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엘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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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 본문 말씀은 창세기 20장에 나왔던 그랄 왕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과 함께 등장해서 장기적인 불가침 조약을 맺자는 제안을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창세기 20장에 의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매순간 긴장되는 상태로 지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셔서 사라를 돌려보내게 만드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기도로 인해 아비멜렉의 집에 태가 닫힌 일이 해결되었죠.
이 사건으로 인해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21장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멘.
아비멜렉이 한 말은 굉장한 말입니다. 이 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블레셋 땅에서 인접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랄 땅과 브엘세바까지의 거리는 대략 50k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이 보기에 아브라함은 이방인이고 그 지역에서 사회적인 약자입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군대로 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아브라함은 블레셋 사람들에 비해 힘이 약했기 때문에 우물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창세기는 아비멜렉이 하나님을 결국 믿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은 창세기 20장, 21장, 26장에서만 등장합니다. 그의 신앙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본문 내용만 놓고 보면 하나님의 존재는 알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사람의 눈에 아브라함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힘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떠돌이 나그네에 불과한 아브라함에게 한 국가의 왕이 찾아와서 언약을 맺자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을 보십시오. 본문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멘.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뭔가 순서가 바뀐 듯 합니다. 힘이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에게 먼저 찾아가서 조공을 바치고 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 상황은 그 반대입니다. 힘이 강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나그네 일족인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서로 거짓되게 행하지 말자.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해라. 이런 식의 요구는 신기합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2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복 그 자체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아브라함은 나그네 인생길을 살고 있습니다. 흉년이 들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힘든 인생길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창세기 20장에서 아비멜렉으로부터 양과 소와 종들을 받았고 은 천개도 받았습니다. 이제는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장관 비골이 찾아와서 먼저 언약을 맺자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맺으신 약속,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을 주시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는 그 약속이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그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듯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는 이러한 말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도 그러했고 다니엘도 그러했습니다. 요셉과 다니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통해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다 믿는다 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또 우리 안에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근심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아비멜렉이 언약을 맺자고 제안한 뒤 우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의 오해를 풀고 언약을 세웁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맹세의 우물이라 이름 붙인 브엘세바를 갖게 됩니다. 이제 우물을 갖게 된 것입니다. 생존권을 보장받게 된 것이지요.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멘.
이 일 후에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평화와 안정이 온 뒤에 나태해진 것이 아닙니다. 평온한 일상에 취해 살아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 그분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지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이 언약 맺은 사건을 보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신자들의 눈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보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한국교회가 어려워지고 있고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줄어든다 하여도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더 나빠진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 있는 참 성도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된다면 세상은 알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보여질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강할 때나 약할 때나, 부요할 때나 가난할 때나 언제나 함께하시고 또 우리 기도에 응답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악한 세상 속에서 잘 살아보고자 열심을 내다보면 하나님을 잊을 때가 많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길 다시금 소망해봅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 주님이 나타나시길, 연약함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시길 소원합니다. 또한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아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