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너를 높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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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지혜를 왜 추구해야 하며 지혜가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에 대해 말합니다. 먼저 4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여기서 아들들이란 말은 조금 애매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 자신의 아들을 말하는 것인지 이스라엘의 모든 청년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규정지을 순 없지만, 확실한 것은, 자식이라면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뭐... 가정마다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는 가정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2019년에 발생한 살인사건 중에 존속 살해가 7.7퍼센트였다고 합니다. 또한 통계적으로도 패륜범죄의 발생 건수가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가정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믿음의 가정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가정은 아들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잠언 4장 1절은 신명기 6장 4절의 쉐마를 떠오르게 합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4장 1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들어라 라는 말로 시작되고요. 신명기 6장 4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대상이 다를 뿐, 들으라는 명령으로 시작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들으라는 것입니까? 잠언 4장에서 들으라는 내용 역시 쉐마의 말씀과 유사합니다. 잠언 4장에서 들으라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훈계입니다. 여기서 아비의 훈계를 무조건 육적인 아버지만을 생각해선 안 됩니다. 어머니의 훈계 역시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훈계를 듣고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합니다. 사실 이 부분도 조금 의역되어있습니다. “얻기에”라는 말은 피상적으로 알게 되는 막연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체험적인 지식, 본질을 깊이 있게 직관하고 정확하게 판별하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잠언 4장 1절 말씀은 그냥 지혜가 중요하니까 지혜를 얻어야 해. 명철을 얻어야 해. 이런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과 명철을 보다 정확하게 판별하고 깊이 있게 인식하며 체험적으로 얻어야만 한다는 명령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어서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2절 말씀 역시 아들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선한 도리를 아들들에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의 규정하는 삶을 떠나지 말라고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은 그냥 가르침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전해오는 가르침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또 그 자식이 장성해서 낳은 자식에게. 또 그 자녀가 자라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이런 식으로 대대로 대대로 전해야 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사실상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가슴 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지 15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믿음의 세대가 너무나도 쉽게 단절되고 있습니다.
또 생각보다 빠르게 교회가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채 떠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만 갑니다. 이는 제가 목사로서 누구의 탓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바라보면, 잠언 4장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똑바로 신앙생활하지 않는데, 어떻게 부모의 훈계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훈계를 듣고 명철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어떠한 영적인 유익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젊은 세대의 복음화를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이어서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여기서 내 말이라는 것은 부모님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내용을 의미합니다. 부모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친 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두고 그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가르치는 부모와 말씀대로 배운 내용을 마음에 두고 그 명령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모든 믿음의 가정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요? 4절 제일 뒤에 부분을 보시면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면 살리라.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말씀입니다만, 여기서 산다는 말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살리라 라는 말에는 깊이 있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삶 속에 주어진 일들을 성실하게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가치 있고 활력 있고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말씀이 살아있어야만, 우리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알게 되고, 목표한 바를 바라보며, 하루하루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옥죄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어서 6절부터는 지혜를 얻는 것에 대한 유익이 무엇인지에 관해 말하는데요. 지혜를 얻으면 지혜가 나를 보호하고 지혜를 사랑하면 지혜가 나를 지킨다고 합니다. 지혜가 인격체처럼 표현되고 있죠. 8절 말씀 보세요.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여기서 그는 누구일까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그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지혜를 높이면 지혜가 나를 높여준다는 것이고 지혜를 품으면 지혜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죠.
또 9절 말씀 보십시오.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여기서도 그는 사람이 아닌 지혜를 가리킵니다. 지혜를 높이고 지혜를 품으면 지혜가 아름다운 관을 나에게 씌워주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준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 왕관을 씌워준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면류관과도 같은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만 잘 알고 무슨 준법정신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얻게 된 지혜, 그 지혜로 말미암아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잠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의 훈계로 양육하고 자녀는 부모의 명령을 귀하게 여겨서 잘 받아들이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을 만들고 이끌어가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복음의 가치가 훼손된 이 때에,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며 지혜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먼저 가정에서의 회복을 주님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모와 자녀 간의 신앙적인 대화와 훈계가 유기적으로 잘 소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가운데 가정에서 영적인 성장과 회복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