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나라와 악인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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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며 사람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사상이 바로 인본주의 사상인데요.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복음성가 가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가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데, 신앙생활의 중심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어야만 하는데, 가사 기저에 흐르는 신학적인 바탕은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과 결합된 변질되고도 그릇된 신앙생활은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왜 역사하지 않으시는지,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자신의 기도에만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내가 아닌 내 주위 사람, 내가 속한 공동체의 지체에게만 역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기계적인 신앙생활만 반복되다가 믿음의 길에서 떠나는 일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인본주의 사상에 물든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신본주의 사상으로 되돌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만약 신앙생활의 중심이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만 하면 다 들어주시고, 우리의 뜻에 맞춰서 일하셔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물론 기도제목의 종류에 따라, 나의 믿음의 상태에 따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과 교제하시는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정확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잠언 28장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내용을 분명하게 들으시지만, 그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일하시는지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도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신앙생활의 방편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시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9절에서 무엇이라 말합니까.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의 기도도 가증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까?
율법을 듣지 않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과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28장 9절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말씀을 배우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것입니다.
여기서 가증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뉘앙스를 살려서 읽으면, 구토가 날 정도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깊게 생각하고 고민했을 때 결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건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그 기도 냄새만 맡아도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역겹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크게 두 가지로 확장해서 이해할 수 있는데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행하는 종교적인 행위는 하나님께 더럽고 가증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5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손에 피가 가득한 사람들, 죄악이 가득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무작정 열심히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정성에 감동하셔서 응답하실 수밖에 없을까요? 지성이면 감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삶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은 성경 전체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미가서 3장 4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게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너무나도 두려운 말씀입니다. 악한 자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만큼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방식으로 보응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살고싶은대로 살고,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온갖 정욕대로 다 즐기다가,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가고, 하나님이 필요할 때만 반짝 하나님 찾고,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겠지. 이런 생각은 정말로 위험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는 마치 건강과도 같은 것이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영양분 생각하지 않고 입에 맞는 것만 섭취하다가 심한 질병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어떤 명약을 복용하면 원상복귀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죠.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도 않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결국 자신의 육신과 정욕만을 위한 기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시편 66편 18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아멘.
기도 내용의 중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응답의 여부가 갈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죄악을 품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악이란, 누가 봐도 저건 죄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길 기도한다면, 그 축복의 목적이 무엇이어야만 합니까?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복음 사역에, 주님의 양떼에, 주님의 몸된 교회에 유익을 끼치기 위한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만약 그런 목적이 아닌, 개인의 부귀와 영화를 위한 것이라면, 그 기도는 하나님 앞에 죄악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는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왜 건강해야만 합니까. 건강해서 그동안 열심히 벌어놓은 물질들을 누리기 위해 건강해야 합니까? 노년에 편안하게 여행 다니고 싶은 것 다 다니고, 먹고 싶은 것 걱정없이 다 먹고 즐겁게 살기 위해 건강해야만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건강주시길, 병 고쳐주시길 원한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육적인 정욕을 위한 기도로써 가증한 것이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신앙생활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알면 알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나의 죄성을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잘 배우는 것도 어렵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데, 인생의 고민은 늘어가고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만 가는, 이러한 총체적인 상황은 우리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주님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나 자신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푯대를 향해 하루 하루 전진해 갈 때, 죄악된 것들과 영적인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고 인도해주실 것을 믿으며, 오늘도 주님 안에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다고 말씀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인본주의로 물든 이 세상에서, 기도만능주의로 인해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한 이 세상에서, 다시금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세우며 돌아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저 기도 한 번 했다고, 기도 몇 시간씩 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단순한 기도생활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나날이 성화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바라옵기는,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복을 허락하여 주셔서, 힘써 일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될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