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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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2–17 (NKRV)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1. 유월절과 성전(13-14절)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은 그 유래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나올 때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자주 접했듯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시키시고, 이때 바로 왕과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중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모든 첫째난 장자들 이것은 동물까지 포함됐었는데, 다만 하나님은 이 장자의 죽음을 면할 방법을 알려주시죠.
그것은 어린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피를 문의 좌우, 상하에 다 바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믿고 그대로 행한 자들의 집안은 장자가 죽지 않고 하나님의 그 심판의 예리한 칼날이 피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유월하다” 영어로 pass over 유월절의 시작이 바로 그때입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그들의 장자의 죽음을 면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킵니다. 그것이 유월절이죠.
예수님이 그 유월절에 성전으로 가십니다.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구약에 보면 성전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 상징을 보여주시죠.
그래서 성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2.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유월절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영토 안에만 거주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역사적 배경들로 인해서 이스라엘 이외에 로마 지역에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의 뜻이 흩어졌다는 뜻이죠.
이스라엘 이외에 뿔뿔히 흩어진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라고 하죠.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유월절처럼 명절이 되면, 마치 우리나라 추석, 설날처럼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입니다.
당시 매년 모이는 것은 힘들지만, 그들에게 최소한 자기 생애에 한번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그들의 신앙과 민족성의 정체성이기 때문이죠.
아마도 그당시 유월절이 되면 추측하기로는 10~2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올 때는 제물을 준비해야합니다.
그 제물들이 뭐에요? 동물들입니다. 그래서 양, 염소, 비둘기와 같은 제물들을 각자 준비해서 와야하는데 거리가 멀면 어떻겠습니까?
오는 길에 죽거나, 혹은 그 동물들의 몸이 상하거나 한단 말입니다.
유대인들의 제사에 쓰이는 제물들은 여러분들이 레위기나 출애굽기의 제물과 관련된 본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한 것이 없는, 흠이 없는 제물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당시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되어있지 않죠? 걸어오거나, 당나귀, 말 이런 것들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는데 몇일 혹은 몇주일이 걸릴 수도 있는거죠.
그 사이에 제물이 상하지 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이 흠이 없는 제물들을 팔기 시작합니다.
상당히 좋은 제도입니다. 처음에 이 제도가 시작되었을 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흠없는 제물을 드리고 싶으나 상황이 안되는 이들에게는 그런 제도가 절실했겠죠.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1. 외적인 제도의 문제는 정신의 변질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제도, 형식은 큰 함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도나 형식이 생기는 이유는 정신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제물을 파는 것은 본질적으로 “예배를 바르게 드리기 위한 정신”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잘 드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성전에서 제물을 파는 것을 허용한 것이죠.
이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제물을 사는 자도, 제물을 파는 자도 그 목적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떠한 정신으로 시작된 제도에 있어서 정신이 부패하면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성전에 제물을 파는 제도의 정신이 썩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정신이었는데, 이것으로 큰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이 발생합니다.
제물의 값들을 올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과도하게 챙기는 자들이 하나, 둘 발생합니다.
이순간 이 제도는 파는 자에게도, 사는 자에게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파는 자의 마음은 순식간에 하나님이 아닌 제물을 파고 난 화폐를 향하게 됩니다.
사는 자에게는 과도한 제물의 값으로 인하여 경제적 손실을 얻게 됩니다. 혹은 경제력이 적은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본질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드리기 위한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신이 어딜 향합니까? 돈을 향하고,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또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죠.
유대인들은 성전을 유지하기 위한 성전세를 바쳤습니다.
출30.11-13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30장)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그런데 당시 로마 제국은 각 지역에서 쓰는 화폐의 통일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성전세를 내려면 두로의 은화로 내야하는데 이걸 환전을 해야하는거죠.
지금도 마찬가지만 환전을 하려면 수수료를 받잖아요. 그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이 분노하신 이유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분노하심을 보이십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예수님이 채찍질을 하신다고 하는거 보니까 폭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채찍은 그당시 양이나 소를 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내모는 그런 채찍입니다.
