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6주일예배_암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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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을 극복하는 방법

아모스 8:11-12
Amos 8:11–12 NKRV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오늘은 굶주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슨 굶주림이냐 하는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하지만 풍요로워 보이는 세상 속에서 왜 이리도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오늘 예언자 아모스의 말씀은 그 내용이 매우 분명합니다. 밥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주리고 목마른 ‘말씀의 기근’을 선포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선포된 역사적 상황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늘 이 말씀을 선포한 최초의 문서 예언자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경제적 번영기였습니다. 엘리야가 활동했던 당시 오므리왕조는 그 명을 다하여 사라지고, 이스라엘을 쇄신할 왕조로 예후왕조가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왕조 역시 전 왕조의 길을 답습하였습니다. 주전 8세기 여로보암2세가 통치하던 시절 북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을 누린 시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최고의 절정에 다다른 시기로, 통치자들과 권세가들은 ‘모든 것이 잘 되어 간다’고 하던 시절입니다. 거짓 예언자 아마지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소위 ‘예언자’라 자칭하던 사람들까지 권세가들과 더불어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다’면서 꿍짝을 맞추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그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 그 번영의 혜택을 누린 지도자들이 향락에 빠져 있던 시절, 하나님께서는 시골 농부 아모스를 불러 자신의 뜻을 선포하십니다. 8장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환상을 보여줍니다.
Amos 8:1–3 NKRV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은 ‘다 익은 과일 바구니’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와 같은 상태에 이르렀으니 이제 어찌할 도리 없이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온갖 속임수와 못된 짓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힌 세도가들을 질책하며, 이어 오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기근’,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 이 말씀은 사람은 빵 곧 물질적 조건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인간의 삶이 무가치해지고, 그것은 결국 죽음과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그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의 기근’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침묵’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는 상황입니다.
이 침묵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깊은 명상에 들어가, 우리 인간들더러 자신의 뜻을 깨달으라고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조차 아예 부르지 않는 상황도 아닙니다. 아예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는 상태라면, 하나님의 침묵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데 여기서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에서 동으로 찾아 헤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애쓰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모스서를 들여다 볼 것 같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가운데 ‘종교적 생활’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꼬박꼬박 지켜야 할 절기들을 잘 지켰고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이 ‘익은 과일’처럼 정점에 이르러 이제 더 이상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마침내 하나님 말씀의 기근을 맞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종교적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순례절이 싫어 얼굴을 돌리고, 축제때마다 바치는 분향 냄새를 역겹게 여기고, 제물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노랫소리와 악기 소리마저 귀찮게 여기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인간들의 상황에 기가 막혀 말문을 닫아 버린 상황입니다. 결국 오늘 아모스가 전하는 상황은, 물질적으로도 축복을 받고 종교적 신앙생활도 별 문제 없이 할 바를 다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을 때에는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요?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종교도 번성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공의는 사라진 상황입니다. 대개 물질적으로 빈곤할 때 종교가 부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반면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종교가 쇠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풍요로운 서구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드물게는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동시에 종교가 성하는 사회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가 아닐까요?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특수한 사회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인지 따져보아야겠지만, 적어도 오늘 우리 사회는 그런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물론 고대사회와 오늘의 사회를 직접 대비시킬 수는 없지만, 아모스가 말하고 있는 상황은 오늘 우리 상황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문제는 전사회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구가하고 있고 종교 또한 성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가장 닮았습니다. 종교인이 많아도, 기독교인이 많아도 그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에는 어떤 변화가 없는 사회입니다. 그것은 그 사회의 종교가, 그 사회의 기독교가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에 그대로 영합할 뿐 하나님의 말씀 곧 사회적 공의를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 상황 가운데서 사람들은 늘 허덕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삶의 보람을 맛볼 수 없어 늘 주리고 늘 목마릅니다. 물질적 성공도 사회적 출세도 그 주림과 목마름을 충족시켜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허울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로 포장되어 있는 기대와 희망이 세상의 기대와 희망과 다르지 않을 때 신앙은 위기에 빠집니다.
짜여진 세상의 질서 안에서 자기만의 자리에 매몰되어 세상의 기대와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면 신앙생활은 실질적으로 무력해집니다. 아무리 겉으로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삶의 보람과 의미는 찾아지지 않습니다. 이 때 신앙생활은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삶의 위기와 절망을 감추려는 몸짓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말씀의 기근은 우리에게 그렇게 경험됩니다. 그러나 예언자 아모스가 그 참담한 상황을 선포한 것은 저주를 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언자 아모스는 절망적인 상황을 선포하면서도 긍정적인 어조를 놓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현실을 주목합니다. 그렇게 갈망하면서도 찾지 못해 안타깝지만, 그 안타까운 현실을 사람들 스스로 절감할 때 전환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절감하고 있듯이 세상은 항상 그렇게 모순 아닙니까? 마침내 아모스는 장차 회복될 하나님의 백성의 미래 현실을 선포합니다. 아모스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 때가 되면, 농부는 곡식을 거두고서, 곧바로 땅을 갈아야 하고, 씨를 뿌리고서, 곧바로 포도를 밟아야 할 것이다. 산마다 단 포도주가 흘러 나와서 모든 언덕에 흘러 넘칠 것이다. 내가, 사로잡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데려오겠다. 그들이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워, 그 안에서 살면서 포도원을 가꾸어서 저희가 짠 포도주를 마시며, 과수원을 만들어서 저희가 가꾼 과일을 먹을 것이다. 내가 이 백성을 그들이 살아갈 땅에 심어서, 내가 그들에게 준 이 땅에서 다시는 뿌리가 뽑히지 않게 하겠다.” 말씀의 기근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게 되는 것은 물질적이고 일상적인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짜는 것을 뜻합니다. 말씀의 기근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불리 먹고 마시게 되는 것은 물질적ㆍ육체적인 삶은 어떻든 상관없고 영적으로만 고상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 자체가 변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내 땅에서 내가 흘린 땀의 결과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삶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삶의 주림과 목마름을 해결해 줍니다. 진정한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해 줍니다. 주리고 목마른 삶의 한복판에서 그 희망을 간직하기 바랍니다. 자기 땀의 결과를 제대로 누릴 수도 없고,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도 없어 마치 자기 땅에서조차 유배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현실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함으로써 그 희망을 간직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물질만능주의, 시장만능주의가 날로 기승을 부려 우리의 자녀들의 세대에는 더 각박해질 것 같은 불안감과 절망감을 떨치기 어려운 이 현실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함으로써 그 불안감과 절망감을 이겨낼 지혜를 찾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 우리의 공동체는 그 말씀의 지혜로 진정한 위로를 얻고 진정한 희망을 바라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시원한 하나님의 말씀의 물줄기로 삶의 생기를 얻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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