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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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는 내가 계획하고 실행하고, 알아서 할 수 있는 나의 일이 있고, 또 나 혼자서는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아주 큰 일 중에 한 가지 부분을 맡고 있는 경우가 있다.
우주선에 사람을 싫어 보낼 때,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면 지구에 있는 본부에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종사만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문제 없나 확인하고, 정확히 계산하고, 또 다양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국가 차원, 때로는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그러한 큰 일들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협력”이 중요하고, 전체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신앙에 있어서도 그것이 중요함을 우리는 계속 에베소서, 빌립보서를 이어가는 가운데 깨닫고 있다.

1. 부활의 권능과 고난 모두에 참여하게 되는 것.

신앙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 - 하루 하루 내 기분과 마음에 가장 좋은 일들만 이루어져서 나중에 나에게 행복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루나 짧은 기간을 따질 때에는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심. 그냥 고생이 아니라. 주인 가족이기 때문에 누리는 수고이다.
함께 하나님 나라, 천국의 일에 참예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그냥 편하게 있어도 주님께서 다 하실 수 있지 않나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뭐가 도움이 될까 싶지만.
로마서 8:17 nkrv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빌립보서 1:29 nkrv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도, 고난까지도 참여하도록 하신 것이 은혜다.
회사나 가게에서, 자기 애들은 시켜도 놀러온 친구는 시키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 할 일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은연중에 우리는 예수와도 상관없이 나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2. 이생의 삶은 우리에게 주신 기회요, 또한 훈련의 과정이다.

아 지금 하나님 나라의 일에 참예시키는 것이구나를 알면, 도리어 어려움이나 노고가 기쁨이 된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저 패망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라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의미가 없는 건 고난이 의미가 없는게 아니라, 세상의 화려함이 사실 그렇다. 우리는 세상의 빛나는 화려함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뿐이라면 얼마나 허무한가.
빌립보서 3:11 nkrv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예수님의 길을 보면, 꼭 그렇게 까지 하지 않으셔도 됐지만, 자기를 낮추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원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의 낮아짐과 수고를 따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 하나 있는데, 이미 진짜 힘들고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우리셨다는 점이다.
그럼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는 그 영광과 고난에 참예함은 된다.
그냥 편하기만 바라는 것은 어린 아이의 신앙이다.
가끔 그런 일 듣지 않는가? 천국 백성의 일원임을 안다면, 천국의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더 괴롭다. 책상뺀 직원처럼.
왜 그런 뜻을 품으셨는지 다 알 수 없지만, 그러니까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구원하시는데, 사람들을 사용하시고 무엇보다 우리를 차여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주님 나라의 계획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훈련받는다. 이 신비가 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내가 편안하고, 부족함이 없으니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나라를 더욱 바라보고 소망하게 되고 그것이 마음 속에 짙어지고, 더 열심히 달려가게 된다.
또한 그 나라를 위한 수고는, 대단한 수고가 아니다. 똑같은 것을 바라면서 내 앞에 온 사람과 내게 닥친 일 들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이루는 것은 다 주님께서 계수하고 계시다.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일이다. 구체적인 역경을 만났을 때 늘 그것을 말씀에 비추어 보고 주님과의 만남의 자리에 가지고 나아오라.
천국은 그냥 놀라 가는 곳이 아니고, 상속 받는 곳이다. 이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

3. 내 맘대로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있다. 내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아직 완전히 하나님 나라를 이루거나 얻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빌립보서 3:12 nkrv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사도 바울 수준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1백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어도, 최고 학부에서 공부를 했어도, 머리가 뛰어나고 많은 경험을 했어도, 아직 주님 품에 안기기까지, 그가 확 끌어 안아 주시기 까지 끝난게 아니라. 하지만 그에게 점점 가까워져 가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
마음 속 중심의 간구가, 원수 갚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처럼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바라보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에 더 가까워져 가는 거기에 달려가는 것이다.

4. 온전히 이루었으나,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자세히 읽어보면 오늘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빌립보서 3:12 nkrv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5 nkrv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모순인 것 같으나 모순이 아니다. 우리가 이 길에 들어선 건 이제 끝났다 다른 길을 찾아갈 필요가 없고, 결국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갈 것이다.
에베소서 4:13 nkrv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나 하나로 온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원하시는 바까지 자라야 한다. 나 하나가 온전하게 되었다고 남 지적질하고 내가 옳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낮아지고 섬겨서 하나될 때 주의 뜻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5. 중심에 예수님 모시기: 어느 분량에 이르렀든지.

에베소서 4:14–16 nkrv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아직 내가 잘 모르니까 하고 뒤로 연기하는 것이 버릇이 되면 안되고,
내가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남 지적질에 빠져서도 안되고,
예수께서도 구원을 위해 오시고 자신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주님을 향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리에 대한 소망을 끊지 않으면 우리를 통해서 사랑으로 이루시는 방향이 있다.
참 조심할 것을 예수를 이야기하며, 나 자신에만 집중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분명한 목표, 푯대를 향해 달려가며 다른 사람을 섬기고 우선하는 자리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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