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받고 실천하라
Notes
Transcript
야고보 사도에 의하면 택함 받은 신자 즉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 구원 받기로 예정되어있는 신자는 피조물들 중에서 특별하게 선정되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잉태된 존재입니다. 그냥 어떻게 우연히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보니 어떻게 하다가 신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으로 잉태된 존재인 신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야고보 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한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아멘.
21절 말씀을 반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면, 상반절에서는 내어버리라는 명령을, 하반절에서는 받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 무엇은 하지 말고 무엇 무엇은 해야 한다는 말이겠죠.
그렇다면 무엇을 버려야하는 것일까요. 21절 앞부분을 다시 보시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내어버리라는 말은 옷을 제거하거나 옷을 벗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신약성경에서 종종 사용되는데요.
로마서 13장 12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바울 사도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므로 어둠의 일을 벗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어둠의 일을 벗으라는 단어는 오늘 본문 말씀 21절의 내버리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 사도가 명령하는 내어버려야 할 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도덕적인 더러운 것들과 넘치도록 퍼져있는 죄악들입니다.
그냥 말씀만 지키면 됐지, 그냥 십계명만 지키면 됐지, 그냥 범법행위만 저지르지 않으면 됐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잉태된 신자는 말씀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더러운 행위들이나 생각들을 내어버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본인이 스스로 옷을 벗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죄악들을 스스로 벗어버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고 다시 죄를 짓고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회개하고의 반복이 아닌, 본질적으로 죄악을 근절시킬 수 있는 본인의 노력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죄를 근절시키는 행위, 죄악을 벗어버리는 행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짓는 죄의 종류는 서로 다릅니다만, 21절의 “넘치는 악”이라는 표현을 생각해보면, 죄악을 벗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죄를 짓다가 이 죄를 다시는 짓지 않도록 피가 나는 노력을 해서 변화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변화된 삶에는 더 이상 죄가 침투하는 일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표현한 넘치는 악이라는 단어에서 넘치는 이라는 말은 “풍부함”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의 죄를 짓지 않도록 죄악을 벗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다른 죄악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죄악과 끊임없이 싸우는 신자의 영적인 전투에는 끝이 없습니다. 절대로 나태하게 신앙생활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신자는 죄악을 벗음과 동시에 받아야만 합니다. 21절 중간부분부터 보시면, 야고보 사도는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우리 귀로 듣지 않습니까?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이라고 표현합니다. 내 귀로 듣고 안 듣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말씀이 심어져 있는데, 이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개념은 야고보 사도가 최초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서 31장 3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이라고 불리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아멘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직접 그분의 율법을 이스라엘의 마음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겁니다.
또 에스겔서 36장 2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을 주시고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육신에 있는 굳은 마음, 단단한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불순종하게끔 만드는 그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 마음에 말씀을 심어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똑똑해서, 우리가 지혜로워서, 우리의 이해력이 탁월해서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씀을 심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데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크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21절 제일 뒷 부분을 보시면,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결국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온유함으로 받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말씀을 심어주시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거나, 강퍅하다면 심겨진 말씀은 효과있게 작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마음에 심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동시에 우리 마음이 가난해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간구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온전히 받게 된 신자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머리로만, 지식적으로만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내 삶 가운데 온전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행함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스라엘 역사의 전체에 퍼져있는 모든 더러운 죄악과 넘치는 죄악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죄는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노력함으로 죄악을 벗어야만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악을 벗는 것과 동시에 해야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그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받은 사람은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고 몸부림치게 됩니다. 오늘 야고보서 1장 21절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때로는 넘어지더라도, 때로는 죄를 짓더라도, 다시금 돌아서서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노력하시며, 주님의 자녀된 삶을 온전히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악으로 인해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는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나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족하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날마다 넘치는 죄악과 고군분투하게 하시며, 우리 마음 가운데 심어주신 말씀을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과 말씀의 행함으로 주님의 자녀된 삶을 온전히 살아가게 하시며, 그러한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