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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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삼상 9:1-2
제목 : 왕이 될 상
영화 관상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배우 이정재씨가 이 대사를 굉장히 카리스마 있게 소화하면서 많은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정재씨가 연기한 수양대군이 원래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이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이정재씨의 압도적인 폭군 이미지와 왕이 될 상이냐는 질문이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수양대군, 세조의 초상화가 공개되었습니다. (사진) 오늘날의 초상화들과는 다르게 뭔가 어떤 인상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그런 초상화죠.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관상쟁이는 수양대군의 상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남의 약점인 목을 잡아 뜯고, 절대로 놔주지 않는 잔인무도한 이리, 이 자가 진정 역적의 상이다. 수양대군의 초상화를 보시고 영화에 나오는 대사를 들어보셨는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역사적인 고증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영화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정작 영화를 처음 보셨을 때에는 굉장히 그럴싸하게 느끼셨을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관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상을 어떻게 보는건지는 모르더라도 생김새를 가지고 그 사람의 점괘를 보는 것에 대해 크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죠. 그러니 역사적으로 세조가 어떻게 생겼든 관계없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배우의 이미지만 보고 관상이라는 영화 제목에 대해 공감하게 됩니다. 이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외형적인 모습, 특별히 그 사람의 인상으로 인해 생각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것은 관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관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마치 관상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사람의 생김새 혹은 이미지만 보고 왕이 될 상이다. 라고 생각하는 그런 모습들이 발견됩니다.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유형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무엘상 9장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화면)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9장 2절 말씀에 따르면, 사울의 겉모습, 사울의 이미지는 세 가지로 묘사됩니다.
첫째로, (화면) 사울은 준수한 사람이었습니다. 9장 2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화면) 준수하다는 말이 나오죠.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좋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요. 이 토브라는 단어는 신앙생활하시면서 여러번 들어보셨을 겁니다. 토브라는 단어는 좋은, 선한. 이런 뜻을 가진 단어인데요. 9장 2절에서는 (화면) 외모가 아름답고 잘생겼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준수한 소년이라는 표현에서 소년이라는 말은 개역개정 성경에서 오역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젊은 사람, 힘이나 능력에 있어서 절정에 있는 젊은 남성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자, 그렇다면 히브리어의 의미를 살려서 9장 2절을 다시 읽으면, 사울은 어떤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젊은 데다가 개인적인 능력치가 절정에 달한, 아주 아주 잘생긴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잘생겼다는 말, 준수하다는 말은 사무엘상하 전체에서 총 세 번 나옵니다. 세 번 중에 두 번이 사울을 묘사할 때 사용되고 다른 한 번은 다윗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사무엘서의 저자는 사람의 용모를 표현할 때 웬만해서는 잘생겼다는 말을 거의 안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사울을 표현할 때 두 번씩이나 잘생겼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사울이 겉으로 보기에 정말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내용은 두 번째 특징으로도 연결되는데요. 사울의 용모 두 번째 특징은, (화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준수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첫 번째 특징과 겹치는 것처럼 들리실 수 있겠습니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에서 잘생겼다는 말은 사울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잘 와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9장 2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화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울이 가장 준수한 남자, 이스라엘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정도면 사울의 외모는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 얼짱 열풍이 불지 않았습니까? 무슨 무슨 여고 3대 얼짱, 무슨 강남 5대 얼짱. 이런 식으로 어디 얼짱이라는 호칭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느 정도냐면, 누구, 누구 엮어서 무슨 예루살렘 3대 얼짱, 무슨 뭐 베들레헴 5대 얼짱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이스라엘 전체에서 가장 준수한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생김새가 어느 정도인지 정말 궁금하지만, 일단 그 당시 미의 기준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수준이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울의 특징 세 번째는, (화면) 남들에 비해서 키가 크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9장 2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화면)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이 말씀을 보고 어떤 학자는 사울의 키가 190cm 정도 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정확하게 사울의 키가 몇 센치인지 모르더라도 성인 남성 평균키보다 30cm 정도는 더 컸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굉장히 훤칠한 남자였을 것입니다.
