되어주심에 진심 어린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내가 믿는 것, 내가 헌신하는 것, 내가 예배하는 것, 내가 기도하는 것.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 되어주신다는 사실과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가신다는 사실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저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아름다운 연합과 교제로 이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시면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바로와 같은 완악함으로 하나님을 거부하지 않게 하시며 오늘도 여전히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악한 세상 가운데 의지할 곳 하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 되어주심에 진정한 위로를 얻으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나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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