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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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여섯 째날입니다. 내일이면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고난주간과 부활절에 느끼는 감회는 매년 다른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신지요. 특별히 영상으로 예배드리는 기간이어서 느낌이 더욱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의 차갑고 신선한 봄 공기를 마시면서 교회로 향하는 산뜻한 기분을 만끽하지 못하고 매일 사용하는 공간에서 고난주간을 보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이 시간 충만한 은혜가 있을 줄로 압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독특한 점 세 가지를 살펴보고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제육시부터 제구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정오부터 오후 세 시까지 어둠이 이어졌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가장 화창하고 밝아야 하는 시간대인데, 이럴 때 온 땅이 어두워졌다고 하니 어느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어둠이 임한 시간 가운데 숨지시는데요. 37절 보시면 숨지시기 전에 큰 소리를 지르시고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 큰 소리를 지르고 죽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달려있는 사람이라면, 큰 소리 지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진 채찍질과 과다출혈, 온갖 염증들이 몸에 올라오는 등 사람이 탈진하고 지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만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십자가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가운데 큰 소리를 내시고 온전한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둘째로 독특한 점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말씀이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단절된 느낌을 느끼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부당하고 조롱받습니다. 로마에게 정치적인 담보물로 희생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키운 애제자들로부터 부인되고 버림받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모두에게로부터 완벽하게 버림받고, 숨을 거두실 때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느끼시게 됩니다. 우리는 이 감정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얼마나 깊고 두려운 감정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느낌을 느끼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신 것을 보면, 죄를 사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과 함께 예수님은 죽음을 맞이하시고 그 죽음과 동시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휘장은 지성소 앞에 있는 휘장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있는 장막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거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인 지성소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드리는 희생제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독특한 점은,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백부장의 증언입니다. 이 백부장은 이방인이며 동시에 십자가 처형 집행을 책임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어떤 가르침을 보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한 예수님에 대한 평가는 실로 충격적입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아멘.
성도님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내려와 봐라. 능력을 증명해봐라. 등등 수만가지 조롱과 모욕으로 뒤덮였던 십자가 처형의 현장을 상상해보십시오. 이때 선민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핏줄을 알 수 없는 이방인, 할례 받지 않은 민족의 처형 집행단 백부장의 입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라는 증언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이 백부장은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하고 진심으로 고백한 첫 번째 증인입니다. 물론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두 번 등장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번은 모두 귀신들이 했던 말입니다. 다른 복음서들과는 약간 다르죠.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렇게 선포하고 마가복음의 진리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마가복음을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정작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람들, 제자들, 따르는 무리들 모든 이들의 입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방인이자 십자가 처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의 입에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이러니한 장면이지만 우리에게는 백부장의 증언이 희망적인 증언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는 고백은 사전 지식이나 예수님과 함께했던 시간들, 추억들, 태어날 때 손에 쥐고 나온 혈통들, 특권들 이런 것들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사랑과 은혜에 의존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내일이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 기쁨을 누리고 함께 즐거워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이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면 과연 이 부활절 절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지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단순하게 부활절이라는 절기 때문에 기뻐한다기보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정오부터 낮 세 시까지 이어진 어두움과 예수님의 큰 소리. 온전한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합시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죽음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 가운데 느끼신 예수님의 감정들. 그 감정을 억누르며 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어가신 우리의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의 죽음과 동시에 휘장이 갈라져 이제는 담력을 얻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합시다.
셋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입으로 고백합시다. 모두가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십자가 처형을 주도했던 백부장의 입에서 이러한 고백이 나왔다는 사실을 바라보며, 우리도 백부장과 똑같은 이방인이고, 똑같이 구원받을만한 혈통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에게도 열린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믿는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의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 가지 내용을 기억하시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주님께 고백하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때문에 고난당하시고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 덕분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감을 느끼셨기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저 부활절이라는 절기 자체만으로 단순하게 축제를 즐기는 시간이 아닌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동참하고 주님의 부활의 감격을 함께 누리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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