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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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21장 9절에서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를 만납니다. 그 천사는 요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내게 보이리라” 어린 양의 아내. 신부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그 신부가 누구인가 하니, 10절을 보시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어린 양의 신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라는 전제를 가지고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을 보시면 어린 양의 신부인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 깃들여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신부인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단장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단장하면 어떤 느낌일까요. 11절을 계속해서 보시면, 그 성은 빛이 나는데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은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어린 양의 신부인 예루살렘의 겉모습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맑은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12절부터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크고 높은 성곽은 우리에게 아주 견고하고 튼튼한 느낌을 줍니다. 그 어떠한 침략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죠. 이렇게 크고 높은 성곽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거대한 성곽 안에서 보호받는 느낌,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이러한 느낌은 사도 바울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9절 말씀을 통해 누구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다면 그 사랑이 어떻게 끊어지지 않고 보존될 수 있는지, 크고 높은 예루살렘 성곽을 통해 시각적인 묘사들로 생생하게 떠올리게 됩니다.
이 성곽이 얼마나 큰지, 성곽을 측량하는 내용이 15절부터 자세히 기록되고 있는데요. 16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각각 만 이천 스다디온이라고 합니다. 정육면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죠. 여기서 만 이천 스다디온은 2,400km입니다. 실제로 2,400km의 수치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400km라는 수치는 실로 어마어마 합니다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2,400km가 아니라 2억 4천만 킬로미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수치들을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데요. 만 이천 스다디온에서 12라는 숫자, 17절 144 규빗에서 144라는 숫자를 완전한 숫자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매우 거대하고 완벽하게 안전한 예루살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어서 18절부터 20절까지 계속해서 성곽의 기초석이 각각의 보석으로 꾸며지는 내용이 나오는데, 일일이 생각하기 어렵고 잘 와닿지 않아서 간단하게 총체적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성의 기초와 성곽, 성문들과 보석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와 함께 누리는 영원한 안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스라엘에서 생활하지 않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에 요한이 본 계시의 말씀들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임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더 이상의 어떠한 방해도 없이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를 누리고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으며 교제하는 그 기쁨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21절에서 성의 길이 표현된 구절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1절 중간 부분을 보시면,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여기서 예루살렘 성의 길, 성의 길이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서만 등장합니다.
11장 8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그들의 시체. 누구의 시체일까요. 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등장하는데요. 두 증인이 증언을 마칠 때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전쟁을 일으켜서 증인들을 이기고 죽입니다. 증인들의 시체는 큰 성 길에 버려집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증인들의 시체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아마도 멸시가 가득한 눈으로 시체를 내려다보았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증인들의 피로 얼룩진 예루살렘 성의 길이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21장 21절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전에 증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했던 그 길이, 세상으로부터 멸시받고 짐승에게 죽임당해 피로 얼룩졌던 그 길이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변화되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러한 장면을 떠올리면, 증인들의 죽음의 길이 영원한 영광의 길로 변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증인들이 인내하면서 죽음이라는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에 대한 보상이 예루살렘 성전의 성곽을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받은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상 끝날 어린 양의 신부인 예루살렘, 완전해진 교회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 완전해진 교회의 구성원이 될 우리는 예루살렘의 성곽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지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계시록 11장에서 증인들이 치욕스런 죽음을 당할 것이라 해도 그것이 끝은 아니기에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 죽음의 길을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의 길로 새롭게 단장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고 또 의지하며 하루를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열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한 거룩한 열심으로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박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 성의 길, 주께서 못박히신 그곳에서 증인들이 짐승에 의해 죽임당해 피흘릴 치욕스런 길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말이 진정한 끝이 아님을 주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예루살렘,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그곳. 크고 견고한 성곽 안에 우리를 거하게 하실 주님, 피로 얼룩진 길이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의 길로 변화된 것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어 살아가게 하옵소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어려움을 당할지도 모르는 오늘을 살더라도 감사하길 원합니다. 정금의 길로 새로이 치장해주실 주님의 손길을 기대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당장의 어려움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주장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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