그러니까 필요 이상의 행위를 하신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이 채찍질을 하셨다는걸 보고 ‘예수님이 상당히 폭력적이시다’라고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고, 분노한 것에 비해 절제하시는 오히려 예수님의 성품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성전에서 내쫓으시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우리가 집중할 포인트는 “예수님이 분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이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이 제물을 파는 자들에게 명확히 말씀하시죠.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라고요.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죠. 본질적으로 성전이 지어진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곳이에요.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 인간은 예배드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는 존재이죠.
그런데 지금 거룩한 예배, 찬양의 소리와 기도의 소리가 들려야할 곳에 환전상들이 내는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와 소, 양, 비둘기의 짐승 소리만이 가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성전이 돈과 짐승의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성전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변화가 마치 정신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신”에서 “돈과 자기 자신을 향한 정신”으로 부패한 결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소리”가 가득차야하는 곳에서 “돈 짤랑거리는 소리, 짐승 소리”로 가득차버리는거죠.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1.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예배
당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이 말은 쉽게 얘기하면 너가 뭔데 이렇게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느냐는겁니다.
무슨 권한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행동을 하냐는거죠.
성전에서 제물을 팔고, 환전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권한보다 높은 권한이 아닌 이상 이러한 행위를 할 수가 없죠.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뜬금없는 답변이지만 언중유골이죠. 말 안에 뼈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성전을 헐라고요.
그 성전을 3일 만에 다시 일으키신다고요.
그 성전은 46년 정도 걸려서 지어진 성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혼자서 3일 만에 지으신다고 하시니 뜬금없죠.
여러분 뜬금없는 말의 목적은 뭐죠? 그 속에 숨겨진 의미가 있는겁니다.
예수님에게 숨겨진 의미는 뭐였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세우시려는 성전은 바로 예수님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3일 만에 예수님이란 성전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것을 의미하는거죠.
여러분 예수님께서 성전이 되십니다. 성전이 뭐에요?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곳이죠.
구약에서 성전이 그 역할을 일부 담당했었죠. 그러나 그것도 일시적이며, 제한적이었습니다.
그 성전은 두번이나 불타서 무너졌습니다. 성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은 성전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성전에 있기로 하나님께서 마음 먹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끊던 죄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주시죠.
그래서 이제 성전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성전이 되어주시죠.
그리고 그 성전의 의미는 이제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라는 성전으로 확장되며, “우리”라는 교회 공동체로 성전이 확장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그 예수님을 모신 마음이 성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성전들이 모여 연합하면, 교회 공동체라는 성전이 완성되죠.
여러분 이것이 구약의 성전을 신약에 와서 확장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모두가 성전이며, 우리가 모이는 교회 공동체가 성전의 확장된 모습입니다.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예배의 정신의 부패
그렇다면 여러분 성전은 어떤 곳인가요?
성전은 예배드리는 곳이라고 아까 말했잖아요? 성전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나 혼자 있을 때에도 예수님을 모신 성전으로서 예배드리는 곳이고요. 우리가 여러명 모여있을 때에도 연합한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는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전으로써 하나님을 향해 예배드리는 그 소리로 가득해야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성전이 다른 소리로 가득차는 위기를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환전상들이, 제물파는 자들이 그 마음의 정신이 부패하여 성전을 더럽혔던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환전상, 제물파는 자들의 그 제도가 처음에는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정신이 부패하니 본질의 의미가 왜곡되죠.
여러분 나, 우리 성전의 본질적 의미가 회복되는 방법은 뭘까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정신을 회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성전으로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은 예배하는 정신을 회복하는 거에요.
환전상, 제물파는 자들은 사실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했나요?
결국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한 마음으로 향했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향했습니다.
우상 숭배는 단순히 이방 신을 섬기는 차원을 넘습니다. 더 깊은 의미로 우상 숭배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향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섬기느냐? 우상을 섬기느냐? 이 문제 앞에서 우리는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흑과 백 둘 중 하나죠.
