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am Deo(주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이 상황을 허락하셨음을 믿으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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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론

1.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 요셉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아버지 야곱의 가장 사랑스러운 아들에서 모기 목숨보다 더 가벼운 존재인 종으로 추락해버렸습니다. 이런 비참한 일을 겪은 요셉은 분명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그의 형제들을 원망하고 욕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절망스러운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종으로 산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성실히 일했습니다. 부모님의 이쁨을 받으며 손에 물 한번 묻혀보지 않고 자랐을 것만 같은 요셉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종으로 사준 보디발에게 감사하며 그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4절을 보면 그는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종으로 사준 보디발에게 감사하며, 그의 자리에서 성실히 일했고, 그 모습이 주인에게 기쁨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그가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안보는 것 같아 보여도, 주인 보디발은 그를 다 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종들을 통해서 그에 대해 듣거나, 또는 자신이 지나가면서 직접 요셉을 보았고 이를 통해 요셉의 성실함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과 그분이 요셉의 삶을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을 말단 노예에서 가정의 살림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의 자리로 승진시킵니다. 마치 일개 말단 알바생에서 매장을 관리하는 매니저의 위치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이 생긴 것이지요. 이는 주인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올라갈 수 없는 자리이죠.
이제 요셉의 삶에 불행한 일들도 다 지나가고 평화롭고 행복한 일들만 펼쳐질까 생각했지만 이런 감사한 삶도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라헬을 닮아 용모가 아름다웠던 요셉은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든 것 같습니다. 요셉은 마치 젊은 시절의 저처럼 가만히 있어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매력적인 남자였던 것 같습니다. 요셉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던 여성 중 한명이었던 보디발의 아내는 어느날 그에게 눈짓을 하며 유혹합니다. 요셉은 시그널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그녀 혼자 막 시그널을 보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녀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8-9절을 함께 보실까요?
Genesis 39:8–9 NKRV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주인의 아내에게 ‘보디발이 제게 집의 모든 것을 관리하도록 하셨지만, 딱 하나 금지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저는 결코 당신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이의 아내를 간음한다면 제가 믿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라고 칼같이 선을 긋습니다. 아주 멋있는 남자죠. 우리 자매들은 요셉같이 순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길 바랍니다. 우리 형제들도 요셉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결을 지키는 멋있는 남자가 되길 바랍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고 계시고,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결코 주인의 아내를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아내는 10절에서 기록된 것처럼 날마다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녀와 함께 있는 자리까지 피하며 죄를 짓지 않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순결을 지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요셉은 정말 엄청난 매력을 가진 남자였으며, 그의 믿음까지 굳건히 지키는 신실한 사내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멋있죠.
그러던 어느날 주인의 아내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오늘만큼은 요셉을 꼭 유혹해버리겠다’고 말입니다. 요셉은 다른 날과 동일하게 주인의 집에 일을 하러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정말 누가 계획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개미 한마리도 없었았습니다. 11절을 보면, 그 집 종들이나 가족들이 하나도 거기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혼자 덩그러니 있는 요셉에게 주인의 아내는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요셉이 도망가지 못하게 그의 옷을 꽉 붙잡으며 그를 유혹합니다. 얼마나 세게 잡고 있었을까요? 이번에는 강직한 요셉이라 할지라도 감히 쉽게 뿌리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12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녀가 잡고 있던 자신의 옷을 내버려두고 나가버립니다. 정말 대단하죠? 그 당시에는 통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을 버려두고 나갔다면 속옷차림으로 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순간의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주인의 아내는 이 상황이 얼마나 허탈하고 수치스러웠을까요? ‘종 놈 주제에 감히 주인인 나를 거부해?’ 이런 생각이 들며 분노가 차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손이 남겨진 요셉의 옷을 옆에 두고 종들을 부릅니다. 그리고는 일장 연설을 합니다. 14-15절을 보시면 그녀는 그런 부끄럽고 무서운 일을 당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이 방금전 당한 일들을 너무나 차분하게 자세히 설명합니다.
Genesis 39:14–15 NKRV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녀는 꼴보기 싫었을 요셉의 옷을 증거물로 고이 간직해두고는 남편인 보디발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당신이 데려온 종 녀석이 나를 희롱했다 이걸봐라 여기 그의 옷이 있다’고 고발합니다. 이 말을 들은 요셉의 주인 보디발은 매우 분노하고는 요셉을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억울할까요? 울고싶고 화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볼 사실은 그의 주인 보디발이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 법으로는 결혼한 남자나 여자와 간음하거나, 강간을 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을 곧바로 죽일 수 있는 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요셉을 그러지 않았습니다. 또 재밋는 것은 보디발이 누구에게 화를 낸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19절을 함께 보실까요?
Genesis 39:19 NKRV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성경 기록자는 주인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듣고 화가 잔뜩 났는데 누구때문에 그토록 화가 났는지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뒤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보냅니다. 주인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우리는 요셉을 신임했던 주인은 과연 요셉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아내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진 않았을까 라고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간을 벌고자 요셉을 우선 감옥에 넣어 살려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요셉은 그곳에서도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마음이 들고 절망했겠지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주저앉아 있지 않고 다시 그곳에서 성실히 생활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으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생활했고, 감옥을 지키는 간수장의 눈에 들어 감옥 행정 관리 역할을 맡게 됩니다. 간수장이 요셉을 얼마나 신뢰했는지 23절을 보면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조건 오케이하며 넘겼습니다.
Genesis 39:23 NKRV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곳에서도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하며 범사에 은혜를 누렸습니다.

