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헬살랄하스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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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7장부터 9장까지의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강대국에 대한 신뢰가 대조를 이루면서 전개됩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이름, 임마누엘과 마헬살랄하스바스와 같은 이름들이 징조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 징조 또한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앗수르를 의지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죠.
이 말씀을 받는 1차 청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몰랐겠지만, 2차 독자인 우리가 볼 때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역설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어떤 특정 나라를 의지하게 된다면, 오히려 그 나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멸망 시켜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을 제압하자마자 느닷없이 나한테 달려들어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도록 두들겨 패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걸까요? 앗수르든 바벨론이든, 메데든 바사든 로마든 그 어느 나라든,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 사실을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 주기에는 이 문제가 너무 무겁고 중요했습니다. 이를 알려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하스왕에게 임마누엘의 징조를, 두 번째로 선지자 이사야에게는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징조를 주십니다. 둘 다 아이를 낳는 것과 연결되는 징조이지요. 우선 임마누엘 징조는 궁극적인 구원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다소 절망적입니다. 유다의 원수들을 압도하는 대상이 유다 또한 압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강하고 거대한 적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을 깊고 어두운 절망감에 빠뜨리고 말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오늘 본문인 8장에도 등장합니다. 비슷한 말씀과 비슷한 징조를 주신 이유는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고 그만큼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장 1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이어서 3절 보십시오.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1절에서 하나님께서 쓰라고 명령하신 글자와 이사야의 아들 이름이 똑같은 글자로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왜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지으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4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아이가 아빠, 엄마, 말을 하기도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말입니다.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비유적인 표현이라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실로아 물 이라는 것은 겉으로 볼 때 굉장히 무기력해 보이는 작은 시냇물과 같습니다. 반대로 세상 강대국들의 힘은 유브라데 강처럼 보이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깨닫지 못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웅장하고 강력하다는 강이 제멋대로 온 세상을 휩쓸고 그들을 삼켜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7절과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가 무엇입니까. 바로 앗수르 왕이지요. 그런데 이 당시 남유다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은 남유다의 왕인 아하스 왕이 앗수르와 동맹을 맺은 것으로 인해 굉장히 큰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외교적인 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죠. 아마도 이들이 생각할 때, 남유다를 구원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의 뛰어난 외교적인 능력 혹은 그들의 지혜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남유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유다가 그들의 적을 집어삼키는 데 이용한 그 강이 유다 자신을 휩쓸어 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비유적으로 표현된 이 강의 범람은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이 입과 코에 이르러 이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죽겠다. 싶을 때 강의 범람이 멈추게 될 것입니다. 죽기 바로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회복이 일어날까요? 죽을 뻔했으니까 이제는 좋은 일만 가득할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 단락에서 소망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인지에 대해서만 생생하게 표현하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습니다.
힘든 일이 있었으니까 인생 새옹지마니까 이제 좋은 일이 시작되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진 않을 것입니다. 이 상황을 지혜롭게 잘 극복하려면 이스라엘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깊고 강한 조류, 인간적으로 의지할만하고 기댈만한 곳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볼 때 쫄쫄쫄쫄 흐르는, 얕고 천천히 흐르는 개울물과도 같은 실로아 물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손길을 실로아 물이라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굉장히 적절한 비유입니다. 혹시 매일 매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하심과 전지전능한 그 능력을 100% 체감하며 살아가시는 분 계십니까. 무한한 그 능력이 너무 너무 잘 느껴지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만 바라봐도 느껴지긴 합니다만,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인간은 다 알 수도 없고 다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 전지전능하심?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이런 형이상학적이고 신비한 부분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점점 하나님의 손길을 작게 느끼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요즘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의 눈에는 졸졸졸졸 흐르는 실로아 물, 우습게 볼만한 그 실로아 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넓은 강이나 바다보다 깊고 강해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남유다처럼 세상적인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작디 작은 왜소한 실로아 물이라 하더라도 그 본질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장마철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비가 많이 오는지 안 오는지도 모르고 맨 몸으로 빗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볼 때 하나님 이라는 신이 세상에 비해 훨씬 약해 보이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라는 신이 너무나도 무능력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며 초월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심판 받지 않고도 징계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잘 알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친밀함을 매일같이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모든 일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법도와 규레를 버리고, 말씀을 버리고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과 부를 누리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이 세상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주님뿐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루를 기쁨으로 살아내길 원하오니 우리 마음을 주장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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