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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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 조찬 기도회
본문 : 잠 16:1-9
제목 : 걸음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 중에 평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평안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샬롬, 헬라어로는 “에이레네”라고 표현되는데요. 샬롬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에서 인사말로 사용되고 있고, 또 에이레네라는 말은 바울서신에서 사도 바울이 인사말로 자주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예컨대, 어디어디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런 식으로 문안 인사를 하죠. 이렇게 기독교 신앙에서 평안 또는 평강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평안함이 없다면,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러한 평안함은 우리가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낙천적이면서 긍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물질적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 주위 환경이 안정적이어서 걱정이 없는 사람, 또는 인생 살면서 큰 욕심 없이 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겉으로 볼 때 굉장히 평안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과 조건에 따른 평안함이나 개인적인 성향과 특성에 따른 평안함은 성경이 말하는 평안함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강조하는 이 평안함의 근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굳건하게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잠언 16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합니다. 물론 잠언 16장 말씀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주제들이 등장합니다만, 오늘 이 시간 잠언 16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성경적인 평안함을 어떻게 누리는 것이 합당한지 함께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잠언 16장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우리말 성경에서는 마음의 경영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히브리어 원어 뉘앙스를 살려서 읽으면 마음의 계획이라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잠언 기자는 1절 말씀에서 마음의 계획이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한다, 굳게 믿는다. 라는 개념 안에는 사람이 인생에서 계획과 목표를 자발적으로 세우고 살아가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런 계획 없이, 뚜렷한 목표 없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 살거나, 그저 편안하게 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크게 기대할 수 없으며, 성경적인 평안함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을 하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 먼저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또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삶의 계획을 지혜롭게 세우고자 노력합니다. 이것이 바로 잠언 16장 1절에서 말하는 마음의 계획인 것입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그 계획에 대해서 인생 가운데 역사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답을 정해놓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강요하는 신앙적인 오류를 범해선 안 됩니다. 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합당하고 또 정당하지만, 미래에 일어나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어떤 일을 할 때, 일반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지 않습니까? 그 계획을 세운 사람이 생각할 때, 이 일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무조건 좋은 일이고,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확신하더라도, 그 일에 대한 과정과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에서도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죠. 왜 그렇습니까.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들, 자신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인정받는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그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잠언 기자는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아멘. 3절 말씀도 원어의 뉘앙스를 살려서 읽으면, 너의 일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러면 너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열매를 맺어주신다는 믿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의 계획이 주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계획이 주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의도와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한다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계획대로 응답해주신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사람은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되,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획을 언제든지 바꾸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가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그 계획대로 진행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기도하느냐의 문제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일을 진행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저명한 구약학자인 트램퍼 롱맨은 잠언 16장 3절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 전체 삶의 행동을 하나님께 복종하여, 우리의 계획이 뒤틀리더라도 훨씬 더 깊은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 삶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사상은 우리의 계획이 성취되고 열매를 맺었을 때에도 열매 맺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트램퍼 롱맨의 해설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의 계획이 뒤틀리는 경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려는 계획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에 대해 나단 선지자는 곧바로 승인했지만, 그날 저녁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다윗이 성전 건축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언약을 맺어주시면서, 다윗의 혈통을 유다의 영원한 왕조로 확립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다윗은 자신의 나머지 생애 동안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준비하게 되죠. 이러한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쉽게 납득 되지는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함에 있어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이 다윗이라는 인물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또 다윗 시대에 블레셋이나 암몬과의 여러 전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다윗은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다른 나라들 간의 불안정했던 관계를 정리했으며, 크고 작은 전쟁들을 완전히 종식시켰습니다. 이 정도면 다윗이 성전 건축하는 데 있어서 완벽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 계획을 바꾸십니다.
또 두 번째 사례로는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 계획을 들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과 7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떠났을 때 아시아와 비두니아 지역을 선교하기로 계획하고 이동하던 중에,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계획을 막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직접 복음을 전하던 그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든지 복음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 코스를 바꿔버리십니다. 아시아를 가려고 하는 것을 막으시고, 또 비두니아에 가려고 하시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어디든 복음이 필요한 상황에서, 또 사도 바울이 깊이 고민하고 계획했던 지역을 하나님께서 가지 못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시거나, 계획을 변경시키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잠언 16장 9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요.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아멘.
