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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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 기도회 말씀 나눔
본문 : 갈 5:16-26
제목 :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과 비교해 볼 때 굉장히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특징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배타적이며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선과 악, 영생과 죽음, 구원과 심판, 성령과 육체 등의 이분법적인 개념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 권사님들의 경우에는 선과 악, 영생과 죽음, 구원과 심판, 이런 내용들이 전혀 거부감들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실텐데요. 여기서 조금 더 레벨을 높여서 생각해 보면, 성령과 육체의 구분, 다시 말해 성령을 따르는 삶과 육체를 따르는 삶. 이 두 가지의 삶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 관계상 육체를 따르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 함께 상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갈라디아서 5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여기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을 직역하자면, 너희는 성령으로 걸어라. 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항상 성령과 함께 늘 걸어가라는 명령입니다. 예배드릴 때만 성령 충만해야 할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집에 있을 때에든지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든지 언제든지 성령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동기이자 표준이자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을 따라 걷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16절에 나와있는 대로, 육체의 욕심대로 살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성령 하나님을 따라 살아간다면, 육체의 욕구를 이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방금 말씀드린 이러한 내용은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원론적인 말씀만 읽으면, 그래서 도대체 성령을 따르는 삶이란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 또 육체를 따라 살지 않으려면 무엇을 경계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자,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9절부터 26절까지 성령과 육체에 관련된 실질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다룹니다.
5장 19절 20절 2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이라고 합니까?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또 그와 같은 것들. 이렇게 보니까 굉장히 많죠. 여기서 “또 그와 같은 것들”을 빼고 앞에 나열된 내용을 세 보면, 총 몇 가지입니까? 무려 열다섯 가지나 됩니다. 이렇게 열 다섯 가지의 내용이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다섯 가지의 육체의 일 중에서 우리에게 해당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 있을까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 제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세상적인 내용들은 우리 권사님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어떤 점들을 경계해야 할까요. 육체의 일, 여섯 가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째로 원수 맺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원수 맺는 것이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의 뉘앙스를 살려서 읽으면, 증오심, 적대감, 적의. 쉽게 표현하자면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육체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분쟁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말로 분쟁이라고 하면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불화, 다툼, 말싸움.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원어적인 의미를 좀 더 부여하자면, 자기중심적인 말다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떤 진취적인 목표를 두고 건설적이면서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견 나눔이나 토론이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시키고 자기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이런 말다툼을 의미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세 번째는 시기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질투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느끼시는 질투심과 똑같은 단어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품으시는 질투심과 우리가 공동체 내에서 지체들을 향해 질투심을 품는 것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은 우상 숭배 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죄악된 마음을 향해 품으시는 질투심이고 우리가 품는 질투심은 죄악된 본성에서 나오는 질투심이기 때문에 같은 단어이지만 전혀 다른 성향을 품고 있는 것이죠.
이어서 네 번째는 분냄을 경계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화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화내는 것은, 마음속으로 화가 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화가 아예 나지 않을 순 없겠죠. 속으로 화가 나더라도 감정을 억누르고 추스르고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화내는 것은, 속에서 화가 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것, 다른 누군가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화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다섯 번째는 당 짓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친한 사람들,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모아서 당을 짓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교류하지 않고 관계 맺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통칭합니다.
당을 짓는다는 말에서 당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서 나는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만, 몇 명이 모이든지 간에 우리 모임에 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편을 가르고 마음을 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무리 지어 행동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당을 짓는 행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분열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 중에 하나인데요.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분열”이라는 단어는 가장 주의해야 하는 영적인 질병입니다. 이는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한 몸으로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를 찢어지게 만듭니다. 분열이란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객관성을 유지하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기 위해 건전하게 사랑으로 권면하고 발전하는 과정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러한 분열에 휩쓸리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하고, 또한 자신이 하는 행동이 분열을 초래하는 행동이 될 수 있으니, 언행을 삼가 주의하며 살아가는 그런 배려 깊은 세심함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권사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 육체를 따르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육체의 일에는 열다섯 가지나 되는 굉장히 많은 종류가 있지만, 특별히 이 시간 우리는 공동체와 관련된 여섯 가지의 육체의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심,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러한 것들은 교회 공동체를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기형적인 구조로 왜곡시킵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아홉가지의 육체의 일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죠.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 이런 것들은 눈에 잘 보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아주 아주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 말다툼, 질투심, 다른 사람에게 화내고 말로 상처 주는 행위, 당 짓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위. 이런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이 정도의 트러블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 내용을 나머지 더러운 아홉 가지 내용과 구분짓지 않습니다. 하나의 울타리 안에 열 다섯 가지의 내용을 다 넣어놓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이 더 더럽고, 덜 더러운지. 어떤 것이 더 나쁘고 덜 나쁜지, 구분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똑같이 나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을 보면, 우상숭배가 가장 나빠. 혹은 이단이 가장 나빠. 방탕한 것이 가장 나빠.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 똑같습니다. 술 마시는 데 열심을 내는 사람이나 교회에서 당 짓고 자기와 친한 사람하고만 관계 맺고 그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권사님들, 이러한 여섯 가지의 육체의 일은 누가 담임목사로 오느냐. 주일에 어떤 말씀을 듣느냐. 이러한 것들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 누군가와 말다툼하는 것, 타인을 질투하는 것, 화내면서 상처주는 말을 내뱉는 것, 당을 지어서 끼리끼리 생활하는 것,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악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훌륭한 설교가의 심금을 울리는 은혜로운 설교 말씀을 듣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권사님들, 누구보다 우리 화평교회를 사랑하시고, 또 화평교회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아시고, 그 역사를 이어가고 계신 우리 권사님들, 과연 우리 화평교회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 화평교회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입니까? 혹시 나 자신은 오늘 함께 나눈 말씀 중에 이 여섯 가지의 육체의 일을 지속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연 우리는 화평교회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새로운 담임목사님이 오실텐데, 우리 공동체의 성격은 담임목사님이 누가 오시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 지체들이 얼마나 성령 하나님을 따르며 살아가는지, 육체의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몸부림치고 노력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육체의 일을 따르지 않고,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따르며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시는 모든 권사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갈라디아서 말씀 가운데, 우리에게 해당되는 육체의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상고케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신앙의 연수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욱더 깊은 믿음과 신앙인의 품격이 우리 안에 넘쳐 흐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화평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셔서 훌륭한 담임목사님을 보내주실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담임목사님이 오시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가 영적으로 선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말씀대로 스스로 노력하며 변화할 수 있도록 새롭게 결단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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