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숫양의 기름보다 나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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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삼상 15:17-24
제목 : 제사와 숫양의 기름보다 나은 것
구약성경 인물 중에서 사울은 부정적인 인물로 기억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악령에 시달리고 분노를 참지 못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죠.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사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아닌 육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사울이란 남자는 굉장히 그럴 듯해 보입니다.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민족들에게 압제당한 이스라엘에게 사울보다 더 적합한 왕은 없어 보입니다. 사무엘상 9장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화면)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아멘.
사울은 어떤 사람이라고 나옵니까? 첫 번째로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준수하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형용사인데요. 토브라는 말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씀에서 사용된 좋았더라와 같은 단어입니다. 사울에 대한 굉장히 긍정적인 표현이겠지요? 여기서 사용된 토브라는 단순히 좋다는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의 아름다움과 도덕적인 겸손함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울에 대한 두 번째 표현은 키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다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키가 크다고 묘사되는 이스라엘 사람은 사울이 유일합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큰 것이 아니라 최소 10에서 20cm 정도 더 컸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무엘상 14장 47절 말씀을 보시면,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아멘
이 말씀에 의하면 사울은 전쟁터에서 싸울 줄 아는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사울은 힘이 세거나 용감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수집하는 그런 느낌이라기보다, 이스라엘의 군대 체계를 새롭게 수립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기 전, 사사시대 때만 해도 이스라엘의 주둔군 개념은 없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징병해서 다같이 싸웠다가, 전쟁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해산했죠. 그런데 사울 때부터 이렇게 싸움 잘하고 용감하고 이런 사람들을 모으면서 주둔군 개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여러 말씀들에 따르면 사울은 신체적인 조건만 놓고 보면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만한 남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 중에서는 군계일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죠. 갑자기 무슨 낙하산으로 기름부음 받아서 왕이 된 케이스가 아니라 누가 봐도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지요. 이랬던 사울이 어떻게 하나님께 버림 받게 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번제를 드린 것이었고 둘째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건들을 깊이 있게 살펴보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무 야박하고 야속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조금은 연약할 수도 있지,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저지른 잘못은 작은 실수 혹은 순간의 오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선 이 일이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오늘 본문 말씀인 사무엘상 15장 1절에서 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장은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에게 전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사울이 키가 크고 잘생기고 겸손하고 누가 봐도 왕이 될만한 관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사울이 왕이 된 것은 그저 하나님의 뜻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사무엘을 보내셔서 기름을 부으셨을 뿐이고, 그렇게 왕으로 삼으셨을 뿐입니다.
이어서 보시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울이 왕이긴 하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그 명령을 온전히 순종해야 하는 왕입니다. 이는 과거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그 어떤 대통령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국가를 이끌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래서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해야하는 임무를 받게 된 것인데, 이 진멸하라는 명령은 다소 야속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멸의 대상은 나쁜 사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젖먹는 아기와 죄없는 동물들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말렉에 속한 모든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려야만 하는 근거는 충분합니다. 출애굽기 17장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물이 없어서 르비딤에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물이 없다고 죽겠다고 반발이 치솟는 이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치러왔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랫동안 종노릇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군사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은 사람이 없었고 무기도 충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컨디션도 온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말렉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피곤하고 지친 시점을 노려서 공격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이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7장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아멘.
출애굽하던 그 때부터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날까지 굉장히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원수관계니까 기억했다. 이런 것은 아니고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하신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언약이 되었든 축복이나 저주가 되었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번복하시는 일이 없으시죠.
그래서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게 되는데요.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아예 씨를 말려버려야 하는 그런 사명을 받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올바로 이행하지 않습니다. 15장 8절과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아멘.
사울이 진멸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아말렉의 왕 아각과 양이나 소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 이런 것들을 다 남겼다고 합니다.
자, 그런데 사울이 단독적으로 명령해서 가치없는 건 다 없애고 좋은 건 다 남겨와! 이렇게 묘사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무엘상 15장 9절 말씀을 보시면, 주어가 사울 혼자가 아닙니다. 사울과 백성이 남긴 것입니다. 백성은 옳고 백성은 깨끗했고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지만 왕으로 세워진 사울만 잘못했고 죄지은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거 다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이거 다 없애야 하는데... 왕께서 살려두라 하셨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 하나 없이 다들 즐기면서 없앨 것은 없애고 취할 것은 취한 것이죠.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대에 전쟁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쟁에서 승리하면, 영토를 얻죠. 전리품도 취하죠. 공물도 받을 수 있죠. 혹은 그 땅이 필요 없을 경우 비참하리만치 약탈해 가기도 하죠. 하지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전쟁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취할 이득이 사실상 0에 수렴한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모든 걸 다 없앨거면 전쟁할 필요가 있을까요? 얻을 것이 없는데요? 전쟁하느라 힘만 뺄 뿐이죠. 게다가 전쟁 중에 우리 쪽 사람들도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방식대로 아말렉을 진멸하는 전쟁은 이러나 저러나 무조건 손해보는 장사인겁니다. 사울은 왕으로써 돌격 앞으로! 이렇게 전쟁을 진두지휘하면서, 진멸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결과적으로 전쟁에서는 대승을 거두었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에는 불복종, 불순종하면서 좋은 것들을 다 얻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는 막 난리가 났을 겁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출애굽 할 때 쳐들어온 이 비열한 족속을 혼내줬겠다, 비싸고 값어치 있는 물건들이나 가축들도 잔뜩 얻었겠다, 아주 뭐 금의환향 수준이죠.