2. 하나님과 함께 한 요셉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이런 질문이 듭니다. ‘요셉은 어떻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믿을 수 있었을까?’
요셉은 야곱에게 사랑받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형들이 양을 치러 나갔을 때에도 아버지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는 동안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할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마치 추석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무용담처럼 하시는 이야기들 마냥 놀라운 ‘라떼 이야기’를 그렇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나와도 함께 하시겠구나라는 사실을 믿었을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요셉이 그의 주인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21절에도 감옥에 갇혔던 요셉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요셉도 그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그가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에도, 종으로 팔려온 보디발의 집에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갇히게 된 감옥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을 주셨는지를 고민하고 이런 상황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음을 믿으며 행동했습니다. 과거 그가 꾼 꿈처럼 형제들이 자신에게 경배하는 꿈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실 것을 믿으며 지금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며, 맡겨진 일들을 정직하고 성실히 해냈습니다. 이로인해 그는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받아 가정 총무의 일을 맡게 되었고, 감옥에서는 행정관리의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인이라는 단어가 총 8번 등장합니다. 이는 기록자의 의도적인 기록으로써, 보디발이나 보디발의 아내라고 기록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보디발을 ‘요셉의 주인’, ‘그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를 ‘그의 주인의 아내’라고 표현하며 ‘주인’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였습니다.
요셉은 그의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종으로 팔려가고,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는 등 어려운 일을 당하지만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지켜주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결코 헛되이 보내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뜻안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자기에게 찾아온 일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냈으며, 그에게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진실되게 맞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그의 주인을 열심으로 섬겨 그에게 은혜를 입었고, 감옥에서도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진정한 주인을 알았던 요셉은 그의 삶에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정직하게 대했고, 권위에 있어서도 순종했습니다. 가정총무로 승진을 하며 집 안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자격을 얻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 아님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주인의 것을 탐내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거듭되는 주인의 아내의 유혹 또한 뿌리치며 순결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자, 보디발의 종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그의 앞에 있다.

1)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믿으며 청지기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정직하게 살아가자

우리도 요셉과 같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의 삶을 인도하시고 지키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 또한 지키실 것입니다. 오늘 부모님들께 가서 여쭤보십시오. ‘아빠, 엄마, 하나님이 우리 집을 어떻게 지켜주셨어? 하나님이 우리 집에 베풀어주신 은혜는 뭐야?’ 이런 질문을 한다면 장담컨대 잠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들께는 적어도 한시간이 넘을 분량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안다니신다면, 오늘 공과 모임때 담당선생님께 여쭤보십시오. 시간이 짧다면 주중에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밥이나 음료를 마시면서 물어보십시오. 밥도 얻어먹고, 커피도 얻어 마시며 시원한 카페에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성경을 통해서 그 일들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일들, 이삭에게 하셨던 일들, 야곱과, 요셉, 모세, 다윗에게 하셨던 일들, 그리고 가까이는 베드로에게 하셨던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말 보잘 것없는 자들에게 너무나도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와는 왜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거룩한 영이신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셔서 언제나 그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Matthew 28:20 NKRV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모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 선생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인생을 구원해주시고, 택해주시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시고, 당신의 소유된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당신이 우리의 삶에 주인되시며 구원자 되심을 믿길 원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 당신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며 우리 삶을 인도해주신다는 사실을 믿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헛투루 보내길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주인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청지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일을 해내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긴 주인처럼 우리에게 당신의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달란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당신을 위해, 당신을 예배하기 위해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담에게 경작하라는 말은 예배하라는 말과 동일하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죠.
사람의 인생에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과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달란트를 주시며 이 달란트를 잘 관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시간들 속에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며 당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고 영광돌리길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은 이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내팽게 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관리해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차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이라는 달란트에 은혜가 더 풍성해지길 원하셨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따라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 모든 종들은 달란트를 잘 가꿀 능력이 있었습니다.주인이 맡긴 달란트로 장사를 하거나,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면서 잘 관리하는 것은 종들의 책임입니다. 자신이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주인의 뜻을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주인을 섬기고 있는 종이며, 청지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이 청지기임을 기억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자의 모습은 어떨까요? 이런 삶의 모습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코람 데오’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라는 뜻의 이 라틴어 문장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신다. 내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창조의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우선은 우리의 삶이 정직하고 성실할 것입니다.

