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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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에 비불외곡이란 말이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지 바깥으로 굽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표현은 우스갯소리처럼 흘려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여전히 학연, 혈연, 지연의 영향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개개인의 능력 보다는 학연 혈연 지연이 가져다 주는 특혜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는 법정에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전관예우로 인해 부당한 판결을 받고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과 사회와 공동체를 보면, 비불외곡의 영향력이 영원히 존속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하게 성경에 상반되는 성향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잠언 24장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악한 사람에게, 죄를 지은 사람에게 “네가 옳다”라고 말하거나 “너는 무죄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며 국민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5절 말씀을 들으십시오.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이 레위기 말씀은 굉장히 오래전에 주어진 율법이지만 통찰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 주어진 것이라고 해서 낡고 오래된 느낌을 주지 않죠. 그저 단순하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율법에 따르면,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서 눈 감고 넘어가는 일 없습니다. 아이구 불쌍해, 오죽했으면 그랬겠니. 이런 식으로 불쌍하게 여겨서 봐주는 일이 없다는 겁니다. 또한 권력이 있다고 해서 눈감아주지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권력이 있다 한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올바로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잠언에서는 지혜의 말씀으로 선포됩니다. 물론 레위기 19장 15절 말씀과 조건은 다릅니다. 가난하거나 세력이 있다고 해서 봐주지 말라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악한 자라면,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옳다는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악한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선 안 된다는 것이죠,
이와 유사한 말씀이 바로 23절 말씀인데요.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아멘.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낯을 보아 주는 것이라는 말은 대놓고 선의를 가지고 호감을 가지고 대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냥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서 잘해줘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의 혹은 호감을 가지고 대한다는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는 법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판결을 내리는 자가 사람이기 때문에, 죄악된 본성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훼손되거나 침범할 수 없는 거룩함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요. 잠언 24장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아멘.
악인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견책해야 합니다. 여기서 견책하다 라는 말은 유죄를 입증하다, 꾸짖다, 징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꾸짖다”라는 말로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바른성경이라는 번역본은 25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꾸짖는 자들에게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니 좋은 복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23절과 24절에서는 법정에서 죄인을 죄인으로 대하지 않고 “네가 옳다”라고 말하는 최악의 상황을 기록했다면, 25절에서는 정 반대의 상황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죄인을 꾸짖는 자들이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을 꾸짖는 자들이 무엇을 얻습니까?
첫 번째는 즐거움입니다. 아니 생각해보십시오. 죄인을 꾸짖고 응당한 처분을 받게 하면, 즐거움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즐거움을 얻으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누가 봐도 깨끗한 인생을 살아야겠죠.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다른 누군가와 그 어떠한 청탁관계를 맺어선 안 됩니다. 또 다른 누군가와 학연 혈연 지연에 얽히고 섥혀서 이해관계 속에 들어가선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일로 빚져선 안 됩니다. 내가 그때 너의 부탁을 들어줬는데, 내가 얼마나 공들여서 너의 어려움을 해결해줬는데, 내가 꼭 필요할 때 어떻게 너가 모르는 척 할 수 있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선 안 됩니다. 그러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만, 한결 같이 언제나 죄인을 향해 꾸짖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인을 꾸짖는 자들이 얻는 것 두 번째는, 좋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언제나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은혜와 축복입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주님께 기도할 때마다 은혜받고 싶지요. 이뿐만 아니라 내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떤 복을 주실지 잘 모르겠지만, 뭘 주셔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라면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언 24장 25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 좋은 복을 받으려면, 악한 자를 꾸짖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함께 살펴본 잠언 24장 23절에서 25절 말씀은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은 판검사나 변호사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충분히 적용되는 말씀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못한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어떤 처벌을 내리거나 어떤 징계를 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팔이 기계적으로 안쪽으로만 굽다보면, 타인에게 상처 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래도 저 사람이 나한테만큼은 돌아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꼭 편들어줘야겠고, 저번에 이렇게까지 나한테 잘해줬는데 눈 딱 감고 한번만 편들어줘야지,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없겠습니까?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법정에서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훼손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가운데, 교회 공동체와 지체들간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온 세상에 전하며, 불의한 일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지체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주위를 돌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러한 삶을 지향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온전한 즐거움과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결단하시는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혜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결단케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 어떠한 일을 만나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즐거움과 좋은 복을 바라보며 의지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홀로 영광 받아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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