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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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원역사, 원시 역사라 부르고, 12장부터 50장까지는 족장사라고 부릅니다. 원시역사의 마지막 내용은 바벨탑 사건으로 종결됩니다. 노아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끝나고 홍수에서 생존한 노아의 후손들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갑니다.
본문 11장 2절을 보시면, 구체적인 주어가 나오지 않고 인칭대명사인 그들이 바로 등장합니다. 보통 어떤 사람들인지 먼저 말하고 그 사람들을 재언급할 때 그들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바로 그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람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옮겨 다니다가 시날 평지에서 정착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날 평지는 메소포타미아 땅을 말하는데요. 이 지역은 바벨론으로 불렸던 지역입니다.
시날 땅에 모인 사람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초고층 탑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높이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들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4절 상반절을 보시면,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바벨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러자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십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시날 땅에 모인 사람들은 바벨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건축을 시작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탑을 보기 위해 내려오십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늘에서 바벨탑까지의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이 탑을 보기 위해 내려오셔야만 하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어디에나 계신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하지만 창세기 저자인 모세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능력의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이 사건을 우습게 여기시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십니다.
그 결과 7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조치가 나타납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은 놀랍습니다. 바벨탑을 무너뜨리거나 바벨탑을 짓는 사람들의 목숨을 취하셔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십니다.
탑을 무너뜨리거나 탑을 짓는 사람들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시날 땅에 모인 사람들은 탑이 아닌 또다른 어떤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셔야만 했습니다. 제거해야 하는 것은 탑이 아닌 탑을 건설하게 만드는 것, 집단들 간의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의사소통 능력을 제거하면, 공용 언어를 없애버리면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일할 방법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고, 하늘에 닿게 할 바벨탑 건설의 원대한 목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립니다. 그 결과가 9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어놓으십니다. 악한 자들의 무리를 흩어버리신 겁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바벨탑을 지으려 했던 사람들의 두 가지 목표를 기억하고 조심해야만 합니다.
첫째, 바벨탑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들의 야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4절 보시면 “우리 이름을 내고” 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 명성, 평판에 목숨을 겁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죠. 인생에서 무언가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하지요. 그 그릇된 목적이 극대화되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없이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자만과 교만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자기 자신의 이름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갔던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축복이 함께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며, 우리의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인생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그저 믿음으로 살아가다보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다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창대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둘째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한 바벨탑 건설 목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과 9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에 걸쳐 명령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과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사람들의 목표는 서로 상반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한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지 않다면, 인간의 목표는 수포로 돌아갑니다. 물론 그 목표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시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만한 것이라면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겠지만, 바벨탑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일에 대해서라면, 분명히 그 일을 막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려는 교만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사람의 이름을 내기 위한 목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영광,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하나님 없이도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는 그릇된 목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바벨탑 사건을 기억하시면서, 우리의 인생은 어떠한지, 우리의 목표는 어떠한지, 또 우리의 뜻은 어떠한지 돌아보시고 주님 앞에 온전한 목표와 뜻을 세우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아멘. 하나님, 바벨탑을 지은 사람들의 교만함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벨탑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함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나의 이름, 나의 명예, 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자 했던 마음이 있다면 제하여 주시고, 온전히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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