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같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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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계시록 1:9-20
제목 : 인자 같은 이
제가 어렸을 때 신앙 생활하면서 궁금한 점이 정말 많았는데, 그중에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생기셨을까. 라는 의문점이었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오셨을까? 이런 궁금증이 떠나가질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인터넷이 발달되어있지 않아서 무슨 네이버에서 검색해볼 수도 없고, 어디서 어떤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과서에서 예수님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도덕책 교과서에서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사이즈로 예수님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나오면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예수님의 모습을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역할을 맡은 배우가 굉장히 예수님스럽게 연기를 잘해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마치 예수님의 실제 모습을 본 것과 같은 그런 착각을 하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저런 모습이셨겠구나.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지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이런 궁금증에 따라 저는 여러 그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계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보면 예수님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예수님의 외모는 다 달랐습니다. 이 사진에서 예수님은 열 다섯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계시죠. 이목구비가 모두 다릅니다. 다르긴 달라도 대체적으로 살짝 긴 얼굴 형태와 긴 머리카락, 깔끔한 이목구비, 인종은 백인으로 추측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럽의 화가들이 주변에 있는 백인들을 모델로 그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래 예수님은 어떻게 생기셨을까요? 고대 히브리인들의 피부는 갈색에 가깝고, 머리카락도 까만 곱슬머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중세시대 유럽의 화가들이 그린 매끈한 장발 머리와 하얀 피부는 잘못된 정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몇 년 전, 영국 BBC 다큐멘터리에서 공개한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귀티 나는 잘생긴 얼굴이 아닌 굉장히 서민적인 얼굴이었습니다. (사진) 역사적으로 추측해 볼 때, 예수님의 키도 160cm가 안 되는 작은 키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죠.
자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예수님의 모습이 작은 키에, 검정색 곱슬머리에, 갈색 피부와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기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2절 말씀 보세요. (화면)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겁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와 다른 모습,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셨는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외형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함부로 추측해선 안 되겠죠.
그렇다면 성경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 승귀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고 계실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최종적인 모습을 요한계시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 땅에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고대하며 말씀을 상고하는 시간 함께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우선 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 이름부터 요한계시록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죠. 그런데 이 요한계시록이라는 책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 계시록이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 말씀 보세요. (화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사도 요한은 책 서두부터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이 계시의 말씀이 어떤 계시의 말씀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직접 보고 들은 계시를 기록한 말씀이지만,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죠.
자, 그래서 이 사도 요한은 성경에서 극히 드문 형태, 묵시 문헌의 형태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십사만 사천, 666. 뭐 이렇게 겉보기에 무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말씀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어서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문자적으로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영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분간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또 사도 요한이 구약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재해석하고 확장시키는 부분들은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한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다소 어렵더라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요한계시록 1장 10절 말씀 보세요. (화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사도 요한은 성령에 감동된 상태에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환상에서 사도 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목소리면 그냥 목소리지, 나팔 같은 큰 음성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의도로 기록된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나팔 소리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19장 16절 말씀 보세요. (화면)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애굽기 19장 19절 말씀 보세요. (화면)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출애굽기 말씀은 나팔 소리가 얼마나 크고 웅장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지만,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리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얼마나 장엄하고 웅장한지를 보여줍니다. 또 신약성경에서는 죽은 자들이 나팔 소리와 함께 부활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과 52절 말씀 보세요. (화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다 변화됩니다. 이 변화는 어떤 변화입니까? 이 세상 역사 가운데 죽은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는 변화입니다. 이어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말씀 보세요. (화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죠. (out)
자, 이렇게 나팔소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장엄한 임재하심을 상징하고, 또 신약성경에서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요한계시록 1장 10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화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사도 요한이 들은 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은 단순하게 큰 소리 정도가 아닙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얼마나 장엄하고 웅장한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으로,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알려주신 말씀이며, 얼마나 장엄하고 웅장한 말씀인지를 느끼게 합니다.
