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주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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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신자가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길잡이의 역할을 하는 말씀입니다. 잠언 16장 18절과 19절 말씀을 통해서 교만과 겸손에 대한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 16장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아멘.
교만한 마음은 잠언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주제 중 하나입니다. 잠언 기자는 미련함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교만을 말합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교만과 거만한 마음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교만과 거만한 마음은 따로 분류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 교만과 거만한 마음 중에 단 한 가지만 취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거만할 수밖에 없고, 거만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교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까?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들의 인생의 여정 중에는 한때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어느 기간 동안 누릴 수 있겠지만, 그 끝은 패망과 넘어짐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언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일관되게 교만과 거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대표적인 말씀으로는 이사야서 13장 11절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아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바벨론의 죄와 교만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바벨론의 오만과 거만함을 벌하심으로 낮추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스스로 삼가 교만함과 거만한 마음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방금 살펴본 잠언 16장 18절 말씀을 다시 보면, 교만한 사람과 거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망한다. 이렇게 기록하지 않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다시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여기서 선봉이라는 단어와 앞잡이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생각해보면 거의 유사한 단어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두 단어는 동일한 단어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어적인 의미를 살려서 다시 읽어보면, 교만은 패망의 얼굴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얼굴이다. 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패망의 얼굴이 교만이요 넘어짐의 얼굴이 거만한 마음이다 라는 것이죠. 서두에 설명드릴 때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의 인생의 끝에는 파멸 혹은 멸망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결국 같은 말입니다. 패망하고 넘어지는 이유, 잘나가는 것 같다가도 결국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교만하고 거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패망과 넘어짐이라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나기전에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교만과 거만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교만과 거만함은 한순간의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루 이틀만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그 교만함과 거만한 마음은 스스로 낮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사람이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인데, 이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하나님께서 거두어들이시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의미에서 잠언 기자는 1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기자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까?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낮추는 것이 무엇과 비교됩니까?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탈취물을 나누는 것은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남들보다 높아지려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릇된 방법을 통해서라도 부를 축적하려는 사람들보다 마음을 낮추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좀더 명료하게 표현하자면, 어떻게든 부자가 되는 것, 어떻게든 잘 사는 것, 위법을 저지르든, 편법을 저지르든, 어떻게 해서든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스스로 높이려는 것보다 마음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성경은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부와 장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일 수 있습니다. 다만,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교만한 자들과 함께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높이고 그 얼굴에 교만함이 가득하며 그 마음이 거만한 마음으로 온통 물들어 있다면, 필연적으로 패망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물질은 필수적입니다. 저도 이제 7월이면 첫째 아들이 태어나는데, 물질로 인해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남들 머리 위에 군림하고 나 잘난 맛에 사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복된 삶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잠언 30장 8절과 9절 말씀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멘.
무엇보다 우리 삶에서 지켜내야 할 고귀한 가치가 무엇인지, 무엇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말씀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알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은 교만하거나 거만한 마음을 품은 분들이 아니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에게 물질적인 유혹이 찾아올 수 있고 가치관의 혼동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겸손한 자들과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일에 힘쓰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가진 것으로 족한 줄 모르고 자족할 줄 모르는 이 세상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 우리에게 허락하실 축복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먼저 낮추고 주님을 온전히 높여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홀로 영광 받아주시길 간절히 소망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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