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계속 행하라(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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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서 행하라(골로새서 2:6, 7)
<서론>
<opening image 참새 쫓기> 여러분은 이 그림을 어떻게 읽으시나요? 저는 좀 불편(엄청)합니다.
농사는 철에 맞춰 일을 합니다. 여름이 끝나가는 때부터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벼이삭이 피고 여물기 시작하는 논에서, 아직 설익은 벼이삭을 빨아 먹는 참새들을 쫓는 일입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입니다. 아직은 무더운 여름, 친구들과 물놀이 약속을 하고, 책가방을 마루에 집어던지고, 신나게 개울로 향하는 저에게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뱅~기야! 오~디 가는 겨~ 새 쫓으러 가야지!’하~~ 좌절입니다. 깡통 하나와 막대기를 쥐어주시며 ‘삼춘들 올 때까지만 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결코 진짜도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삼춘들은 한 번도 할머님의 말대로 논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터덜터덜 논으로 향하는 제 마음은 갈등으로 흔들립니다. ‘삼춘들처럼 내 빼서 지금 신나게 놀 것이냐?, 아니면 새를 쫓아서 오늘밤 혼나지 않을 것이냐?’
그러나 저는 매번 내빼지 못하고 논을 지키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기질적으로 겁이 많아서 ‘이름말 잘 듣고 편안한 것’을 매번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쫓을 때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참새 떼와의 전쟁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깡통을 두드리고 뛰어다니면서 ‘훠~이 훠~이’소리 지르는 것은 무의미하게 보이고 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너무 소리 질러서 아픈 목을 물 한 모금으로 달래고, 농로 중간에 있는 수문구조물 그늘에서 쉰다는 것이 해가 지도록 잠들었습니다.
먼발치에서 깡통 두드리는 소리와 손자의 새 쫒는 목소리가 멈추자, 걱정하신 할머님이 곧바로 내달려 오셔서 ‘왜? 해 저물었는디 집이 안 오고 이러고 있는 겨~’하시며 대릴러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삶의 자리를 성실하게 계속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반복되는 일로 지루해 지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어야 개인 가정 사업 직장이 굳건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6절도, 우리들에게 성실하게 ‘예수 안에서 계속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행하라” ‘περιπατέω ’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지금 계속 살라’는 명령형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와 주로 영접한 성도는, 삶 가운데 닥쳐오는 여러 도전과 유혹 가운데에서도 ‘ 예수 안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명령입니다.
‘「한두 번」 예수 안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7절은 ‘예수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말씀합니다.
「예수 안에서 행하는 성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살피며 은혜 받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예수 안에 터 잡고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7a).
성도가 예수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삶의 모습, 첫 번째로‘예수 안에 터 잡고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7a)
‘뿌리를 박는다’는 것은, ‘뿌리를 내린다’는 의미로서, 식물이 자라고 열매 맺기 위해서 반드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세움을 입는다’는 것은, ‘터전을 잡는다’는 의미로서,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종자라고 해도 어디에 뿌리 내리냐에 따라, 성장과 수확이 전혀 달라집니다.
그래서 6절 초반부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터 잡고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라’
벼는 반드시 물을 충분히 댈 수 있는 논에 심어야 하지만, 밀과 보리는 비교적 건조한 밭에 심어야 잘 자랍니다.
그러나 벼와 밀 보리를 반대로 심는다면 문제가 됩니다. 벼는 싹은 틔우겠지만 뿌리가 충분히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고, 밀과 보리는 틔운 싹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썩어 없어집니다.
식물이 제대로 된 터를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토양에서는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결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성도가 뿌리 내려야 하는 밭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재능이 아무리 탁월할지라도,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 외의 다른 것에 뿌리를 내린다면 우리는 인생 농사를 잘못 짓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그럴싸한 싹을 틔우고 화려한 꽃을 피우며 빛 좋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처 익기도 전에 떨어지거나 먹을 게 하나 없는 빈 쭉정이나 사람이 먹지 않는 싸래기를 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네 가지 밭; 「길가 돌짝밭 가시밭 좋은땅」이 예입니다.
「좋은 땅」은 ‘작물이 잘 자라는 기름진 땅’입니다. 성경이 쓰여지던 2000여 년 전 가나안 경작지에서는, 평균적으로 10배의 수확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100배 60배 30배의 결실 맺는다’(마13:8)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예수의 터에 뿌리 내리는 것을, 소위 성공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세의 복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린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다 잘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예수를 잘 따라가기 때문에 현실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예수의 터에 뿌리를 내린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참되고 확실한 열매를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리적 성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뿌리를 내려 예수의 희생과 사랑의 자양분을 공급 받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요 15:2-4).
