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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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은 요한복음 3장 23절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아멘. 세례요한은 자신을 “소리”라고 소개합니다. 이 소리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나무뿌리에 놓여진 도끼에 대해 말하면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서 불에 던져진다는, 종말론적인 심판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례요한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과 다른 색깔을 보여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은 금욕주의자처럼 광야에서 사역했고 구원의 기쁨이나 좋은 소식에 대한 긍정적인 뉘앙스보다는 종말론적인 심판을 강조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왕래하셨고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초기 가르침에는 세례요한이 무엇보다 강조했던 심판의 요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세례요한은 누가복음 3장에서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히지만, 제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보에 대한 의구심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결과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복음 7장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아멘.
세례요한의 질문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신지를 묻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구원자이신지를 확인하는 것이지요.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래. 내가 바로 그 메시야이다. 내가 바로 그 구원자이다.” 이렇게 대답해주지 않으시고 다른 방식으로 대답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아멘.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세대가 기대하는 메시아의 모습은 예수님과 거리가 있습니다. 메시아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던 사람들은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켜줄 메시아를 기대했고 구약에 따른 메시아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종말의 심판자로서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수정해주시기 위해 22절의 말씀으로 답변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여섯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맹인이 보게 되는 것, 못 걷는 사람이 걷게 되는 것, 나병 환자가 깨끗해 지는 것, 귀먹은 사람이 듣게 되는 것,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 이 여섯 가지 내용은 모두 이사야서에 기록된 내용이며,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치유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치유와 관련 없는 한 가지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된다는 것인데요. 이 표현은 누가복음 4장 18절과 19절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아멘.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치유 이적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 그것은 바로 이사야서의 예언, 곧 종말의 메시아가 도래했다는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의 메시지는 누가복음 11, 12, 13장에 등장합니다.
좌우지간, 구약성경이 말하는 크고 두려운 날인 마지막 날에는 치유와 심판이라는 양면이 존재합니다, 한쪽 면만 바라보며 그 기준에 부합하는 메시아만 기다리는 것은 올바른 기다림이 아닙니다. 심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이고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치유와 회복이 임합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7장 22절의 예수님의 대답은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완벽하게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냐는 질문에 그래. 내가 바로 메시아이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 대답보다 더 확실한 대답은 치유 불가능한 사람들이 깨끗해지는 것이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밝히 드러내시며 한 마디 덧붙이십니다.
2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실족하다 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걸려 넘어지다 또는 덫에 걸리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3절 말씀에서는 이 단어가 은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죄의 덫에 걸리거나 죄에 의해 넘어지게 되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알곡과 가라지 중에 가라지로 분류되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이 어떤 복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 복이 일반적으로 모두가 원하고 바랄만한 물질적인 복이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오늘 본문 말씀의 문맥을 잘 살펴보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7장 1절에서 17절까지 등장한 두 인물을 기억해보십시오. 남부러울 것 없는 백부장은 더 잘되는 축복이 아닌 사랑하는 종이 회복되는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가난한 나인성 과부는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지만 자기 남편이 돌아오거나 보잘 것 없는 자신의 형편이 180도 변하는 일을 겪진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들이 바라고 원하시는 메시아는 어떤 분이신지요.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기대해야 옳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메시아로서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결핍되고 불완전한 삶을 체감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다면 우리 삶에 복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복음을 통해 풍성한 축복을 누리시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심으로 구원자되심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바깥에 있던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되게하심에 진정어린 감사를 올려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된 축복은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것이라 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 가르침에 실족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필요와 간구를 듣고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게 하시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에 행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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