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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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70명을 따로 세우셔서 각 동네와 지역으로 두 명씩 보내셨습니다. 추수할 일꾼으로서 보냄을 받은 것이죠. 그들은 보냄 받은 곳에 가서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메시지와 동일한 내용을 전한 것입니다. 1절부터 16절까지의 긴 내용인데요. 예수님께서는 70명을 보내시면서 그들이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파송 받으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전망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을 언급하시면서 만약 사람들이 영접하지 않을 경우에 취할 행동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누가복음 10장 17절에서는 파송 받았던 70명이 복귀해서 예수님께 보고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70명을 보내실 때 어린 양을 이리에게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려 보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낙담할 수도 있고 결핍된 상황을 만나서 지치고 쓰러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예상과는 달리 70명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아멘. 예수님께서 70명을 보내실 때 무엇을 하라 하셨습니까? 병자들을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귀신들을 쫓아내는 기적까지 성공합니다. 하나를 가르치니 둘을 해낸 셈이죠. 이런 기특한 보고를 들은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18절 말씀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사탄이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오해하기 쉬운데요. 사탄이 떨어짐은 사탄의 패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패배는 70명의 선교적 사명의 성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사탄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70명이 해낸 일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70명이 온 동네에 다니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70명의 손길이 닿은 곳에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옴을 깨닫게 되기에 그들이 해낸 일들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70명이 해낸 일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직접적인 동력을 제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증인의 사명,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제자의 길을 걸어갔을 뿐입니다.
주님의 일들을 충실히 감당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가까이 오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자들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죠. 말씀으로 주어진 것 그 이상 알 길이 없습니다.
또한 70명의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해낼 때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진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그저 예수님의 이름만 드높이며 예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는 동안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비록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보지 못하거나 이미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고 하나님이 일하심은 계속됩니다.
좌우지간, 70명은 어려운 사역을 잘 감당하고 돌아왔고, 해낸 일들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일을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일이 아니었지만 정말 훌륭하게 해낸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성공적인 보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아멘.
이 말씀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제자들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제자들이 해낸 업적, 그 결과로 기뻐하지 말고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뻐하라고 가르치시는 겁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20절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신자가 자기의 전도 사업의 성취를 보고 그것을 기쁨의 이유로 삼지만 그것보다 자기 자신의 구원 받은 사실 곧, 자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일로 인하여 기뻐해야 된다.”
또 여기에 덧붙이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받은 구원에 대하여 건망증이 있으니 그것은 신앙생활을 활발하지 못하게 만든다.”
참으로 깊이 있는 통찰입니다. 처음으로 하나님 만났을 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때, 구원의 감격을 느끼고 나서 얼마 동안은 그 기쁨만으로 넉넉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구원의 감격은 어느새 시들해지지 않습니까? 이것에 대해 박윤선 목사님은 구원의 건망증이라 표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역시 사역의 열매로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 업적으로 만족해할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전무후무한 코로나 시대에 예배도 자유롭게 드리지 못하고 모임도 자유롭게 갖지 못하는 이 답답한 현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우리 화평교회에서 하는 다양한 사업들이나 행사들을 그리워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서 하는 일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임이 확실합니다. 우리의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것도 확실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일들을 내가 감당해냈고 나를 통해 열매가 맺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느끼는 만족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그런데 그 만족감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쁨을 느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능력 주시고 힘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70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사역보고를 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까요.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핏대를 세워가며 혼내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없다고 성숙하지 않다고 분노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온유하게 알려주십니다. 너희가 귀신을 쫓아낸 것만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해라.
예수님께서는 가장 본질적인 기쁨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순간 순간 체험하는 성공이나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그 기쁨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택정하시어 우리의 이름을 하늘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소리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은은한 기쁨을 느껴야만 합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우리의 이름이 이미 하늘에 기록되어있다는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그 사실만으로 온전히 기뻐하며 새로운 힘을 얻어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만족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무엇으로 기뻐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경제가 얼어붙고 신앙생활이 예전과 같지 않은 이 때에, 교회의 많은 일들이 멈춰 있는 이 때에, 본질을 기억하게 하시며 구원의 기쁨에 대한 기억력을 새롭게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원의 기쁨이 희미해지고 막연하게 느껴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감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심령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