사울이 전쟁 후에 얼마나 기분을 냈는지 12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아멘. 여기서 포인트는 기념비를 세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신정통치국가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는 전혀 정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이죠. 참 아이러니 한 겁니다. 막 사람들 분위기는 좋아서 죽겠는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울은 이제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는 끝난 겁니다.
하지만 사울은 한껏 기분 내면서 흥에 겨워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양과 소들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돌아갑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 묻습니다. 내 귀에 들리는 양과 소의 소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는가 묻고 있는 것이죠. 사울이 대답합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아멘.
사울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양들과 소들만 남긴 것처럼 보이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아말렉 사람들도 완전히 진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성경에서 아말렉 족속에 대한 기록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말렉을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말렉이 등장하는 것은 사울이 진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뿔뿔이 흩어져서 찾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진멸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울의 주된 관심이 “진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멸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대체 왜 진멸하지 않았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아말렉을 진멸할 수 있었을텐데, 대체 왜, 도대체 왜 진멸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만만해서 그랬을까요? 그냥 대충 진멸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율법책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아말렉에 대한 원한관계는 굉장히 오래되었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신탁을 전해받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는데, 왜 진멸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사무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아멘.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육성을 듣고 응답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목소리를 육성으로 들을 수 없지만, 우리가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위해 몸부림치며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순종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탈취하기에만 급했기 때문입니다. 탈취하기에만 급했다는 말을 원어적인 의미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전리품으로 탐욕스럽게 돌진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리품을 향해 탐욕스럽게 돌진했다는 말이죠. 힘들게 싸우고 나서 힐링하는 시간이 바로 탈취물을 취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울은 백성들과 함께 힐링 타임을 즐깁니다. 발을 헛딛는 것과도 같은 찰나의 실수가 아닌, 탈취물을 하나라도 더 취하려고 급하게 급하게, 무슨 며칠 동안 굶주린 사람이 밥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듯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차하는 실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세 번째 이유는 사울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5장 17절 상반절만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키가 누구보다 큰 사울이 스스로를 작게 여겼다고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를 작게 여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 앞에서도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랬던 사울이 시간이 흘러 왕이 되고 지켜야 할 것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더 소중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생기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영적으로 병들고 변질된 것입니다.
그 결과 사울이 어떻게 변합니까? 하나님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하게 됩니다. 2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아멘.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보다 백성들을 더욱 신경 쓰고 백성들의 목소리를 두려워했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왕으로 기름부음 받기 전에 사울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중반의 나이대의 사울은 키도 훤칠하게 크고 싸울 줄도 알며 겸손하기까지 한 훌륭한 남자였습니다. 이랬던 그가 변해갑니다. 왕이 되어 권력을 잡고, 백성들을 다스리며 여러 일들을 겪으며,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조금씩 변해갑니다. 키가 커서 남들을 눈 아래에 두더라도 자신이 작은 줄 알았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게 생깁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뜨거웠습니다. 처음엔 하나님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처음엔 겸손함도 남들 못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엔 이런 일 저런 일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순종하고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생활 좀 하다보니, 나이도 먹다 보니 무뎌지기도 하고 더 중요한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삶에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바뀌게 됩니다. 머리로는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지. 머리로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나는 죄인이구나. 이렇게 부족하구나. 머리로는 압니다. 자신의 삶과 교회 생활에 있어서는 이성이 개입합니다. 계산이 됩니다.
이렇게 계산적인 태도로 내 삶을 내 뜻대로 이끌어가는 것. 이는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못한 것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그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서 백성들이 원하는대로 탈취물을 거두며 승리한 기쁨을 만끽하게 내버려 두었지요.
사랑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대면 예배로 전환되고 기도회조차 비대면 영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 어려운 때에,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15장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아멘.
제사와 숫양의 기름은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사가 중요하냐 숫양의 기름이 중요하냐 무엇이 더 중요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습니까?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청종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릇된 부분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다시금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가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내 삶에서 주님보다 더욱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내가 주님을 올바로 섬기지 못했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말씀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사울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기는, 부디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담기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함이 우리의 삶으로 증명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 사태 가운데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오늘도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함으로 잘 살아내도록 인도하여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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