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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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하나님께 선지자로 부르심 받을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사야서 6장 9절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 왕국의 통치자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 죽음으로부터 건져냄을 받을 수 있는 말씀들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에 연결된 말씀,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라는 말씀이 더욱 구체화되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고통 가운데 외칩니다. “그렇게 계속 맹인이 되어라. 그렇게 술 취한 사람처럼 무감각해져라. 그러나 너희 문제는 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고 너희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너희가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지 않으신다.” 이런 두려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듣지 못하는 이유가 내 마음 밭의 문제, 내 영적인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무엇입니까? 심판의 일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어도 무슨 말인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은혜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으로 인해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거나, 아니면 받은 말씀이 옳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나의 악함으로 인해 근심하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도전을 받거나.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은혜 받는다고 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우리의 여러 반응들이 있지 않습니까? 만약 방금 언급한 내용들 중에서 그 어떠한 반응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내지 못한다면. 깊이 고민해야만 할 것입니다. 물론 제가 언급한 그런 행위들은 일종의 예시입니다. 은혜 받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나 변화는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이 시간 다 규정지을 순 없으니 지혜롭게 분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좌우지간, 말씀을 듣고 은혜 받지 못한다면 내 마음 밭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혹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시는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러시는건지. 또는 내 삶의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 내 신앙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 이런 다양한 부분들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점검하지 않고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반복적이고 의식적인 종교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신앙생활이 아무런 변화 없이 쳇바퀴 굴러가는 듯한 신앙생활이라면, 그리고 예배 드리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착각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없을 겁니다.
그 이유는 13절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반복적이고 의식적이며 맹목적인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점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항상 기억하면서 경계해야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불신자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닌 자칭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고 합니다. 입술로는 말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경외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볼 때 굉장히, 굉장히 영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그 사람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인지 아니면 거짓된 위선으로 포장된 것인지 절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겠죠.
그러니 우리는 다른 지체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우리는 모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알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또 잠언 16장 2절에 따르면,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말로 포장해서 믿음에 관하여 혹은 자기 의에 관하여 논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실은 제 마음이 많이 찔렸습니다. 강도사인데, 올해 가을 정기 노회에 목사 안수를 받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들을 계속해서 감당하고 있는데, 때때로 악한 생각이 올라오고, 느슨해지려고 하고, 진심보다는 가식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저의 중심을 돌아볼 때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어쩌면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제가,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이 책망의 대상이 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부르신 성도님들, 오늘 이 아침에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이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세워놓고 비추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같이 새벽기도회 드리는 신실한 분들이 많으시죠. 말씀이 너무나 익숙하고 말씀에 대해 박식하실텐데, 그 지식만으로 만족하고 계신 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지면 풍성해질수록 더욱 낮아지고 겸손해지며, 타인을 정죄하기보다 나의 죄성을 더욱 깊이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비참함과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며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의식적이고 반복적인 신앙생활에 만족하는 크리스챤의 가면을 쓴 위선자가 아닌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상고하면서 우리 주님과 마음을 함께 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보다 교회 내에서의 위치와 평판 그리고 인간관계에 공을 들일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또는 반대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애쓰며 섬기기보다 자기만족에 가까운 신앙생활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무엇도 숨길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니 주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가슴 깊이 기억하고 묵상하며 말씀 앞에 비추어보길 원합니다. 사람 앞에서 잘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겸손해지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진심이 동일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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