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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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왕은 여덟 살에 남유다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31년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 왕위에 있은 지 8년, 곧 16세에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고, 왕위에 오른지 12년이 지난 20세에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오늘날로 표현을 하자면 요시야 왕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왕위에 올랐고 중학교 3학년 때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고 대학교 1학년이 되는 해에 남유다의 종교개혁을 시행했습니다.
요시야왕은 스무살의 나이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고,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모든 종류의 우상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거짓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고,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황폐했던 성읍들도 정결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요시야 왕의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부분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로, 요시야 왕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종종 하는데요. 일반적으로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해주시길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요시야 왕은 역대기하 저자에 의하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는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둘째로, 요시야 왕은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초등학교 1학년의 나이에 왕이 되고 중학교 3학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적지않게 당황했습니다. 사실 모태신앙으로 성장한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진정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리 어린 나이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고백하기는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성화의 삶을 살았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아니었고 내가 아는 하나님은 내가 그려내고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이었다고 고백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어주심이 어떤 의미인지 훗날에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목회자들 중에서도 그렇게 고백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누가 좋다 누가 나쁘다 이렇게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요시야 왕이 떡잎부터 달랐다는 점을 눈여겨 보고 싶은 것입니다. 보통 중3 때면 어떻습니까? 자녀를 키워본 부모님들은 아실 겁니다. 사춘기가 오고 부모님들께 틱틱거리고 말 안듣고 골때리는 시기가 바로 중학생 시절인데, 요시야 왕은 그런 시기에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역대기서에서 찾는다는 말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냥 하나님 한 번 부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언제 그런 습관을 갖게 되었다구요? 중3 때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어떻게 그런 영적인 변화를 갖게 되었는지 그 비법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어린 시절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맛보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고 해야할 일도 많은 인생이지만, 교육부서에서 아이들이 영적으로 잘 자라날 수 있기를 기도해주시고 기대해주시고 믿고 맡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 번째로 요시야 왕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할 때에 즉시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한 인격체의 영적인 변화는 삶의 변화로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요시야 왕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찾은 뒤 유다를 종교적으로 개혁시켰습니다. 므낫세 왕과 아몬 왕이 유다의 종교적인 풍토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을 되돌리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바알과 아세라에 대한 신앙은 풍요와 음란함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인간의 악함과 딱 맞아떨어지는 금상첨화의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를 버리도록 강도 높은 개혁을 실시한 것은 요시야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로 뽑힙니다. 막상 그 당시에는 종교개혁의 의미나 효과가 즉시 드러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제단을 헐고 우상들을 찍고 가루로 만들어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의 무덤에 뿌리는 이러한 행위는 국가의 어떤 위상을 높여준다던가, 국가의 경제나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효력을 가져다주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패역했던 그 나라의 역사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니 그 무엇보다 귀하고 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시야 왕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첫째로 우리는 요시야 왕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겠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바른 해석에 따라 내 삶에 적용시키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둘째로 요시야 왕처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찾는 순간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신지요. 매일매일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과 동행하고 계신지요. 부디 요시야 왕과 같이 하나님을 찾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셋째로, 우리는 요시야 왕처럼 삶의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어야겠습니다. 믿음과 행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죠.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믿는다면 행위가 따라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면 찾는 것에 상응하는 삶의 열매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계신지요. 하나님을 찾고 계신지요. 또 삶의 개혁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지요. 요시야 왕의 모습들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 삶의 개혁을 이루어내는 귀한 역사가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윗의 길로 걸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요시야 왕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우상숭배를 하지 않더라도, 탐심은 우상숭배라 말씀하셨으니, 그 말씀에 따라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바라보며, 우리 인생의 정직과 성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연약할 때도 있고 악할 때도 있지만, 이런 우리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요시야가 삶으로 개혁한 그 모습을 본받아 우리 삶에서도 우상숭배와 동일한 것들을 제해버릴 수 있는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머리로만 마음으로만 믿고 끝나는 삶이 아닌, 과감하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제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고, 그러한 개혁들을 통해 더욱더 주님을 신실하게 찾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 될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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