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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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를 보여주시고 여러 말씀을 전하신 뒤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마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기 직전, 그 마지막 행보에 대해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 24장 36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엠마오라는 마을에 가는 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만나시고 두 제자가 열 한 제자를 만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도 금방 믿지 못합니다. 좋게 표현해서 믿지 못했다는 것이지,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육체적인 부활을 의심한 것입니다.
의심하는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직접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영혼으로 그 자리에 오신 것이었다면 식사하실 수 없었겠죠.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내용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연약한 믿음을 위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방법은 45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4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아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육체적인 부활을 알려주시려는 의도로 찾아오셨습니다만, 제자들은 이 사실을 쉽게 믿지 못했고, 제자들이 이를 믿기 위해서는 성경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동안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부활절을 몇 번이나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많은 부활절을 보냈는지 헤아리기 힘드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너무나 많이 접하다보니 당연하게 느낄 수 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접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부활은 정말 믿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스스로 살아났다? 이런 건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자기 자신이 알아서 부활한 사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살려줘야 살아나는 것이지 알아서 부활한다? 이런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가장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예수님의 영혼인줄 알았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교정해주셨습니까?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는 방식으로 제자들의 믿음을 교정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다니까 일단 그렇게 생각해야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 봐봐. 나야. 만져봐. 됐지. 아직도 못믿어? 자 내가 믿게 해줄게. 짠. 하고 끝낸게 아니라, 굳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과 말씀을 깨닫는 것. 이 두 가지는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같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말씀을 깨닫는 것은 사람의 지적 능력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지 얼마나 이해력이 좋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똑똑한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지식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부인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경에 보면,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병든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믿게 된 사건들이 참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성인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기도 하지만, 복음서에 따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고위 관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보면, 성경을 깨닫기 위한 조건은 지성에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말씀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가. 그 사람이 믿음으로 예수님께 반응하고 있는가. 이 조건만 성립하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주님께 맡겨드리면 됩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면, 그제서야 우리가 말씀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어제 받은 말씀인 누가복음 24장 3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 말씀을 깨달을 때 일어나는 바람직한 반응입니다. 막 울고불고, 뭔가 미칠 것만 같은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앓던 병이 치유된다거나, 기도하다가 갑자기 방언이 터져나온다거나, 이런 극적인 일들을 체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런 영적인 기적들을 체험해야만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가 만약 이런 영적인 은사들에 국한되어 있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을 만나셔서 영적인 능력들을 한 가지씩 부여해 주셨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4장 말씀을 쭉 읽어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24장 32절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주셨습니다. 45절에서 열 한명의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우리는 성경을 깨닫는 것이 기적을 체험하는 일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아무나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만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예수님의 부활을 진정으로 믿고 그 사건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체험하는 사람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습니다. 어떤 정체성입니까. 4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아멘.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증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하였음을 선포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택자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바로 제자들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도라고 불립니다. 거룩할 성, 무리 도. 거룩한 무리인 성도라고 불리지요. 하지만 이 성도라는 단어는 그저 겉으로 거룩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만족을 위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머리로 마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믿는 것.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받으며 마음이 뜨거워짐을 체험하고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한 증인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 의심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서 말씀을 깨닫게 하신 주님, 그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비록 단 한번도 주님의 얼굴을 뵙지 못했지만, 매년 돌아오는 부활절마다 주님의 고난을 마음에 새기고 부활의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자신만 알고 만족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말씀하신 주님,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교회에서만, 믿는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만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길 원하오니, 주여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