든든한 터 위에 집을 세워야 거친 비바람이 불고 큰 홍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습니다(마 7:24-27).
반석 되시는 예수 위에, 삶의 집이 세워져야,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성도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무엇 위에 우리 자신을,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세우려고 가진 애를 다 쓰고 있습니까?
나의 재산, 나의 지식, 내 지혜 재능 경험 위에, 나의 인간적인 관계들 위에 우리 자신을 세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삼고,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자신을 다시 그리스도 위에 터잡고 뿌리 내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의 성품을 소유하고, 예수님의 삶을 닮아 예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예수 안에 터 잡고 뿌리 내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성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예수 안에 우리 자신을 세워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7b).
성도가 예수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삶의 모습 두 번째 방법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6)는 것은 ‘예수를 주로 영접하여 믿음을 소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내 감정과 지식과 의지 그리고 내 모든 사고와 행동의 주인으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주인 아래 있는 종처럼, 「주인이신 예수께서 ‘가라’고 명하시면 언제든지 출발하고, ‘서라’고 명하시면 언제든지 멈춰 서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상관아래 있는 부하처럼,「대장이신 예수께서 ‘하라’고 명하시는 일에 죽도록 충성을 다하고, 열심히 하던 일도 예수께서 ‘그만두라’고 명하시면 미련 없이 그만 두겠다」고 작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절 중 반절은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7b)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믿음을 굳건히 하라’는 의미입니다.
‘굳게 서다’라는 말은 법정 용어로서, ‘자기의 주장을 더욱 확실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25년 전 한번 법정에 선 일이 있었습니다. 신혼집에 도둑이 들어서 축의금으로 받은 현금과 수표를 도난당했는데, 수표 일련번호를 추적하여 분실신고하여, 6개월 뒤에 약식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님이 ‘당신은 OO년 O월 O일, 명기된 금액의 수표를 도난당한 사실이 있습니까?’물었습니다.
‘예! 그날 제 집 O0에 넣어두었던 수표 00를 도난당했습니다.’라고 답하자, ‘OO은행수표 일련번호 OOOO의 금액이 김병기씨의 소유임을 확인해 드립니다.’는 판결을 내려 주었습니다.
법정에서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삶의 모든 자리에서 ‘믿음의 주장; 성도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굳건히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여 믿음에 더욱 굳게 선다는 것은, 거짓 교사들(영지주의자 율법주의자 이단사이비 유사종교)의 어리석은 가르침을 거절하고, 오직 예수 밖에는 구원의 방법이 없으며, 예수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으로, 예수에게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히브리서의 고백처럼,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그러므로 귀만 시원하고 즐겁게 해주는 엉뚱한 가르침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행동을 좀 자유롭게 혹은 방종하게 해 주는 가벼운 가르침들에 농락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복음 외에 또 다른 것에도 살 길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속임수에 절대로 속지 않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이 시도하는 영적인 ‘보이스 피싱’에 넘어가는 안 됩니다.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과 성경적 건강한 교리 외에 또 다른 것들을 덧붙이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예수만이 나의 주인이라는 확실한 영적 정체성 가운데, ‘오직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믿음을 굳건히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넘쳐나게 해야 합니다(7c).
성도가 예수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넘쳐나게 하는 것’입니다.
7절 하반 절에서 바울은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예수 안에서 세움을 입고,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성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넘쳐나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7c).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진정한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열심히 살아도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무수한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 때도 있습니다.
주님나라와 복음을 위해 젊음을 다 주님께 드렸으나, 아직 확실한 먼가가 나타나지 않기도 합니다.
어렵지만 정직 성실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오히려, 이용해먹는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때에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7절 끝부분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7c)는 명령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잔이 살짝 넘치는 정도가 아니라, 강물이 범람하듯 풍성하게 넘쳐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 성경은 7절을 주목해 볼만한 문법으로 선포합니다.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은 모두 수동태로 기록되어 ‘누군가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는 의도로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 내리고, 세워지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같은 문장 안에 놓여 있는 “감사를 넘치게 하다”는 말은 능동태로서 ‘감사를 넘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저와 여러분; 우리의 몫이다’라는 또 다른 강조점을 둡니다.
다시 말하면‘감사는 우리의 의지에 의하여 표현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척박하고 불편한 현실을, 불평과 원망으로 똑같이 늘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보다는, 내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현실은 초라하지만 내 안에 계셔서 내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답답한 환경을 통하여 나를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라는 보배를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담았기에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게 되는’(고후 4:8-9) 사실 만으로 감사가 넘쳐나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환경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넘쳐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일상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 삶의 자리를 성실하게 계속 지켜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예수를 내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 살아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 터 잡고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서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가 넘쳐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 안에서 행하는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