자, 그래서 정리하자면, 사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잘생긴 것이 특징입니다. 잘생겼는데, 얼마나 잘생겼는가 하면, 이스라엘 모든 남자 중에서 가장 잘생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생겼다는 겁니다. 심지어 사울은 잘생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키도 큽니다.
그러니 겉모습만 놓고 보면, 사울은 왕이 될 상입니까. 아닙니까. 네 사울은 누가 봐도 왕이 될 상입니다.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사울의 겉모습은 완벽에 가깝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잘생기고 키도 크고. 외면적인 모습으로는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어느 누가 이 사람을 보고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관상이고 자시고 그냥 얼굴만 봐도 얼굴에서 빛이 나는데, 어느 누가 사울에 대해 감히 평가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사울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사무엘상 10장 24절 말씀 보세요. (화면)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울이 왕으로 추대될 때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백성들 중에서 사울과 같은 사람이 없다고 선포하는 것이죠. 이에 대해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릅니다.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받아들이고 충성을 맹세하면서 열정적으로 환호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이 왕이 되던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사울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많았을텐데 그 사람들 모두가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받아들이고 사울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열정적으로 환호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마음 한뜻을 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나이 많은 사람들, 인생의 경험과 지혜와 판단력이 깊고 뛰어난 사람들도 사울의 겉모습, 사울의 이미지만 보고 이 사람이 진정 왕이 될 상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사울을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생각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잘생기고 키가 크다고 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세운 기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 제도를 허락하시고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왕정 제도를 원하지 않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조르고 졸라서 결국 허락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허락해 주신 것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왕정제를 허락하시고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9장 16절과 17절 말씀 보세요. (화면)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16절과 17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가 반복됩니까? 내 백성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하죠. 단 두 절 안에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내 백성을 위해서 왕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내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기 위해서 왕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진 것은, 왕이 될 상이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위하여 세우신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죠. 결과적으로 보면 사울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왕이자 실패한 왕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번제를 드린 사건과, 아멜렉을 진멸하지 않고 불순종한 사건. 두 가지 큰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처음부터 문제의 조짐이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사무엘서의 저자는 사무엘상 9장 1절과 2절에서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겉으로 보기에 얼마나 빼어나고 특출난 사람인지 보여주지만, 사무엘상 9장 3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울의 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단점은 두 가지 실패한 사건을 예상할 수 있을만큼 사울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단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9장 3절 말씀 보세요. (화면)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려서 종 한 사람을 데려가서 같이 찾으라고 명령합니다. 종을 데리고 가서 찾으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울의 집안은 어느 정도 부유한 집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종 한 사람을 데리고 암나귀들을 찾으러 여기저기 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합니다. 이때 사울은 종에게 아버지께서 걱정하실 수 있으니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정말 걱정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무엘상 9장에서의 사울의 나이는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준수한 소년이라는 표현에서 오해할 수 있지만, 이미 건장한 청년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죠. 그렇게 키도 크고 싸움도 잘하는 남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빨리 집에 돌아가야겠다. 이런 생각은 뭔가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사울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을 염려해서 돌아간다기보다, 뭔가 포기가 빠른 남자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사울이 어떤 일을 할 때 비교적으로 적극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사환에게 암나귀들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반면, 노예는 사울과는 다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사람과,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는 사람. 어떤 사람이 왕이 될 상이라고 보십니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일하기에 적합한 사람입니까? 사울의 아버지, 기스 집에서 일하는 노예, 그것도 성경에서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노예 한 사람이 사울보다 훨씬 더 왕의 자질이 풍부해 보이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9장 6절 말씀 보세요. (화면)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사환이 제시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가르쳐달라고 요청합시다. 라는 방법을 제시하죠. 그런데 이 방법은 꽤나 구체적입니다. 그냥 어디서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있다더라. 잘은 모르겠는데, 그렇다더라. 이런 것이 아니라 100% 확실한 방법처럼 말합니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실패할 확률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않은 또다른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는 지혜. 이러한 지혜가 사울이 아닌 사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9장 7절 말씀 보세요. (화면)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암나귀들을 찾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기 때문에 가서 물어볼 수 없다는 겁니다.
