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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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2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포악한 사람이고 또 다른 사람은 의인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포악한 자의 삶과 의인의 삶이 대조되어 나타나는데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바라보고 따라가야 할지 상고하는 시간되길 소원합니다.
1절 말씀 앞부분을 보시면, 포악한 자여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우리말로 포악한 자여! 이렇게 번역되어있는데요.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위대한 용사여. 강한 자여.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위대한 용사, 용감한 용사. 이런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로 존경을 많이 받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특정 부분에서는 적의 막강한 힘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과연 이 포악한 사람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걸까요.
52편 말씀을 쭉 읽다보면, 이 사람은 용감하고 위대한 용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전쟁에 나가서 얼마나 대단한 위용을 떨쳤는지. 이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은 시편 저자에 의하면 매우 악한 사람입니다. 무엇이 악하다는 것일까요? 어떤 끔찍한 죄를 저질렀을까요? 살인이나 성범죄, 신성모독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떤 중범죄를 저질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저지른 죄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있지 않지만 이 사람의 죄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악을 사랑하고 거짓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52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포악한 자가 선이 아닌 악을 사랑하고 의롭게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굉장히 애매모호한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구체적으로 이 사람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잘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악과 거짓을 사랑하기 때문에 포악한 자라고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면 저 역시 죄책감이 몰려옵니다. 때로는 하나님보다 무언가를 더 사랑하고 있지 않나 싶은 때가 있기에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 말씀을 읽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아마 저와 비슷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 믿음의 나약함과 죄성 때문에 잘 해내지 못하는 부분도 문제이긴 합니다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포악한 자는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머리로도 알고 마음으로도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지 않는 것과 대놓고 마음 편히 내 마음 가는대로 악을 사랑하고 거짓을 사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이 사람의 죄는 둘째로, 간사한 혀로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4절 말씀 보십시오.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한다고 나와 있어서 오해하실 수 있습니다만 좀 더 생각해보면,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좋아하기만 하고 직접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머리속으로 나쁜 표현 자체만 좋아하고 절대로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럴리 없죠. 그러한 표현을 좋아한다면 그 말로 사랑해야 할 대상인 이웃의 마음에 비수를 꽂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편 52편에 등장하는 포악한 자,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는 유별나게 이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선보다 악을 사랑하고 거짓을 사랑하고 남을 해치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 사람 뿐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인터넷 댓글들 보세요. 스포츠 스타가 과거에 학교폭력 전적이 있던 사람이었거나 정치인이 무슨 비리를 저질렀거나 연예인이 무슨 음주운전을 저질렀거나. 이런 사건이 터지면 수많은 욕설이 난무합니다. 공인이 잘못했으면 그 어떤 심한 욕설로 상처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고 공인이니 사회적으로 인격모독을 당하고 언어폭력으로 매장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모습들이 괜찮을까요?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든 버려야 하고,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말로 우리가 심판할 것이 아니라, 죄지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게끔 도와주고 중보기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선보다 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간사한 말로 남을 해치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성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 비난하고 심판하지 않더라도 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52편에 의하면 포악한 자는 어떤 심판을 받습니까? 52편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아멘.
하나님의 판결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겁습니다. 그러니 악한 자의 처분은 가볍게 끝나지 않습니다. 5절 말씀에 따르면 포악한 자는 하나님에 의해 뽑힘 당합니다. 장막에서 뽑힘 당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뿌리채 뽑힘 당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가 생활하던 공동체에서 퇴출당하고 그가 평생토록 씨앗을 뿌리며 살아온 땅에서 흔적도 남김없이 뿌리채 뽑힘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이후에 의인이 등장합니다. 의인은 포악한 자를 보고 비웃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아멘.
여기서 의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의인은 포악한 자를 비웃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죠. 의로운 사람인데 비웃을 수 있을까요? 의로움과 비웃음. 두 단어는 서로 거리가 멀어보이는데 어떻게 의로운 사람이 악한 사람을 비웃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의인이 비웃는 행위는 악한 마음으로 비웃으며 악인이 뿌리채 뽑혀버린 것에 대해 우월감을 느껴서 나오는 행위가 아닙니다. 의인이 비웃고 있는 것은 악한 자의 가치관입니다. 포악한 자는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습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의 힘으로 삼지 않고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했던 사람입니다. 의인은 그러한 삶의 태도를 비웃은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얼마나 무지합니까. 돈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인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있다한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인 이상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으니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의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헤세드를 찬양하고 의지합니다. 인자 라고 번역된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하나님께서 자녀삼아주시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그 언약적인 사랑, 변함없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만 의지하며 살아가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편 52편에는 악인과 의인,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포학한 자가 왜 악인입니까? 악과 거짓을 사랑하고 남을 해치는 말을 사랑하며 자기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라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은 왜 의로운 사람이라 기록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기로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하기에 의로운 사람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의인과 악인 둘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시편 52편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의인입니까 아니면 악인입니까. 시편 52편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스스로의 믿음을 돌아보고 우리가 사랑하는 바가 무엇인지 점검하며 의인으로써 영원히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기로 결단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매일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야할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하나님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사랑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가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만을 영원히 의지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이름을 사모하며 하루를 살아내기 원하오니 주여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