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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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세 번째 방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받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방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고린도 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바울의 방문을 기다리고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바울의 방문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고린도 교회 세 번째 방문 예고는 경고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아멘.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할 것이다. 이 말은 죄 지은 사람에 대해서 두세 증인의 증언을 통해 확정짓고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율법, 신명기 19장 15절 말씀을 그대로 적용해서 재판하겠다는 말이죠. 단순히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닌 죄 지은 자들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절 말씀만 봐도 사도 바울의 세 번째 방문은 이전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엄중하게 율법을 인용하며 처벌할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고린도후서 12장 20절과 21절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에는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넘쳐났으며,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이 회개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런 악한 죄들을 도저히 묵인할 수 없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순회 차원에서의 방문이 아닌 사도의 권한을 사용해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강력한 처벌과 무거운 권징을 통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1절과 2절에서 굉장히 엄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사도 바울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회개 시키려는 목적으로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려 하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지요.
이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아멘.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그들이 믿음 안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명령합니다.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예수님께서 자신 안에 내주하시는지를 스스로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명령은 참으로 합당합니다.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믿음 안에 있는지,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명령할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먼저 시험하고 확증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에는 사도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무리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0절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아멘.
사도 바울의 서신이 보여준 능력과 그에 따른 성과를 알기에 서신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라는 한 남자를 깔아 누릅니다. 만났을 땐 몸도 좀 약해 보이고 말도 시원시원하게 잘하지도 못하고, 이게 대체 무슨 사도냐. 이런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요.
어제 목사 안수를 받은 저로서는 사도바울이 인간적으로 연약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에서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됩니다. 저같은 사람은 사도 바울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학식이나 그러한 믿음이 있지도 않은데 거기다 말까지 못하고 어눌하면 설 곳이 없지 않겠습니까. 허우대는 멀쩡하니 그나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좌우지간, 오늘 본문에 따르면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는 사도의 증거를 바울 본인에게 직접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사도됨의 진정성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고린도 교인들은 강건하고 말솜씨가 좋은 거짓 전도자들에게 현혹당하고 있었습니다만, 반대로 사도 바울은 말솜씨는 조금 약할 지라도 자신의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아멘.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약하심, 그리스도의 죽으심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살아계시니 우리도 그와 함께 살리라. 라는 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가슴 아파할 필요는 있지만 죽음 자체에만 매달려 있어선 안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처벌할 자는 처벌하고, 회개시킬 자는 회개 시키고, 거짓 설교자들에 현혹당하지 않도록 경고하며 성도들을 진리 안에 바로 서게 하는 사도 바울의 사역은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 처한 현실을 바로잡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고린도교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며 지적하고 정죄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고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을 확증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님들뿐만 아니라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 하루로 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연약함을 아주 잘 압니다. 뜨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도 하죠.
이 새벽에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고자 하는 영적인 갈망함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찾기 어려운 면모이지만 그렇다고 그 자체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진 않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있는지 판별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을 특별히 기억하길 원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혼란이 장기화되고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들과 더불어 교회가 사회로부터 질타를 받는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만 바라보고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확증해주시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나 자신이 먼저 말씀에 비추어 시험하고 확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옵소서. 뿐만 아니라 다윗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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