사울의 답변이 그럴듯하게 느껴지십니까? 전혀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죠. 왜 그렇습니까? 드릴 예물이 없으면 포기할 때 포기하더라도 예물을 구할 방법을 조금이라도 고민해 보는 것이 정상입니다. 가는 길에 어디 가서 예물을 빌릴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다가 결국 예물을 못 구하면 선지자한테 가서 사정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예물을 꼭 챙겨드리겠습니다. 훨씬 더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미리 챙기지 못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고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더 고민해 볼 필요도 없이 바로 답을 내려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다. 어쩌겠냐. 이런 상황에서 사환은 예물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사무엘상 9장 8절 말씀 보세요. (화면)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 쉽게 말해 성인 남성의 하루 일당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이 누구입니까? 베냐민 지파에서 유력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인 기스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사울과 노예. 둘 중에 누가 돈이 더 많겠습니까? 당연히 주인집 도련님 주머니가 훨씬 더 두둑하지 않겠습니까? 비교도 안 되겠죠. 그런데 예물이 없는 이 난감한 상황을 누가 해결합니까? 사환이 해결합니다. 노예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하루치 일당에 해당되는 돈이 어디 보통 돈이겠습니까? 정말 귀한 돈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환은 주인집 암나귀를 찾기 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 돈을 예물로 내어놓습니다. 이 노예는 준비성도 철저한 데다가 무려 희생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반대로 사울은 어떻습니까? 노예에 비해서 준비성이 너무나도 부족하죠. 사울과 노예,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신분인지 다 가려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누구를 왕으로 뽑는 것이 옳겠습니까? 누가 왕이 될 상입니까? 사울이 아닌 노예가 왕이 될 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백번 옳은 판단일 것입니다.
자 그래서, 사울은 노예의 철저한 준비성과 헌신적인 희생 덕분에 결국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됩니다. 사무엘상 9장 18절 말씀 보세요. (화면)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우여곡절 끝에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긴 만났는데 여기에 또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의 얼굴을 모릅니다. 사무엘상 9장 18절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서 사무엘 집이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묻고 있습니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사무엘상 7장 15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화면) 시작.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길갈, 미스바, 라마 뭐 이런 익숙하지 않은 지명들은 다 제쳐두고, 이 말씀에서 한 가지만 주목하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무엘이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사실입니다. 라마라는 지역에 사무엘의 거처가 있지만, 순회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사무엘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떻습니까? 사무엘을 만나서 사무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렸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부분에 깊이 관여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사무엘은 영적인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영적으로 지도받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울이 사무엘의 얼굴조차 모른다?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 시골 골짜기에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고, 무려 베냐민 지파에서 유력한 사람이라 불리는 기스의 아들인데, 돈이 많은 집안 주인집 도련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영적인 리더를 모른다? 이것은 대기업 회장의 아들 후계자가 자기 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사울이 사무엘을 모른다는 것은 사울이 영적으로 얼마나 무지한 사람이며, 영적인 일에 얼마나 무관심한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사울의 모습을 통해 왕이 될 상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과연 왕이 될 상이란 존재하는 것일까요? 성경을 통해 답을 찾아보면, 이 세상에 왕이 될 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왕이 될 상이라는 것은 그저 자기 소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상적인 지도자, 무흠하고 완벽한 통치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투표하고 이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은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될 상이다. 대통령 감이다. 이런 생각으로 투표하고 오셨을 겁니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신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좌우지간,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정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면 이민 간다. 더이상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망한다.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에서 살기 싫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싫을 수 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력이 요동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왕이 될 상, 대통령이 될 상.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2장 24절과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화면) 시작.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나라가 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왕이 어떻게 통치하든 나라가 멸망당하는 데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대통령으로 누가 뽑혀서 어떤 정책을 펼치든 그것만으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도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12장 25절 말씀에 따르면,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악을 행하는 백성들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몇 시간 지나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희비가 엇갈리겠죠.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발 선출되지 않기를 바랬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우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닌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굳게 신뢰하면서, 새로운 대통령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 나라를 잘 이끌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가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대통령 선거일을 맞이해서 사무엘상 말씀을 함께 상고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지도자에 따라 우리 피부에 닿는 다양한 변화들이 생기겠지만, 무엇보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잃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내도록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통치 아래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해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신 목적 – 내 백성을 위하여
– 내 백성 3회 반복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왕정 제도를 도입하기 위함이 아님.