잠언 16장 1절, 3절 말씀과 동일한 내용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만, 9절 말씀은 1절, 3절 말씀보다 훨씬 더 구체화 된 개념을 소개합니다. 1절에서는 계획을 사람이 세워도 그 계획의 응답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말했고, 3절에서는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면 계획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9절은 디테일한 부분을 느낄 수 있도록 말합니다. 사람이 길을 계획하더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걸음걸음마다 우리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으며, 그 손길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행동으로 옮깁니다. 우리의 생업이나 가족, 자녀를 교육하는 일, 그리고 교회에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다운 일들을 하기 위해 계획하고 행동하는 일들. 이 모든 것들이 계획에서 실행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이 우리의 계획과 실행에 어떻게 작용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획해야 하고 또 계획한 바에 대해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드리고 기도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 또한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성경적인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며,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평안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에 기댈 곳도 없습니다. 비빌 언덕이 없습니다. 뭐 학연 혈연 지연 같은 부분에서 도움받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평안함을 누릴 수가 없죠. 무조건 자기 힘으로 성공해야만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자기의 피땀흘리는 노력과 능력과 적절한 운이 따라줘야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차갑고 냉정합니까. 하지만 반대로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걸음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두려운 마음이 들 때에도 인도해 주시고, 자신있게 걸을 때에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부족함 때문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길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실패라는 쓴 열매를 맺어주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나 부유할 때나, 언제나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눈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우리의 계획을 주님께 맡겨 드리고, 우리의 걸음을 친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을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삶의 모든 여정과 과정 가운데 역사하여 주시고,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동행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날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앞으로 우리 삶에 동일하게 역사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굳건하게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이 코로나 사태와, 요동치는 세계정세와,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불안하고 힘들 수 있지만, 언제나 선한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걸음 걸음마다 동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만을 붙드며 평안함을 충만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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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1절
바) 마음의 계획은 사람에게 있어도...
인간이 정당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실제 일어나는 일과 관련된 결정된 요인임.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울 수 있지만 미래는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음.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열어둠.
“말의 응답, 혀의 응답”이 하나님께서 상황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결정을 내리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계획을 구체화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필요성을 가리키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1절의 목적은 사람의 계획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거나 좌절시키려는 것이 아님. 오히려 사람의 계획이 하나님의 협력 없이는 소용없게 될 것임을 인식하도록 하려는 것임.
2절 여호와는 동기(역주)를 감찰하시느니라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의 자기 인식은 여호와의 인식에 비추어 판단됨. 잠언은 우리의 의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속이는 우리 능력에 대해 말함.
3절
1-2절의 가르침과 일치함. 인간의 계획이 중요하더라도 궁극적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상기시킴.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 계획을 역전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모든 계획을 세워야함.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에게 우리 계획을 승낙하고 확립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님. 오히려 우리 전체 삶의 행동을 하나님께 복종하여, 사람의 계획이 뒤틀리더라도 훨씬 더 깊은 계획이 우리 삶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또한 이러한 사상은 우리의 계획이 성취되고, 열매를 맺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가 여전히 그 성공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성전을 지으려는 계획에 대해서 말했음. 나단은 곧 승인했지만, 그날 저녁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에게 성전 짓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전하라고 하심. 이때 하나님은 다윗의 혈통을 유다의 영원한 왕조로 확립하셨으며,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기리는 성전을 짓게 하심. 다윗은 자신의 나머지 생애를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데 보냄으로써 이에 반응했음.
4절
악인은 자신이 적절한 심판을 모면하지 못할 것이라 해석해야 함.
다른 해석 :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한 행동을 통제하며 그들의 악을 선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ex) 느부갓네살이 유다에 침입한 사건. 유다의 관점에서 이는 악한 날이며 성전의 거룩한 물건들을 상실하고, 사회의 “젊은 남자들”일부를 빼앗기는 결과를 맞이함. 바벨론의 관점에서 이 승리는 그들의 신이 주신 선물이었음. 그러나 다니엘서 저자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해줌.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단 1:2)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목적을 위해 만물을 사용하심. 악한 사람들과 그들의 악한 행위들 조차 선하게 사용하실 수 있음.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악을 만드신다고 볼 수는 없음. 하나님께서 악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악을 통제하시는 것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인간의 자율적인 행동을 사용하실 수 있음.
5절
1)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 6:16, 3:32; 11:20; 12:22; 15:8,9,26; 17:15
2) 반드시(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교만은 자아를 선동하고 비판을 듣지 못하게 하는 자기 방어에 이르게도 하는데, 비판은 지혜에 이르는 길의 필수적인 부분임.
8절
많은 소득 자체가 문제는 아님. 부자가 나쁜 것은 아님.
하지만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곧 의가 물질의 소유보다 더 중요함.
9절 – 16:1과 가장 유사함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라는 신학적 주제의 핵심.
요점은 인간이 계획할 수 있지만, 여호와가 그 계획을 그렇게 정하지 않는다면 계획이 효력을 발휘하지도 성공하지도 못한다는 것임. 이를 이해하면 인간의 교만이 줄어듦. 길은 삶의 여정을 가리킴. 길에서의 “걸음”은 여러 삶의 사건들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