자, 그래서 이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 천상에 계신 우리 예수님의 음성, 예수님의 말씀이 사도 요한에게 주어지는데, 어떤 말씀이 주어집니까? 요한계시록 1장 11절 말씀 보세요. (화면)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말씀을 기록해서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따라서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1세기 또는 2세기에 소아시아 지역에 실존하는 일곱 개의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말씀은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상에 계신 예수님께서 교회들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요한계시록 말씀이 어렵다고 해서 평소에 신앙생활하면서 배제하거나 기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요한계시록 1장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화면)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사도 요한은 자기 뒤에서 들린 음성을 보려고 몸을 뒤로 돌렸는데, 무엇을 먼저 보게 됩니까? 일곱 개의 금 촛대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일곱 금 촛대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곱 금 촛대들 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때 일곱 금 촛대가 단수인지 복수인지 이게 뭐가 중요한가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만 궁금한 건 아니겠죠? 네. 출애굽기 2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안에 비치될 순금으로 된 등잔대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작년 11월에 새벽기도회 말씀으로 나누었던 내용인데요. 이 순금 등잔대는 성막을 밝히는 역할을 했습니다. 밤낮으로 계속해서 빛을 비추는 역할을 했죠. 등유를 넣고 불을 붙여서 사용했는데, 제사장은 이 일곱 등잔대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어서 그림을 보시면, (그림) 순금 등잔대의 모양이 어떻습니까? 하나로 연결되어 있죠. 누군가 이 등잔대가 몇 개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개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도 요한이 계시록 1장 12절에서 본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개별적인 촛대들 일곱 개였습니다. 성막에 있는 순금 등잔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뭔가 조금 다른 이미지처럼 느껴집니다. 구약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뭔가 조금 더 발전된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어서 계시록 1장 13절 말씀 보세요. (화면)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이 말씀이 오늘 말씀의 핵심적인 구절인데요. 지금까지 나눈 말씀을 잠깐 정리하자면,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있을 때 요한은 자신의 뒤에서 큰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이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하는 소리라고 했죠. 그래서 이 큰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이 요한에게 명령하는데 어떤 명령이었습니까? 일곱 교회에게 말씀을 기록해서 보내라는 명령이었죠. 이때 사도 요한은 자신이 들은 음성이 어떤 음성인지 알아보려고 뒤를 돌아봅니다.
뒤를 돌아보자, 누가 보입니까? 계시록 1장 13절 말씀에 따르면 그 음성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인자 같은 이”입니다.
자,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요한은 여기서 도대체 왜 “인자 같은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요한계시록 1장 내용을 쭉 읽어보면,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그냥 예수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 구원자 이런 식으로 기록해도 될텐데, 굳이 “인자 같은 이”라고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구약성경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화면) 시작.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이 말씀은 다니엘이 본 환상의 말씀입니다. 이 환상에서 인자 같은 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인자라는 말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뭔가 이상하죠. 네. 사실 저도 인자라는 표현이 원어로 보든 우리말로 보든 어색한 느낌이 계속 듭니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다니엘 7장에 따르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온 인자 같은 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인자 같은 분이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다니엘 7장 14절 말씀 보세요. (화면)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아멘.
아직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은 때에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표현이 바로 “인자 같은 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서 “인자”라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인자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을 표현하실 때, 그리고 구원에 관련된 말씀을 하실 때 사용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내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장 13절 말씀을 묵상할 때 큰 인상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가장 먼저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십니까?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를 떠올리실 수도 있고, 미술작품에 나오는 예수님의 생김새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것이고, 고난받으시는 예수님, 피 흘리는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떠올리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예수님을 단편적으로만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은 건강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책이나 영화를 보는데, 전체 내용을 다 보고 나서 중간 내용까지만 기억하고, 인상 깊었던 내용만 기억한다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보긴 어려울 겁니다. 물론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내용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인자가 어떻고 구약성경 메시아가 어떻고, 신약성경의 인자가 어떻고. 이런 내용은 듣기 어렵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을 언제까지 모르는 채로 지낼 수는 없습니다. 어렵게 들리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그래서 “인자 같은 이”라는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딱 두 번 등장합니다.
함께 읽은 구약성경 다니엘 7장 13절,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장 13절. 이렇게 구약에서 한번, 신약에서 한번 등장합니다.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환상으로 보고 고대하게 만드는 다니엘서의 말씀과,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서 인자 같은 분으로서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들 사이에서 교회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3절부터 16절까지 내용을 보면, 인자 같은 분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초상화나 영화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홉 가지 정도 되기 때문에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은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고 계십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굉장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나타내는 옷이기도 하고 제사장의 의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긴 옷은 천상에 계신 예수님께서 입고 계실만한 옷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은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십니다.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있다는 것은 왕이나 제사장의 예복을 상징합니다. 긴 옷을 입으신 것과 유사한 맥락이죠. 왕이시며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시는 예수님에게 합당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부터는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셋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은 머리가 흰 양털 같은 모습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자 같은 분이신 예수님의 머리카락이 백발이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연세는 추정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나이로 따지자면 당연히 백발일 수 있겠죠. 하지만 여기서 “희다”라는 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하며 순결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머리카락은 하얀색이 아닌 빛이 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뭔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죠. 일반적인 사람의 머리카락이 눈이 부실 정도로 밝거나 하얄 수는 없으니까요.