왕정 제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 곧 “내 백성”을 위한 것임.
삼상 9: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삼상 9: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2. 이스라엘의 왕들은 과연 “왕이 될 상”이었는가?
1) 이스라엘 첫 번째 왕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1) 특징
① 준수한 소년
- 잘못된 번역. 젊은이 정도로 읽어야 함. 이 당시만 해도 사울에게는 이미 장성한 아들, 요나단이 있었음.
② 백성들 가운데 이보다 더 준수한 사람이 없음.
③ 키가 누구보다 큼.
- 고대에는 키나 용모가 남성다운 힘의 표지로 여겨졌음.
- 사무엘서의 저자는 이미 사울이 왕이 될 상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음. 그런데 이는 인간적인 생각에 근거한 것임.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앞서 살펴본 대로 왕이 될 상이어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내 백성을 위하여 세우신 것.
(2) 사울 왕의 실패 원인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번제를 드리는 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 받지만 사울은 처음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음. 사울이 암나귀를 잃어버려서 찾고 있을 때 어떻게 찾는가? 그의 종이 먼저 선견자에게 가서 물어보자고 제안함. 사울에게는 선견자에게 드릴 아무런 예물이 없었는데 그의 종이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다며 해결책을 제시함. 사울이 매사에 소극적이고 준비성이 모자란 부주의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음.
또한 사울은 사환 덕분에 사무엘을 만나게 되는데, 사울은 사무엘을 알아보지 못했음 사울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이 그가 선지자로 하나님께 세우심 받은 인물임을 알 정도로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이러한 사무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함. 삼상 9:18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온국민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이 사무엘을 바로 앞에 두고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알려달라는 모습. 영적인 부분에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음.
2) 이스라엘 두 번째 왕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1) 특징 – 삼상 16:12, 18, 17:42
(2) 실패 원인
3) 이스라엘 세 번째 왕 솔로몬은 어떤 사람인가?
(1) 특징
(2) 실패 원인
3. “왕이 될 상”은 그저 자기 소견에 불과한 것
- 각각의 실패 원인이 있으나 왕정제도가 세워지기 전에 이미 고지된 사실.
삼상 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삼상 12: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 왕은 어떤 특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다른 백성들과 함께 동일한 언약의 요구를 받음. 왕 역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 받는 것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수요기도회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부분을 좀 더 상고하기 위해서 다윗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인 다윗은 과연 왕이 될 상이었을까요?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무엘상 16장 6절 말씀 보세요. (화면)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기름 부을 대상을 찾으러 간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자마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사무엘의 눈에는 엘리압이 왕이 될 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7절 말씀 보십시오. (화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엘리압이 어떤 용모를 가지고 있었는지, 키는 또 얼마나 큰 지. 이런 내용이 등장하지 않지만, 7절 말씀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 역시 사람의 용모와 키를 보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무엘 선지자가 무슨 탐심을 품거나, 무슨 음욕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용모와 키를 보고 판단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죄는 아닙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라고 이새의 집으로 보내셔서 갔을 뿐이고, 이새 아들들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엘리압의 외모를 보니 누가 봐도 왕이 될 상이라면, 마음속으로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용모를 보고 왕이 될 상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죄는 아닙니다만, 영적인 판단력이 선지자라고 하더라도 흔들리거나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왕이 될 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기름 부음의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다윗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2절 말씀 보세요. (화면)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다윗의 생김새가 어떻습니까?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여기서 얼굴이 아름답다는 말은, 사울이 준수하다고 표현되었을 때 사용된 토브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사무엘서에서 총 세 번 나오는데 사무엘상에서만 세 번 나오는 것이고, 그 중의 두 번이 사울, 다른 한번이 다윗에게 사용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왕이 될 상이죠.
하지만 이런 다윗 역시 영적으로 큰 실패를 경험합니다. 밧세바와 간음하는 치명적인 악한 죄를 저질렀고, 이스라엘과 유다 인구를 조사함으로써 하나님께 전염병 심판을 받습니다. 그 결과로 7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또 시편에 나오는 여러 신앙고백이 담긴 말씀들을 보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신앙생활하기 위해 노력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윗조차 영적인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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