이제 이 문제를 우리에게 한번 가지고 와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문제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우실 수 있나요?
현대인들에게 많은 우상이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 돈과 자아는 우리 성전을 위협하는 큰 우상들입니다.
현실 안에서 돈은 우리에게 능력과 영광을 수여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말 하지 않습니까? “돈이 많다고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
그런데 이 말이 현실에서 통하지 않으면 무시되겠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얻고 싶어하는 행복에는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누리죠. 그런데 그 누리는 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참된 행복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봐야합니다.
또한 한 가지 큰 우상은 “자아”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아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돈의 필요는 “자아”를 숭배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더 나은 나, 더 나은 모습, 사람들 안에서 비춰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
그레고리 빌이라고 하는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회가 되면 이 책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우상숭배라는 주제에 대해서 성경안에서 얘기하는 것들을 잘 정리했는데 이 저자의 주된 주장이 뭐냐면 “사람은 자신이 숭배하는 것을 닮아간다”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성경 안에서 결국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완벽하게 닿을 수는 없으나 지고하며, 완벽하게 선하신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자들은 어떨까요? 돈을 향해 예배하는 자들은 돈의 모습을 닮는 겁니다. 돈 그 화폐를 닮는다는 것이 아니라, 돈의 속성을 닮아가는 겁니다.
돈은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추구하게 하는 속성이 있죠.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되고 끝없는 굴레로 빠져가는 것입니다.
자아라는 우상을 섬기면 자아를 닮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자아가 자신이 봤을 때 계속해서 부족한 모습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러면 그 자아를 섬기는 자의 마음은 계속해서 그 모습을 채우기 위한 탐욕으로 부풉니다.
자신의 자아상을 이기적으로 부풀리려고 하고, 결국 부풀다 터져버리고 멸망하게 됩니다.
마돈나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과거 세계를 주름잡은 엄청난 스타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성공의 유혹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나는 엄청난 의지의 소유자이지만 여태껏 내 모든 의지는 늘 끔찍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데 있었다. 열등감의 주문(뻐文)을깨면당장은특별한사람이 되지만 다시 무대에 서면 내가 평범하고 재미없어 보인다. 늘 그 반복이다. 내 삶의 동력은 평범함에 대한 아찔한 두려움에서 온다. 그것이 늘나를몰아가고 또 몰아간다. 이미 대단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내가 대단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고뇌는 끝난 적이 없으며 아마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엄청난 스타였습니다. 세계를 주름잡았죠. 그러나 그녀는 자아의 성취의 본질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세계 최고의 스타 그 정점까지 올랐던 그녀는 결국 그 끝이 만족과 행복이 아닌, 계속해서 새로운 자신을 증명해내야만 하는 고뇌와 불행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참된 나”를 추구하지만 결국 우리의 정신이 그것을 향해 가다보면 결코 행복과는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예수님은 성전의 악함을 내쫓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전 되어주셨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선지자적 행위 : 상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다지 과격하지 않은 절제된 행위로 양, 소, 환전상을 내쫓으시는데 이것은 단순히 내쫓으시기 위함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우상을 내쫓으시는 의미입니다.
옛 선지자들은 어떤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완벽한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성전에 있던 유대인들의 마음 가운데 존재하는 돈을 향한, 자신을 향한 마음의 우상들을 내쫓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면 예수님이 우상을 내쫓으시고 비워진 그 빈 자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 우상이 내쫓기면 그곳은 텅빈 공간이 되는데 어떻게 됩니까?
그곳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가득히 예수님 자신으로 채우십니다.
또한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성전 그 자체가 되어주십니다.
2. 제자들의 반응은 십자가에서 부활하사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22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제자들은 그 당시에는 예수님의 행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나서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라.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라.
우리 마음 가운데 우상을 내쫓고 예수님이라는 성전으로 가득 채우자!
적용) 수련회 주제 : 예배. 올바른 예배는 이 작업이 가장 우선시된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우상을 제하고, 성전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올바른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의 마음의 우상을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면 어떻게 되는가? 그레고리 빌이 말했던 것과 같이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