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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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결핍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합니다. 종교가 종교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깨끗한 물 한 바가지 떠놓고 밤새도록 달님에게 빌고 또 빌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나무를 향해, 또 누군가는 태양을 향해, 또 누군가는 돌을 쌓으며 간절한 마음을 빌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간절히 빌었을까요. 도저히 낫지 않는 병이 쾌유되길, 자식이 과거에 급제하길, 흉년이 속히 지나가길. 이 외에도 수많은 바램들이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종교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도와주고 채워준다는 의미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종교는 어떨까요. 과거에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신자들은 과연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얼마나 달랐을까요. 2천년의 시대를 다 아울러 말씀드리기 어려우니 사도들이 생존했던 시대는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고린도전서 15장 20절 바로 윗 절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아멘.
사도 바울이 볼 때,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신자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그 믿음. 믿음의 목적이 이 세상의 삶을 향해 있다면, 그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바라는 것이 단지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아주 측은하고 불쌍한 사람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불완전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세상은 더욱 윤택해지고 살 만해지는 세상이 되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도,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전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절대적인 가치와 비교해 보면 여전히 턱 없이 모자르고 부족하며 보잘 것 없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절대적인 존재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믿는 바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구하긴 구하되, 필요를 아뢰긴 아뢰되,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아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중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선언합니다. 잠자는 자들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신자들을 말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육체가 모든 기능을 상실하고 활동을 완전히 정지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면, 바울에게 있어 그 현상은 잠든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첫 열매라는 단어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첫 열매 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명확한 뜻을 전달해 주지 않습니다. 농사짓지 않기 때문이죠. 첫 열매를 수확하는 일이 없으니 별 감흥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첫 열매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매우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첫 열매를 거두었다는 말은 추수가 시작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를 거두면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곡물 뿐만 아니라 첫째로 태어난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초태생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성도님들도 잘 아시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새로운 추수에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풍성한 추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희망을 품고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열매를 거두었다는 것은 이제 추수가 시작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 풍성한 수확의 시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성도들이 곧바로 부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이 곧 시작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의 삶과 죽음 이후의 삶을 극단적으로 분리시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미 수확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이루든 무엇을 얻든지 간에 그것만으로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크게 실패했는지, 얼마나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든지 상관없이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본질적인 소망을 품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죄악된 세상의 종말은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만물을 통치하시고 복종하게 하실 우리 주님께서는 아무도 알지 못할 날에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강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굳게 믿으며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일 것입니다. 기쁠 일이 없는데 기뻐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법행위만 아니라면 어떤 편법이든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의를 행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적인 것이 당연해진 시대 가운데 오히려 남을 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날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는 더욱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믿으십니까.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수확을 바라보시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아멘.
하나님, 세상을 바라보면 매일같이 비극적인 일들이 뉴스에 난무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식을 줄 모릅니다. 희망찬 2020년이 되길 간절히 바랬지만 위기감이 겉도는 채로 상반기를 마감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신 주님,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주님을 바라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어려움들이 해결되지 않아 답답하고 속이 상하더라도 첫 열매로 드려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고 참된 생명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소망을 품고 오늘 하루도 살아가길 원하오니, 주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