(1) 정직과 성실

일을 전혀 몰랐을 요셉이 주인 보디발과 감옥의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자기의 일을 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었을 것입니다. 속이거나 꼼수를 부리지 않고 결과만을 중시하며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노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 성적을 잘받고 뭔가 시선을 잘 끄는 친구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아 인기가 많지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늘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그런 인기쟁이들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또한 여러분의 자리에게 정직하고 성실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주인임을 믿으며 그 하나님 앞에 서있음을 믿으며 여러분에게 맡기신 삶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십시오. 거짓으로 남을 속이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Colossians 3:23 (NKRV)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요셉의 인생은 이 말씀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하듯하였습니다. 수련회때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인 그 청년 바보 의사의 주인공 안수현씨의 삶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환자를 예수님으로 바라보며, 그 환자를 대했던 그의 삶처럼 여러분 또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이 있음을 믿으며 또한 우리에게 날마다 매시간 매순간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코람데오의 삶을 살며 맡겨진 일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성실히 해내시길 바랍니다.
이런 삶은 고통스럽고 비참해질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결과 중심적인 시대에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삶은 남들에게 뒤쳐지는 방식입니다. 이런 삶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멋없어보이고, 잘못하고 있는 것만 같고,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시며,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하는 삶, 정직히 진실되게 살아가는 삶을 하나님을 결코 모른채 하지 않으십니다. 요셉을 지켜보고 그를 가정 총무로 세웠던 보디발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비참의 자리에서 존귀한 자리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 자리를 역전시키셔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정직과 성실의 자리에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보디발에게 팔리게 하셨고, 그곳에서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게 하셨지만 그 감옥에서 왕의 신하들을 만나게 하셨고 그들을 통해 감옥에서 풀려나 애굽의 왕을 만나 그의 꿈을 해석해줘서 나라의 총무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존귀한 아들의 위치에서 종의 자리로 떨어지고, 거기서 죄수라는 더 비참한 자리로 떨어졌을 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삶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애굽을 다스리는 청지기로 세우셔서 그의 삶을 통해 그의 형제들에게 존경을 받고 형제들을 넘어 애굽 사람들과 이방 민족들에게 복을 주는 삶으로 이끄셨습니다. 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이 우리 삶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은 존귀하게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이 마무리될 때 확실히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벌을 뛰어넘을 자들입니다. 죽음이라는 벌을 뛰어넘고 영원이라는 상을 받을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온갖 복을 받으며 명예를 얻고 재산을 많이 쌓은 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비참한 죽음에 떨어지겠지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고 함께 살 것입니다.
너무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복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이것을 유업, 유산, 재산이라고 말하고 있죠. 베드로전서 1장 3-4절을 읽어볼까요?
1 Peter 1:3–4 (NKRV)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유산은 이미 우리의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직접 허락되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자 자녀인 우리는 아버지께 분명한 유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굳건하게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순결함