네 번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은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눈이 불꽃같다는 말은 어떤 말씀일까요? 눈동자가 빨간색이라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흰자 검은자 할 것 없이 다 불꽃 같은 빨간색일까요? 눈이 어떻게 불꽃 같은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이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이 눈은 모든 것을 감찰하고 다스리시는 분의 눈입니다.
다섯 번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의 발은 빛나는 주석과 같습니다. 빛나는 주석이라는 말은 금광석이나 순도 높은 청동, 고급스러운 광석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습니다. 많은 물소리는 거대한 폭포의 소리 또는 지중해의 파도 소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많은 물소리는 하나님의 두려운 음성, 하나님의 권능과 힘이 어떠한지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곱 번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개의 별들이 있습니다. 일곱 개의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의미하는데요. 예수님께서 일곱 개의 별들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은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상징합니다. 교회가 부족하고 약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천상에서 오른 손으로 교회를 지속적으로 붙드십니다.
여덟 번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옵니다. 이 검은 사도 요한이 생존했던 시대에 사용된 크고 폭이 넓은 검을 의미합니다. 이런 검이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죠.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예수님께서 폭이 넓고 큰 검, 좌우에 날이 선 검으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검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 세상을 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으면, 그 교회 역시 심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두려운 이미지라고 볼 수 있겠죠.
이어서 아홉 번째로, (화면) 인자 같은 분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처럼 빛이 납니다. 이렇게 빛이나는 예수님의 얼굴은 예수님의 빛나는 위엄을 보여줍니다. 요즘 무슨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을 보면, 후광이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성경적으로 보면, 후광이라는 표현은 사람에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빛이 나는 위엄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인자와 같은 분의 아홉 가지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모습과 두 번째 모습은 예수님께서 입고 계신 의복에 대한 내용이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세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카락, 눈, 발, 목소리, 일곱 별, 입에서 나오는 검, 빛나는 얼굴. 이런 모습들이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이미지화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죠. 왜 그렇습니까? 이러한 모습은 사실상 사람의 모습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예수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우리가 인자와 같은 분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피 흘리며 힘없이 죽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영광과 능력과 위엄으로 가득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은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요한은 인자 같은 분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환상으로 목격했습니다. 아무리 환상이라지만, 너무나도 강렬하고 위엄있는 예수님의 모습에 사도 요한은 압도당해서 죽은 사람처럼 엎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계시록 1장 17절 하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화면)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이 말씀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있을 때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보통 유배 간다는 말은 어디 먼 지방에 내려가서 조용히 지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사도 요한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채석에 관련된 노역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징역과도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좌우지간, 사도 요한은 이 계시의 말씀을 받았을 때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요한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밧모섬에서 힘들게 고통스럽게 노역을 감당하는 상황에서 인자 같은 분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았던 사도 요한은 그때의 모습과는 또다른 인자와 같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죽은 자처럼 엎드린 사도 요한이었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1장 17절 하반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화면)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아멘.
능력과 권세와 위엄으로 가득한 모습을 가지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사도 요한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고난 당하고, 박해 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심판에서는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인자와 같은 분께서 사도 요한을 높여주실 것이고, 우리들 역시 높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주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택자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은 친히 고난당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예수님께 침을 뱉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며 욕하고, 채찍질하고,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렇게 고난 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나약해 보입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무능력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은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장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인자 같은 분으로 묘사됩니다. 인자 같은 분은 어떤 모습으로 계십니까?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긴 옷을 입고 계십니다. 그분의 머리털은 빛이 나며 두 눈은 불꽃과 같습니다. 발은 빛나는 주석과 같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습니다. 오른손에는 일곱 개의 별들이 있고 그분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며,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자 같은 분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예수님께서 얼마나 찬란하시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일곱 개의 촛대들 사이에 계십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일곱 개의 촛대들, 온 세상에 있는 이 교회들을 친히 다스리시고 통치하십니다. 이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박해 당하고 유배 당하고 죽임 당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이 주님의 정의와 공의 가운데 심판받게 될 것이고 주님의 자녀들은 높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주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천상에서 통치하시는지 묵상하며,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님을 더욱더 의지하시며 살아가시는 모든 주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이 요한계시록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보여주신 인자 같으신 분,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험난한 세상 살아갈 때,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또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지니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주님 한분 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찬란하고 아름다우신 주님, 능력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한분 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삼일 저녁에, 찬양과 말씀과 기도를 통해 풍성한 은혜 누리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주님 앞에 드리는 특별한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주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담임목사님 청빙과 우리 교회와 국가와 사회, 열방을 위한 기도와 환우들을 위한 기도 제목들을 주여 기억하여 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속히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차고 넘치게 채워주시는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