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심판을 애통해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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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바벨론과 연합했던 자들, 땅의 왕들과 상인들, 선원들이 바벨론의 심판을 애통해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이 애통해하는 이유와 이들에게 바벨론은 어떤 존재였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크고 두려운 심판이 어떻게 임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바벨론과 연합했던 자들이 애통해한 이유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슬퍼한 것일까요? 아니면 곧이어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여 애통해한 것일까요?
9절 보시면,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의 왕들은 바벨론이 하나님께 심판받아 불타는 연기를 보고 울며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곧 자신들의 경제적인 지위와 세력의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이 멸망하기 전까지 자기들이 손에 굳게 쥐고 있던 줄이 썩은 동아줄인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 땅의 왕들은 궁극적으로 자기들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애통해 하지 않고 그들의 손실에 대해 슬퍼한 것입니다.
상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1절 보시면,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상인들이 바벨론의 멸망 때문에 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상품을 사는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받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애통한 것이 아니라, 내 물건을 사줄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입니다. 선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왕들과 상인들, 선원들에게 바벨론은 어떤 존재였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왕들은 바벨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0절 앞부분을 보시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바벨론을 큰 성, 견고한 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시면 상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상인들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바벨론을 큰 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선원들은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이 땅의 왕들이나 상인들, 선원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바벨론을 크고 견고한 성이라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견고해 보이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크고 견고한 성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온전히 의지해야 할 분이신 하나님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인데요. 시편 144편 2절을 보시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아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친히 방패가 되어주시고 산성이 되어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 이 세상의 힘의 원리, 자본주의와 물질의 가치가 최고인줄 아는 자들에게는 바벨론이 크고 견고한 성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하나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바벨론을 크고 견고한 성이라 부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나의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 주는 무언가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게 나의 현금이든 통장이든 직장이든 땅이든 건물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방패이자 산성이 되어주신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살펴볼 것은 크고 두려운 심판이 임하는 타이밍입니다.
이 세상의 종말,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도둑 같이 은밀하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그 날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부귀영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크고 견고한 성 바벨론의 부는 한 시간 만에 멸망합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거대한 부를 축적해서 땅의 모든 왕들, 상인들, 선원들의 선망을 받았던 바벨론의 멸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서 주의 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아멘.
평안하다, 안전하다, 부유하다, 풍요롭다, 행복하다 느낄 때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멸망이 갑자기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날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과 5절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아멘.
빛에 속한 우리는 밤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둑 같이 임할 그 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지 않는 자들, 악한 자들의 풍요로움을 보며 혼동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편 73편에서 시편 기자는 악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실제로 우리가 보기에도 그러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법의 울타리만 벗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자기들 소견에 옳은대로, 탐욕대로, 정욕대로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들은 죽을 때도 편히 죽는 것 같고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나 재앙도 당하지 않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죽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요한계시록 18장 20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아멘.
우리는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심판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소망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임할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시며 오늘도 내일도 빛의 자녀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기보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의아해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땅의 왕들과 상인들과 선원들의 애통함을 바라보게 하시고 바벨론과 그들에게 심판을 행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다고 고백한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악인의 풍부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택함 받은 주님의 빛의 자녀로 사는 것에 진정한 감사를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언젠가 도둑같이 임할 그 날을 소망하며, 우리의 방패 되어 주시고 산성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복된 날을 주심에 감사드리고 이 자리에 모인 개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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