두번째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모습은 순결합니다. 순결함이란, 하나님께서 금한 것을 지키는 자세입니다. 요셉이 주인의 아내를 탐내는 것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임을 믿으며 행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또한 하나님께서 금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적인 순결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요즘 시대는 성적 순결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유치하고 얼빠진 것으로 치부합니까? 반대로 성적으로 문란한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녀가 결혼전에 관계를 갖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적인 순결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졌습니다. 혼전관계는 누구나 다 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몸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천연기념물이라고 놀리기 까지 하죠. 사귀기 전에 먼저 관계를 갖고 난 뒤,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발견합니다.
청소년기에 성적인 호기심은 불타오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을 실행에 옮긴다면 우리 인생은 가파른 낭떨어지로 추락할 것입니다. 남녀간의 관계는 타오르면 불과 같아서 같이 있으면 같이 있을 수록 더 뜨겁게 타오릅니다. 스킨십을 절제하지 못하고 점점 더 강도가 진해지죠. 처음엔 손 잡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졌는데, 포옹을 하고, 뽀뽀를 하고, 키스, 그리고는 더 진해져서 서로 관계를 가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생각에 사랑이 더 뜨거워질거라 생각하지만, 너무나도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버린 관계에는 이제 더이상 흥미가 없습니다. 이제 다른 사랑을 찾아나섭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또다시 관계를 갖고 헤어지고 이렇게 계속 문란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신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이성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도 성적인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혼전에 다분한 관계는 누군가와 결혼을 한 뒤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혼전에 많은 이성과 관계를 가진 사람은 법적으로 묶인 서로간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부부의 세계처럼 불륜을 저지르는 행동이 서슴치 않습니다. 그래서 혼외 자식이 생기고, 너무나도 쉽게 이혼을 합니다. 막장드라마가 멀리 있는게 아닙니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런 결과들은 모두 일반화할 수 없지만 혼전에 행한 문란한 관계때문에 일어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수련회 때도 나눴던 것처럼 하나님은 남녀의 관계를 가벼운 연인 관계만 맺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그들을 가리켜 부부라고 부르셨습니다. 결혼이 남녀 관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그들이 지향해야 할 모습입니다. 이 가정을 교회라 부르시며, 작은 교회인 가정 안에서 부부가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가길 원하십니다.
이렇듯 결혼 전의 남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위해 서로의 순결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우리 삶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여러분이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간음, 성적 문란함을 이겨낼 힘은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놓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동체를 통해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남녀관계 안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짓는 음란함 또한 피해야 합니다. 인스타나 유튜브 숏츠를 보면 너무나도 쉽게 음란한 영상들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 영상들에 무분별하게 접합니다. 너무나도 가볍게 즐깁니다. 우리는 그것에 저항할 세도 없이 빠져듭니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우리는 순결을 지켜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음란함을 피해야합니다. 요셉과 같이 도망쳐야 합니다.
저는 성경공부하면서 자주 아이들에게 제 연약함을 토로했습니다. 또 수련회때 제 연약함을 나눴죠. 제 연약함은 음란함입니다. 문란하고 방탕했던 제 과거를 나눴지요. 저는 요즘에도 종종 아내에게 저의 연약함에 대해 나누며 기도를 요청합니다.
영적인 순결은 혼자서 지킬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해야합니다. 가장 가까이는 가족이며, 다음으로는 교회가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간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며, 각자가 가진 연약함을 이겨내기 위해 그 점을 나누고 함께 기도해주는 공동체는 죄로부터 도망칠 힘을 줍니다. 그 죄를 피하고 이길 수 있게 합니다. 각자를, 그 공동체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다락방기도회와 주중기도회는 너무나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 기도의 시간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더 하나님 앞에 살고자 하는 열심을 가지고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며, 다른 친구들의 연약함을 놀리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나도 그렇다, 나도 그렇다’ 함께 회개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공동체가 믿음에 굳게 설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더욱 순결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올수록 죄악은 더 커질 것입니다. 음란한 문화가 더욱 판을 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신앙을 떠나게 하거나, 교회에 나오지만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 걸친 삶을 살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우리 마음을 드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런 문화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믿는 것이며, 그 말씀을 토대로 우리가 더욱 이 믿음을 지킬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위에 은혜를 더하셔서 순결이 사라지고 음란함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결을 지키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자녀들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마무리: 코람데오

요셉의 삶을 돌아봅시다. 하나님과 함께한 요셉, 하나님 앞에 살아간 요셉,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살아간 요셉, 그의 자리에서 정직과 성실, 순결을 지킨 요셉.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갑시다. 코람데오 하나님, 제가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합니다. 이 믿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믿으며 이 믿음을 더 굳건히 지킬 수 있도록 서로의 연약함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 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시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시다.

마침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있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늘 믿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서 늘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리고 더욱더 순결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는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세요.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요셉과 같이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높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찬양: 예배 합니다)

1) 결과 중심적인 시대 속에서, 그리고 음란한 시대 속에서 믿음을 지킬 힘은 ‘내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내가 매순간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게 하소서.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임을 믿으며 그 상황 속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순결하게 살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2)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코람데오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더욱 사랑이 풍성해서 서로의 연약함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수련회때, 그리고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 고등부가 사랑이 더욱 넘치는 고등부 되게 하소서, 기도가 넘치는 고등부 되게 하소서, 서로를 향한 섬김이 넘치는 고등부 되게하소서’ 그래서 이 공동체를 통해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는 고등부 되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늘 기억하게 해주세요. 요셉과 같이 우리가 처한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시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맡겨진 일들을 행하게 해주세요.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기 원합니다. 결과 중심적인 시대 속에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은혜를 부어주셔서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형통함을 누리게 해주세요.
또한 이 시대의 음란함 가운데서 영적인 순결을 지키는 우리되게 해주세요. 요셉과 같이 음란함을 피하고 승리하는 믿음을 주시고, 음란함 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순결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을 주세요.
각자의 연약함을 놓고 기도하는 고등부 되게 해주세요.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파송식 축복기도

예안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이 이제 중국으로 떠납니다.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이 딸이 그곳에서 다시 잘 적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과 함꼐,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지키며 정직하고 성실하고 순결하게 생활하게 해주세요. 요셉과 같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는 귀한 딸이 되게 해주세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주님께서 이 딸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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